5일장과 뭉쳐 상생 찾아가는 '양구중앙시장' [엄민용의 '살아 있구나, 강원 전통시장']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2019. 1. 2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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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중앙시장 입구

강원도는 한반도 내륙의 섬이다. 험준한 지형에 갇혀 있고, 남북의 대립으로 많은 제약도 받아 왔다. 그러다 보니 여러 면에서 발전이 더뎠다. 하지만 강원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조짐이다. ‘통일의 훈풍’ 속에 강원도가 남북교류의 거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그동안 낙후돼 있던 강원도가 남북 경제교류를 발판 삼아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시점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고 넘어야 할 산도 높다. 준비해야 할 것 역시 적지 않다. 이에 <스포츠경향>은 연중기획 <엄민용의 ‘살아 있구나, 강원 전통시장’>을 마련했다. 강원도의 수많은 시장을 소개하고, 그곳들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그 세 번째 순서는 ‘양구중앙시장’이다.

전통시장인 양구중앙시장에는 일반 마트 등에서는 보기 드문 ‘추억의 먹거리’들이 많다.
전통시장인 양구중앙시장에는 일반 마트 등에서는 보기 드문 ‘추억의 먹거리’들이 많다.

양구군의 지명은 조선 선조 25년(1592)에 강원감사가 금강산에 이르는 길목의 첫 고을인 이곳을 지나다가 함춘(含春) 땅의 아름드리 수양버드나무숲을 보고 ‘양구(楊口)’라 부른 데서 유래됐다.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한 양구군은 현재 5개 읍·면 76개리로 이뤄져 있다.

700.85㎢로 서울(605.25㎢)보다 넓은 양구군에 시장은 단 하나다. 도시의 중심에 자리한 ‘양구중앙시장’이 그곳. 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산물을 비롯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류와 식료품·공산품 등이 거래되는 이곳은 양구 지역의 중심 상권이다.

북한강의 시작점인 양구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수운(水運)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중부 내륙의 특산품이 양구에 모였다. 이를 수탈하기 위해 일제는 양구의 시장을 활성화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정기 시장이 한때 9곳이나 됐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양구중앙시장과 5일장만 남고 모두 사라졌다.

‘양구의 명물’로 떠오른 시래기를 담은 상자들이 쌓여 있다.
과일과 과자 등을 파는 가게 앞 전경.

여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광복 이후 대부분 북한에 편입됐던 양구는 6·25전쟁 후 ‘수복’된 곳이다. 전쟁의 참화를 겪은 데다 이후 줄곧 ‘군사지역’으로 묶인 탓에 거주하는 사람이 줄면서 시장이 성장할 동력을 잃었다. 1913년 4만619명, 1940년 5만6016명에 이르던 인구가 지금은 2만명을 겨우 넘을 뿐이다.

한반도의 ‘배꼽’이자 강원도의 한복판에 있는 양구는 서쪽으로는 화천, 서남쪽으로는 춘천, 동남쪽으로는 인제와 경계를 이룬다. 산지가 많은 산간 지역이지만 의외로 주요 산업은 농업이다. 수입천과 서천이 북한강과 만나는 지역에 평야가 펼쳐져 농사 짓기에 좋기 때문.

주요 농산물로는 쌀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양구의 기름진 땅에서 생산되는 쌀은 밥맛이 좋기로 이름나 조선시대 때는 이천·여주 쌀과 함께 왕실에 진상되기도 했다.

양구중앙시장 내 상가들.

‘곰취’도 양구군을 대표하는 먹거리다. 양구군청이 매년 5월이면 ‘곰취축제’를 열어 외지인들을 불러모을 정도로 밀고 있는 특산품이다. 하지만 사실 양구군의 곰취는 ‘곰취의 4촌’인 ‘곤달비’다. 잎과 꽃이 곰취를 많이 닮았지만, 곰취보다 잎이 조금 작고 훨씬 부드럽다. 생잎을 쌈으로 먹으면 맛과 향이 기막힌데, 어떤 고기와도 찰떡궁합을 이룬다고 시장 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데친 뒤 무치거나 볶아 먹기도 하고, 장아찌나 김치를 담가도 맛있다.

최근 들어 양구에서 가장 이름난 먹거리는 단연 시래기다. TV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영양이 풍부한 시래기는 된장국을 비롯해 고등어찜이나 부침과 무침 등 다양한 형태의 요리에 사용된다. 양구중앙시장 인근은 물론 양구군 곳곳에는 시래기를 재료로 한 음식을 내놓는 식당이 많다.

중앙시장상인회 권봉희 회장이 시장의 미래 청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양구 중앙시장상인회 김찬수 전회장이 시장의 지나온 날들을 회고하고 있다.

하지만 양구중앙시장 사람들은 이들 먹거리보다 사과·멜론·수박·오미자 등을 홍보하는 데 더 열심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맛과 품질을 자랑하는 멜론과 수박을 외지인들이 너무 몰라 주는 탓이다. 또 기후변화로 인해 과거 영주의 사과나 문경의 오미자는 이제 옛말이 됐고, 양구의 사과와 오미자가 영주·문경의 맛을 뛰어넘는다고 자랑한다.

산지와 초지가 많은 양구는 농업 외에 목축업도 활발해 한우·한돈·산양·사슴 등이 사육된다. 방산면의 양봉도 유명하고, 내륙이지만 화천댐 때문에 만들어진 파로호에서 수산물이 나기도 한다. 숲에서는 밤·도토리·잣·대추와 함께 송이·표고 등 버섯들도 지천이다.

이들 모든 산물이 사시사철 양구중앙시장에 모여든다. 특히 5일과 10일 열리는 5일장이면 평소 한산하던 시장 일대가 그야말로 장사진을 이룬다. 신선하고 값싼 양구의 특산물을 사러 오는 이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사실 양구중앙시장의 평소 모습은 ‘한산’하다. 인구가 줄고, 교통이 발달해 외지로 나가 물건을 구입하기 편해지고, 대형마트 등 물건을 구입하는 곳이 다양해진 탓이다. 이 때문에 양구중앙시장은 ‘적’일 수도 있는 5일장을 끌어안았다. 양구중앙시장 주차장을 5일장 장터로 내준 후 그나마 5일마다 장날을 맞곤 한다. 양구중앙시장은 앞으로도 5일장과 함께 다양한 문화행사와 축제 등을 마련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요량이다.

양구중앙시장의 맛집 가운데 하나인 ‘장금이식당’.
양구중앙시장의 대표 맛집 ‘옥천식당’.

50여개의 크고 작은 점포를 거느린 양구중앙시장에는 현재 빈 점포가 서너 곳 있다. 과거 시장의 중심을 이루던 옷가게·신발가게 등 생활용품점들이 백화점·대형마트 등과의 경쟁에서 밀린 까닭이다. 하지만 별의별 것을 다 판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가게들이 여전히 영업 중이다. 6·25전쟁 직후인 1954년 시장이 들어설 때부터 장사를 해 온 잡화가게, 아버지의 양은가게를 이어받은 딸의 옷가게, 2대에 걸친 국밥집 등 하나하나가 역사 그 자체인 가게도 많다. 그러나 이들도 하나둘 문을 닫을 위기인 것 또한 현실이다.

이 때문에 양구군은 올해부터 양구중앙시장과 손잡고 ‘야시장’ 활성화를 추진한다. 양구에는 군민만큼의 군인들이 생활한다. 이들이 짧은 휴가나 외박 때 양구 안에 머물며 소비를 일으키도록 유도하겠다는 복안이다. 춘천과 화천을 찾은 외지인을 양구로 한 발짝 더 ‘유혹’하는 길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야시장은 올해 늦은 봄부터 금·토·일에 들어설 예정이다.

빈 점포들을 맛집들로 바꾸려는 노력도 기울인다. 맛집이 소문나면 사람이 모이게 마련이고, 그러면 시장은 저절로 활성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산과 들 그리고 물가에서 나는 온갖 특산물들이 넘쳐나는 양구중앙시장. 하지만 인구 감소로 조금씩 활력을 잃고 있는 이곳이 2019년 봄과 함께 ‘맛집’과 ‘야시장’을 앞세워 힘차게 기지개를 켤 전망이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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