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저 페더러(가운데)가 2019 호주오픈 테니스대회가 열리는 멜버른파크의 선수 라커룸 앞에서 경비원(왼쪽)에게 출입을 저지당한 뒤 일행을 기다리는 모습이 대회 주최측 카메라에 포착됐다. 호주오픈 트위터
2019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에 출전 중인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대회가 열리는 멜버른파크의 선수 라커룸 앞에서 경비원에게 저지당했다. 대회 출입증을 패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멋쩍은 듯 목을 긁적이며 두리번거리던 페더러는 출입증이 있는 일행이 온 후에야 라커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모습은 복도 천장에 매달려 있는 카메라에 고스란히 녹화됐다.
호주오픈 측이 코트에서 라커룸으로 이어지는 길을 포함해 선수들이 오가는 복도 천장에 수많은 무인카메라를 설치하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쫓고 있다. 선수들의 일상이 광범위하게 녹화, 공개되는 것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이번 대회가 ‘빅 브라더(감시) 오픈’이 되고 있다고 27일 보도했다.
호주오픈은 2016년부터 휴게실에 카메라 몇 대를 설치하고 선수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공개해왔다. 올해는 카메라 설치 장소를 복도로 옮기고 그 수도 대폭 늘렸다. 이 카메라는 일반 관중이나 중계 카메라가 접근할 수 없는 구역에서 선수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페트라 마르티치(크로아티아)는 지난 18일 여자단식 3회전에서 슬론 스티븐스(미국)에게 패한 뒤 담담한 표정으로 코트를 떠났다. 관중들의 시선 밖으로 벗어난 마르티치는 라커룸으로 향하는 복도 구석에 주저앉아 수건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렸다. 이 영상이 공개되자 많은 팬들이 마르티치의 소셜미디어 계정으로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과도한 촬영이 선수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우려도 있다. 토너먼트 디렉터 크레이그 틸리는 “선수들에게 촬영 사실을 명확히 고지하지는 않았다”며 “천장을 보면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선수들은 뒤늦게 수많은 카메라를 발견해 놀라고 있다. 방송 경험이 많은 세리나 윌리엄스(미국)조차 “카메라를 발견했을 때 ‘오 여기도 있네, 오 저기도 있네’ 놀랐다”며 “카메라가 사방에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는 “우리는 빅 브라더 사회에 살고 있다”며 “이것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