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명의 유유자적
3년 반쯤 전이다. 술을 진탕 마시고 아침에 눈을 떴는데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흘러가는 게 보였다. 서울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깨끗한 하늘과 구름을 한참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만 있자, 왜 천장이 아니라 하늘이 보이지?’ 그 여름 그렇게 허구한 날 인사불성으로 술을 마시고 옥상에서 잠이 들었다. 그나마 길바닥이 아니라 내 집 옥상인 게 다행이었다. 모기를 오억마리쯤 먹여 살린 후에, 그러니까 그날, 뭉게구름을 보면서 이런 결심을 했다.

발리 남쪽 누사두아는 허니문, 가족, 단체를 위한 고급 리조트가 즐비하고 서쪽은 서핑족들과 힙스터 카페들로 유명하다. 반면 내륙에 자리한 우붓은 발리 전통문화를 체험하기 좋은 곳이다. 각종 공예품과 오가닉 푸드를 접할 수 있고 종교행사가 많다. 필자제공
‘흘러가야겠다.’
말하자면 그랬다. 우리는 타인의 모든 행동에 선명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인과관계를 꿰맞추려 애쓴다.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라. 열 사람이 물으면 열 가지 다른 이유를 댈 수 있을 만큼 불명확하고 복잡한 이유로 저지르는 큰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한국을 떠난 데도 따져보면 백 가지 이유가 있고, 그 백 가지가 모두 말이 안되기도 한다. 결과만 말하자. 처음 흘러간 곳은 발리의 우붓(Ubud)이었다.
거길 간 이유는 단순했다. 자취를 오래한 터라 남이 뒤치다꺼리 해주는 호텔 생활자들이 부러웠다. 영화에 나오는, 외국 작가들이 호텔로 집필 여행 가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래서 따뜻하고 물가 싼 나라, 오래 내 집처럼 묵을 수 있는 호텔, 호텔 방에는 반드시 책상이 있을 것, 세 가지 조건을 걸고 전 세계를 (인터넷으로) 뒤졌다. 서울 월세 가격에 무료 조식 먹으며 호텔 생활을 할 수 있는 도시가 생각보다 많았다. 인생을 바꾸는 큰 깨달음이었다. 나는 겨울만 되면 “다음 생엔 동남아에서 태어나 매일 러닝셔츠만 입고 평상에 누워 있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다음 생엔 에바 그린이나 맨해튼 건물주로 태어난다는 목표도 있는데 그런 건 물론 다시 태어나도 안될 가능성이 크지만 동남아에서 러닝셔츠 입고 와식 생활 하는 건 이번 생에도 가능하지 않은가. 이번 생에 할 수 있는 걸 왜 다음 생으로 미루는가! 그러다 발견한 게 우붓의 ‘아시람(Ashram)’이었다. 요가 ‘리트리트(Retreat)’를 하는 곳이란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그땐 아시람도, 리트리트도 무슨 뜻인지 몰랐다. 궁금증도 품지 않았다. 월 50만원에 하루 두 번 요가 수업, 계곡 물을 사용한 에코 수영장, 열대식물로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 전망 좋은 독방, 조식을 제공한다기에 ‘이거다!’ 했을 뿐이다. 나는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실 짠돌이이기 때문에 무료 요가 수업과 조식을 위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날 게 분명했고, 덕분에 난생처음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하게 될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숙소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혼란에 휩싸였다. 일단 위치가 불빛 한 점 없는 논둑길 너머 코코넛숲 한가운데였다. 이런 데 호텔이 있을 리 없다며 택시를 세우기까지 했다. 용감한 경찰이 마약조직을 소탕하는 내용의 인도네시아 액션 영화 <레이드>가 생각나면서, 이놈의 택시기사가 나를 갱단한테 팔아먹으러 가나 두려움에 떨었다. 다행히 체크인을 했지만 첫날 새벽엔 닭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나는 읍도 아니고 면 소재지도 아니고 ‘리’ 출신이지만 닭 울음소리를 들은 건 30여년 만에 처음이었다. 물어보니 호텔에서 키우는 닭도 아니고 이웃 닭들이 놀러오는 거란다.

사진은 필자가 묵었던 요가 리트리트 주변. 온통 논밭이었고 자명종 대신 닭 울음과 개 짖는 소리가 아침잠을 깨웠다.
이튿날 아침, 조식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다가 옆방 손님과 마주쳤다. 나이는 스무 살쯤 되었을까. 투명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 빡빡 민 연노랑 머리, 앙상한 몸, 마하트마 간디 위인전에서 본 것 같은 인도풍 리넨 바지와 셔츠를 입고 가부좌를 튼 채 향을 피우고 테라스에 앉아 있던 그는 내게 말을 걸고 싶어 했다. 들어보니 러시아어 같은데, 그쪽 언어는 ‘스파시바(спасибо, 감사합니다)’ 말고 아는 게 없어서 대강 대꾸하고 지나치려 했다. 그는 황급히 휴대폰을 꺼냈다. 구글 통역기가 영어로 보여준 문장을 한국어로 다시 번역하면 이렇다.
‘나는 많이 울지 않아요, 이곳에선.’
아니, 얘는 왜 만난 지 5초밖에 안된 사람한테 자기 속사정을 얘기해? 어안이 벙벙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씻어놓은 조약돌 같은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그래 네가 안 운다니 다행이구나. 그 얼굴에 물기가 다 마를 때까지 오래오래 묵으렴.

사진은 우붓 중심가에 얻은 필자의 빌라. 집은 낡았지만 거실에서 멋진 정글이 보였다. 큼직한 침실, 욕실, 거실 겸 주방을 갖춘 공간이 월세 30만원 정도였다.
요가 수업에 가보니 스판덱스 레깅스를 입은 건 나뿐이었다. 손님들은 대부분 히피 같은 차림새였다. 수업이 호흡과 명상부터 시작하는 것도 내가 들어본 문화센터 요가 강좌와 다른 점이었다. “어떤 종류의 요가를 하셨나요?”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아…음…저… 요가를 해보긴 해봤는데… 요가에 종류가 있나요?” 내 대답에 그들은 알 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모든 상황이 요가철학과 직접 맞닿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라는 의문을 화살처럼 뇌리에 꽂아주었다. 내가 요기가 된 것이다!
3년 전 술을 진탕마시고 아침에 눈을 뜨니 천장이 아니라 하늘이 보였다. 그날 뭉게구름을 보고 결심했다. ‘흘러가야겠다’
따듯하고, 물가 싸고, 글 쓸 책상이 있는 곳을 검색했다. 발리 우붓에 있는 ‘아시람’ 요가 리트리트. 월 50만원에 요가와 수영, 독방에 조식 포함
가보니 아시람은 힌두교의 암자, 리트리트는 수행이라는 의미였다. 발리는 요가 수행처로 유명했다. 서핑 요가 다이빙 요가까지 있다
발리서 만난 이들은 내게 왜 사업을 않냐고 물었다. 인도네시아는 외국인이 사업하기 좋은 나라고 아시람의 주인도 유대인이었다. 그곳에 한달 쯤 머물며 책을 썼다
아시람을 떠나 우붓 시내에 빌라를 빌렸다. 월 30만원에. 반년 뒤 서울 생활을 정리했고, 이젠 적극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아시람’은 힌두교도들이 은둔 수행하는 암자를 뜻하는 말이었다. ‘리트리트’ 역시 수행, 칩거, 기독교의 ‘피정’ 등을 뜻한다. 한국의 템플스테이처럼 서양에서도 종교시설이나 외딴 곳의 리조트, 오두막 등에 머물며 심신을 정화하는 게 여행 테마로 인기를 끈 지 오래다. 우리는 ‘힐링’ ‘디톡스’ 등 여러 표현을 혼용하지만 서양인들은 ‘리트리트’로 통칭한다. 리트리트 상품만 따로 판매하는 온라인 사이트도 많다. 발리는 여기에 요가를 결합한 서비스가 번성한 곳이다. 섬세하고 포용적인 힌두문화, 거기에 아름다운 밀림과 계곡이 잘 보존된 우붓 지역은 전 세계 요기들의 허브 같은 곳이다. 요가 시설마다 특색이 달라서 어느 곳은 룰루레몬(트렌디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요가복 브랜드)족의 아지트 같기도 하고, 어느 곳은 관광객들의 체험 강좌를 공장처럼 돌려대고, 어느 곳은 요가와 기계체조의 경계쯤으로 보이는 애크러배틱한 실험들을 하고 있고, 논두렁 정자에서 소박하게 운영하는 요가 스튜디오도 있으며, 또 어느 곳은 내가 간 데처럼 전통을 표방한다. 그러다 보니 서양 여행자들은 ‘발리=요가’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많아서 가는 곳마다 요가 수업을 찾고, 그 덕에 요가 리트리트도 사방으로 퍼져가는 추세다. 파도가 세서 세계 정상급 서퍼들이 몰려드는 발리 서쪽 ‘힙스터’ 동네 짱구(Canggu)에서는 ‘서핑 요가’, 다이빙으로 유명한 발리 동쪽 섬들에서는 ‘다이빙 요가’ 리조트를 흔히 볼 수 있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인도네시아 특유의 개방적인 문화도 한몫했다.
발리에 도착한 뒤로 현지인들은 걸핏하면 내게 물었다. “무슨 일 해? 여기서 사업할 거야? 왜 안 해? 뭐라도 해야지.” 여행 삼아 왔다가 눌러앉는 사람도, 그렇게 눌러앉아 장사를 시작하는 외국인도 워낙 많다 보니 하는 얘기다. 막상 여기서 사업을 하는 외국인들은 서류 작업이 복잡하다거나, 은행 시스템이 불합리하다거나, 비자 문제가 골치 아프다거나, 법제가 너무 자주 바뀐다거나 이런저런 불만이 있다. 예컨대 사업자등록을 하려면 은행 계좌가 필요한데 은행 계좌를 열려면 사업자등록증을 보여줘야 한다는 대목에서 정신력이 흔들리지 않는 외국인은 못 봤다. 하지만 돈만 있으면 다 방법이 생긴다. 더구나 “너희 나라에서 외국인이 사업할 땐 이보다 나을 것 같아?”라고 물어보면 다들 입을 다문다.
나는 한국에서도 연고 없는 시골에 내려가 민박이다 뭐다 사업을 벌이려다 복잡한 행정절차, 텃세, 까다로운 건축 규정, 막무가내 인부들 때문에 돈 버리고 시간 버리고 학을 뗀 다음 도로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 그걸 외국인이 해낸다는 건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발리에서는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온 외국인들이 자기 사업을 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이 현지인 파트너 없이 100% 지분을 소유할 수 있고 회사 명의로 부동산까지 구입할 수 있는 카페, 식당, 3성급 이상 호텔 등이 인기 종목이다. 요가, 다이빙, 서핑 등 레저 분야는 규정이 더 까다롭지만 그래도 워낙 수익성이 보장되는 지역인 만큼 꾸역꾸역 이민자들이 몰려든다. 동남아 여러 곳에서 일하다 결국 발리에다 자기 다이빙센터를 연 친구는 이렇게 표현했다.
“태국 사람들은 이방인을 무시하고 새로운 시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어. 필리핀은 여전히 돈을 투자하기 무서운 곳이고. 반면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굉장히 오픈돼 있어. ‘어디 한 번 해봐. 도와줄게’라는 자세지. 행정, 제도, 기간시설 등에 부족한 점도 많지만 그래도 여기만 한 곳이 없어.”
인도네시아는 무슬림이 전쟁 없이 차지한 유일한 땅이라고 한다. 과연 포용력이 대단한 나라다.
내가 묵은 아시람의 주인도 외국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유대인이 이슬람 국가 인도네시아의 힌두 섬 발리에서 요가 아시람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뒤죽박죽인데, 심지어 그는 무신론자에다 요가와 채식을 싫어했다.
“원래는 자카르타에서 통신원으로 일했어. 그런데 석유 선물 옵션에 투자했다가 돈을 다 날리고 알거지가 되었지. 짐을 싸들고 발리에 왔어. 여기선 돈이 없어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우붓에서 방을 구했어. 현지인 일가족 부지 안에 있는 빌라였어. 그런데 집주인이 내 사정을 듣고는 에어비앤비를 해보라는 거야. ‘응? 그런 방법이?’ 싶었어. 그 길로 당장 광고를 냈는데 덜컥 예약이 들어오더라. 그날은 손님한테 집을 내주고 24시간 문 여는 식당을 찾아 한 귀퉁이에서 밤을 보냈어. 다음날 집에 돌아가자마자 그 부지 안에 남은 빌라 6개를 몽땅 빌렸어. 그걸로 게스트하우스를 돌리다가 이 호텔을 발견한 거야. 가능성이 많은 곳인데 주인들이 어떻게 관리할지 몰라서 방치하고 있었지. 내가 운영을 할 테니까 지분을 달라고 했어. 그러곤 돈을 모아서 나머지 지분도 사들였지.”
그는 언젠가 자기 이름을 딴 호텔체인을 만들 거라고 했다. 왠지 그러고도 남을 것 같은 추진력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발리는 ‘신들의 섬’이기 전에 무한한 기회의 땅이다.
나는 그 아시람에 한 달을 머물렀다. 사십년쯤 살아보니까 ‘이제야 내가 나를 좀 알겠구나’ 싶은 순간이 있는데, 과연 나의 예상은 적중해서, 공짜 조식과 요가수업이 평생 저녁형 인간으로 살아온 나를 조금은 바꾸어 주었다. 그 한 달 동안 책을 한 권 썼고, 그 책이 그럭저럭 팔린 덕에 한국을 보다 장기적으로 떠나는 것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주변 작가들이 “글 쓰는 거 말고 아무것도 못하게 가둬놓고 합숙시키는 워크숍이 있으면 좋겠다”고 푸념하는 걸 종종 봤는데 그냥 ‘발리 리트리트’를 검색하면 되는 거였다.
한 달 후에는 아시람을 떠나 우붓 시내의 저렴한 빌라를 구해 이사했다. 아시람 주변에는 편의시설이 전혀 없어 불편하기도 했고, 그사이 손님이 늘어 월 50만원이라는 파격가가 불가능해지기도 했다. 우붓 중심인 궁전에서 도보로 7분, 독방과 욕실, 주방 겸 거실이 딸린 빌라의 임대료는 월 30만원이었다. 이 정도면 좀 편하게 살아도 되는 물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때부터 더욱 적극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6개월의 우붓 체류를 마치고 돌아와 서울 생활을 완전히 정리했고,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누사페니다(Nusa Penida)의 다이빙숍 매니저가 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흘러온 얘기는 다음 기회에 또 이어가기로 하고 일단 한 가지만 얘기하자면, 삶은 고여 있을 때보다 흘러갈 때 더 건강하다는 것이다. 발리는 그걸 깨닫게 해준 고마운 곳이었다.
![[다른 삶]삶은 고여 있을 때보다 흘러갈 때 더 건강하다, 발리는 그걸 깨닫게 해준 고마운 곳](https://img.khan.co.kr/news/2019/01/25/l_2019012601002675600233644.jpg)
▶필자 이숙명
영화잡지 ‘프리미어’, 패션지 ‘엘르’ ‘싱글즈’ 등에서 일했다. 27년차 프로 독거인으로서 <혼자서 완전하게>라는 책을 썼으며, 2017년 한국을 떠나며 짐정리를 하느라 고군분투한 얘기를 <사물의 중력>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현재 발리 인근 누사페니다에 살면서 가끔 글을 쓰고 요가와 스쿠버다이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