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육사시미·물회·수플레까지.. 성게알 전성시대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19. 1. 2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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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터드처럼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하고 진한 감칠맛
주황에 가까운 짙은 노란빛 ‘사진발’ 잘 받아 더욱 인기

서울 대학로 ‘호호식당’은 큼직한 성게알을 올린 ‘우니파스타’가 유명하다./호호식당

#1.‘우니 파스타’는 서울 대학로 ‘호호식당’ 최고 인기 메뉴다. 파스타(면)는 올리브오일로 살짝 버무린 것 말고는 아무 소스가 뿌려있지 않다. 대신 진한 주황색 성게알 한 덩이가 올려져 있다. 실은 이 성게알이 소스이다. 종업원이 성게알을 으깨 파스타와 슥슥 버무려준다. 부드럽게 뭉개진 성게알과 한 몸이 된 면을 포크에 돌돌 말아 입에 넣으면 진한 감칠맛이 입안에서 폭발한다.

#2.청담동 요리주점 ‘미수식당’는 ‘우니 육사시미’ 덕분에 유명해졌다. 질 좋은 한우 생고기에 딸려 성게알이 한 사발 가득 담겨 나온다. 소고기에 성게알을 소스처럼 올린다. 소고기의 선홍빛과 성게알의 노란색이 선명하게 대비되고, 소고기의 부드러운 쫀득함과 성게알의 고소함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단골들은 아보카도를 추가 주문해 삼합(三合)으로 즐기기도 한다.

‘우니’로도 친숙한 성게알은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식재료로 꼽힌다. 과거 성게알은 고급 일식집에서 초밥으로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식재료였다. 요즘은 초밥은물론 물회, 소바(메밀면), 우동, 파스타, 라멘, 김밥, 육회, 미역국, 덮밥(우니동), 오믈렛, 수플레 등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두루 등장하고 있다.

커스터드 뺨치는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하고 진한 감칠맛도 뛰어나지만, 주황에 가까운 짙은 노란색의 화려한 색감은 어떤 음식도 포토제닉하게 변신시키는 마법을 발휘한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SNS)에서 예쁘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을 개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요리사들에게 성게알이 특히 사랑받는 이유다.

성게알이라 하지만 정확하게는 성게의 알이 아니라 생식선이다. 다 자란 성게 배를 가르면 고양이 혀처럼 생긴 황갈색 생식선이 가득 차 있다. 이걸 터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꺼낸 다음 바닷물에 살살 흔들어 씻어서 먹는다. 전 세계적으로 900종이 넘는다. 한반도에는 30여 종이 연안 얕은 바다 암초지대나 해초 사이에서 서식한다. 그중 식용하는 건 개체수 많고 맛 좋은 보라성게·분홍성게·말똥성게이다.

모두 밤송이처럼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보라성게·둥근성게·분홍성게는 둥글고 가시가 긴 반면, 말똥성게는 가시가 짧고 말똥처럼 펑퍼짐하다. 보라성게는 6~8월, 분홍성게는 8~10월, 말똥성게는 늦가을부터 한겨울이 제철이다. 보라성게와 분홍성게는 상대적으로 옅은 노란색에 부드러운 단맛이고, 말똥성게는 진한 주황색에 살짝 쌉싸래한 맛이 감돌면서 감칠맛이 진하다.

제주 서귀포 ‘서광춘희’의 성게 라멘./조선일보DB

국내에서 성게알을 널리 맛보게 된 건 200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국내에서 채취되는 성게알은 거의 전량 일본으로 수출됐다. 일본에서 우니(성게알)는 카라스미(숭어 어란), 고노와다(해삼 창자젓)과 함께 3대 진미로 꼽히며 값비싸게 대접받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본은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성게알의 80%를 소비한다.

1990년대 일본의 불황이 깊어지자 성게알 수요가 줄어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 수입상들이 한국산보다 저렴한 남미와 러시아로 수입처를 돌렸다. 한국 수출업체들은 궁리 끝에 내수시장으로 관심을 돌렸다. 한국 소비자들이 성게알 맛을 알게되자 수요가 늘었고, 이에 화답해 공급이 늘었다. 그러자 가격이 내려가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동해안 성게알을 넣은 물회, 제주도 성게알로 끓인 미역국처럼 지역 주민끼리 먹던 향토 음식이 관광객을 상대로 파는 외식 메뉴로 개발됐다. 여기에 일본과 이탈리아 등 외국의 성게알 요리가 소개됐고, 우니 육사시미처럼 새로운 메뉴가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음식 칼럼니스트 박정배씨는 "정약전이 ‘자산어보’(1814년)에 성게알을 ‘맛이 달고 날로 먹거나 국을 끓여 먹는다’고 기록한 걸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옛날부터 성게알을 먹었던 듯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는 오래 보관할 기술이나 유통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바닷가 사람들만 먹었습니다. 성게알은 외국에서 새롭게 들어왔다기보단, 이제서야 전국적으로 확산된 우리 음식이랄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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