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테레시아스는 진실을 묻는 오이디푸스에게 외친다. 아버지인 테베의 왕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것은 바로 당신이라고. 관자놀이에 굵은 핏줄이 솟아오르며 분노했던 오이디푸스. 불길한 진실을 점차 깨달아가면서는 마치 다른 사람인 양 불안에 떨었다. 무대 양 끝을 오가며 펼쳐내는 그의 비애와 절망은 객석에까지 고스란히 전달됐다.
‘국민배우’ 황정민이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가 돼 돌아왔다. 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오이디푸스’(연출 서재형)를 통해서다. 지난해 10년 만의 무대 복귀작 ‘리처드3세’에서 출중한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그의 매력은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2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연습실에서 공개한 연습 현장은 본 무대인 것처럼 긴장감 넘쳤다.
극은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작가로 명성을 떨친 소포클레스의 작품으로 약 2500년 전에 쓰였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저주의 신탁을 피하고자 태어나자마자 발이 묶인 채 산에 버려진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다. 수많은 텍스트로 재해석되며 생의 의미를 좇는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은 비극의 원류로 꼽힌다.
황정민 외에도 남명렬 박은석 배해선 정은혜 최수형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 이번 ‘오이디푸스’는 비극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저주로 좌절하는 모습에 그치지 않고, 절망 속에서 다음 한 걸음을 내딛는 인간 오이디푸스의 의지를 깊게 담아냈다. 시연 후 마련된 간담회에서 서 연출가는 “(시연 외에) 오이디푸스가 운명과 진실을 마주하고, 의지의 걸음을 떼는 장면들이 남아있다. 감성적인 움직임이 큰 신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감 넘치는 배우들의 관전 포인트 소개도 이어졌다. 황정민은 “진실을 마주하게 된 오이디푸스의 휘몰아치는 감정을 어떻게 하면 공연마다 똑같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수많은 오이디푸스 중에서도 황정민의 오이디푸스가 색다른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주시면 다행일 것 같다”고 전했다.
아들 오이디푸스와 결혼한 비극의 여인 이오카스테 역의 배해선은 “수많은 비탄과 아픔의 대사 중에서 오이디푸스의 ‘괜찮소. 나는 내 발로 걸어가겠소’를 가장 인상 깊은 문장으로 꼽고 싶다. 아픔의 깊이만큼 큰 치유의 순간도 함께 전하는 연극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코린토스 사자 역의 남명렬은 “서 연출가의 디테일함과 황정민의 열정이 결합해 새로운 오이디푸스가 탄생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담고 있는 연극”이라고 말했다.
역동적인 무대 활용과 서사를 끌어나가는 코러스로 이해와 몰입을 돕는 연출의 영리함도 엿볼 수 있었다. 서 연출가는 “스토리를 쉽게 전달하는 데 신경 쓰고 있다. 영상도 활용하고, 스펙터클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웅장한 테베의 모습과 무대, 의상 등에서 재밌는 광경을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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