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문학 위에 있어..참혹한 현실 앞, 환상보다 실재하는 것에 집중"

이영경 기자 2019. 1. 22.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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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2019년 ‘이상문학상 대상’소설가 윤이형
ㆍ“강남역 살인사건과 문단 내 성폭력 계기로 페미니즘에 입문
ㆍ서로 미워 말고 힘 합쳐야…그때그때 절박한 고민 찾아 쓸 것”

여성 서사를 선보이고 있는 소설가 윤이형을 지난 15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그는 결혼제도의 폐해와 대안을 그린 소설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로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앞으로 쓸 내 소설에서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순응하거나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하는 여성이 나와서는 ‘안되는’ 것일까? 나는 페미니즘에 입문한 여성 창작자이기 때문에 앞으로 여성에 대한 어떤 멸시나 비하도 ‘현실 그대로’ 작품 속에 재현하면 안되는 것일까?”(‘여성에 대해 쓰기: 너무 많은 질문들과 약간의 대답’, 문예중앙 2017년 여름호)

소설가 윤이형(43)은 스스로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문단 내 성폭력 폭로 직후였다. SF·판타지 등 장르적 요소를 도입한 개성있는 서사로 ‘젊은 작가’로 주목받았던 윤이형은 이제 ‘페미니즘에 입문한 여성 작가’로 자신을 규정하며 이전과 다른 문학을 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이후 발표한 작품들은 이 고민에 대한 답변과도 같다. 2017년 말 펴낸 장편소설 <설랑>에서 여성 간의 사랑을 그린 퀴어 서사를 선보였고, 지난해 발표한 중편소설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고양이’)에선 결혼제도의 폐해를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했다. ‘고양이’는 2019년 이상문학상 대상에 선정돼 주목받았다. 윤이형은 대다수 (여성)작가들이 했을 고민을 공개적으로 털어놨고, 이에 대한 답을 소설로 써내고 있다. 그의 행보는 한국문학의 변화를 보여준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윤이형을 만났다.

- ‘페미니즘에 입문한 여성 창작자’라고 한 이유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문제에 대해 자각하게 됐다. 40년 동안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살다가 처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 거다. 뒤이어 문단 내 성폭력이 터졌다. 가치관이 많이 흔들렸다. 내가 몸담았던 문학계의 환경이라는 것이 척박했구나, 명백한 폭력이 발생했는데 숨겨지고 있었고, 자의가 아닌 타의로 글쓰기를 그만두게 된 여성들이 많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됐다.”

- 고민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열심히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글쓰기 자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문학이 소중한 것이지만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칭송하다보면 인간의 생활, 인권 위로 올라가더라. 문학이 아주 대단하다는 생각을 믿지 않게 됐다. 그냥 글이다.”

- 동료 작가들과 이러한 고민을 함께 나눴나.

“다들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기미가 있는 자리는 안 나가고 피해왔다. 피해자이면서 사실은 방조자의 위치에 있었던 거다. 그래서 괴로워하고 있다. 성폭력이 이슈가 된 이후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게 정말 많다. 법정에서 피해자들이 외롭게 싸우고 있고, 정책과 제도가 바뀌고 따라와야 하는데 잘 안되고 있다.”

- 작품에 변화가 느껴진다.

“준거집단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었다. 여성 독자들에게 폭력적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잘못 쓰지 않을까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요즘은 여성의 몸에 관심이 많다. 나이가 드니 몸에 대한 이물감이 커지고 변화들이 일어나는 게 스스로 즐겁지가 않더라. 예전엔 ‘이런 이야긴 우울하니까 사람들이 안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이란 게 남성의 시선이었던 것 같다. 여성의 현실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하게 된 것 같다.”

‘고양이’는 결혼 안에 놓인 두 남녀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드러내면서 대안을 모색한다. 윤이형은 “‘정상가족’을 이루고 싶어 무리하게 결혼한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사회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지속 가능한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기혼 여성으로서 한계와 분열을 느끼지만 내 자리에서 고민을 계속하고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소설 속에서 남자 정민은 생계를 위해 꿈을 희생하다가 이혼 후 자기 자신을 찾아간다. 희은은 아이를 키우며 일을 찾는다. 그런 결말을 그린 이유는.

“아무리 선량한 개인들을 그 자리에 데려다 놓아도 억압하는 구조의 힘을 이겨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희은의 경우 이혼 후 독립하기 위해선 자본을 마련해야 하지만 좋은 일자리가 없고 노동환경도 나쁘다. 그래서 자녀가 있는 여성은 결혼에 모순을 느껴도 바로 이혼하기가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문제를 덮고 지나가지 않고 이혼을 선택하는 것은 여자인 희은 쪽이고, 그게 적극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 결혼과 육아가 작가로서의 삶에 영향을 미쳤나.

“긍정적 부분도 많다. 생활을 희생시키고 못살게 굴면 글도 잘 안 써진다. 시간이 부족한 것은 내가 선택한 삶이니까 감당해야 한다. 이쪽도 잘 못하겠고 저쪽도 잘 못하겠지만 반반씩 만족하고 있다. 늘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두 개 다 해야 하니까, 다 하려고 생각한다.”

- 요즘 어떤 책을 읽나.

“비문학을 많이 읽고 있다. 페미니즘 책도 읽고 영화도 다큐 쪽으로 보게 된다. 옛날엔 환상과 같은 요소를 많이 넣어서 글을 썼는데 지금은 눈앞의 현실이 압도적으로 참혹하기 때문에 환상보다는 실재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 앞으로 쓰고 싶은 소설은.

“그때그때 절박한 고민을 쓰는 편이다. 지금 쓰고 있는 중편소설은 여성들의 우정에 관한 얘기다. 여성들이 같이 억압받고 있는데도 서로의 고통을 비교하며 누가 더 힘든지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서로 미워할 필요가 없고 힘을 합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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