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원 의원과 국립중앙박물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나

이기환 선임기자 2019. 1. 2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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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해 구입한 현대 금속공예품. 정광호 교수(공주대·왼쪽)와 서도식 교수(서울대)의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나전칠기 및 특정 학예사 인사압력과의 싸움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목포 문화재거리 투기’ 논란에 선 손혜원 의원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지난 1년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이 관계자는 “손 의원은 나전칠기 전문가임을 앞세워 나전칠기 문제를 제기했고, 그 과정에서 박물관 측에 특정 학예사의 채용을 집요하게 압박했다”고 전했다.

22일 여러 박물관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손 의원은 나전칠기 유물이 어떻게 보존되고 있는지 보고싶다고 박물관 수장고를 찾은 바 있다. 특히 손 의원은 지난 5월29일에는 박물관이 고려나전 향상(향을 담은 상자)을 재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관장실을 찾았다. 파편으로 남아있던 이 나전향상은 10여년 동안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문회의까지 거쳤어도 복원하기 어려운 유물이다.

그러다 박물관 측은 지난해 12월 개막된 ‘대고려전’에 이 재현품을 전시하려고 일본 측 전문가(무로세 가즈미·室瀨和美)까지 초청해서 자문을 받기도 했다. 이 소식을 듣고 관장실을 찾은 손혜원 의원은 전문가도 없다면서 나전칠기를 제대로 재현할 수 있겠느냐고 문제점을 제기하다가 본격적으로 일본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전문가 운운하며 국립민속박물관에 있던 특정 학예사의 인사교류를 집요하게 요구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2시간에 걸친 방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서 특정 학예사를 거론했다고 전했다.

비단 이때 뿐이 아니었다. 박물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손 의원은 이후에도 몇차례나 배기동 관장에게 특정 학예사의 채용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박물관 측은 내부검토 결과 해당 학예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손 의원의 요구를 거절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손 의원은 그저 인사추천이라고 하지만 누가봐도 인사청탁이자 압력이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손 의원이 국정감사 자리에서조차 특정 인사와 학예사를 거명했다는 것이다. 손 의원은 지난 10월1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우리나라 나전칠기 유물 수준은 아주 부끄러울 정도”라면서 “수리하다 쫓겨난 사람이 민속박물관에 가 있다”고 특정 학예사를 본격적으로 거명했다. 손 의원은 “도쿄예대에서 박사를 받았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완전히 꿰뚫고 있는 전문가가 수리를 못한다고 인격적인 수모를 당하고 민속박물관에서 행정업무를 하고 있다”면서 “제가 보기엔 우리나라에서 유물수리에 최고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고 있는 인재”라고까지 칭찬했다. 국정감사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특정 학예사의 인사압력을 가한 부적절한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손 의원은 또 국감장에서 현대의 작품을 사주지 않는 국내 박물관을 비판하면서 “최근 (나전칠기 장인 중 한 사람인) 오○○씨의 작품을 빅토리아 앤드 엘버트 뮤지엄이 샀지만 우리나라 국립박물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손 의원은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윤○○ 전시회’를 거론하며 작가를 극구 칭찬한 뒤 현대미술관 측에 “감사하다”고 까지 언급한 바 있다. 당시 국정감사장을 지킨 박물관 관계자들은 손 의원의 거침없는 거명에 “저래도 되는 것이냐”고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박물관으로서는 특정 인사에 대한 명백한 인사청탁이자 유물구입 압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손혜원 의원이 나전칠기 미술품 구입을 종용하자 이에 반발했던 민병찬 학예연구실장을 전격교체했다는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전격교체된 것으로 거론된 민병찬 국립경주박물관장도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민 관장은 “전임 경주박물관장의 은퇴가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면서 “국립경주박물관의 장기발전프로그램을 맡으라는 취지에서 발령이 난 것일뿐”이라고 밝혔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향후 1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인 국립경주박물관의 장기프로젝트를 맡아달라고 민 관장을 경주관장으로 보낸 것”이라면서 “게다가 민 관장의 전공이 신라불상이어서 적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물관 관계자들은 “경주박물관장과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국립박물관에서 쌍벽을 이루는 두 자리”라면서 “오히려 경주관장으로 발령나는 것을 영예로 여기기도 한다”고 전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해 현대의 금속공에품 4점을 구입했다는 것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손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오○○라는 특정작가를 극구칭찬하면서 “살아있는 작가들이나 방금 돌아가신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는게 박물관의 책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 빌미가 됐다. 손 의원의 발언이 혹시 현대공예품 구입과 관련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박물관의 현대공예품 수집은 박물관 내에서도 다소간 논란을 야기했던 사안이다. 근·현대 유물의 수집도 좋지만 현대작가의 작품을 구입할 때는 아무래도 잡음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물관 관계자는 “조심해야겠지만 유물수집과정에서 박물관 내외의 자문을 거치는만큼 문제작품은 걸러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배기동 관장은 이에 대해 “국립박물관이 현대 유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평소의 지론이었다”면서 “이미 취임 때부터 여러차례 이 문제를 거론했고, 당연히 손 의원의 국정감사 발언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배 관장은 “국립박물관의 유물이 대개 1910년 조선 황실로 끝난다”면서 “미래유산이 될 근·현대 유물을 마련하지 못하면 100년후 국립박물관 모습을 장담할 수 없다는 차원에서 취임초부터 그 지론을 밝혀왔다”고 전했다.

박물관 측은 해명자료에서 “지난해 사들인 금속공예품은 정광호 교수(공주대)와 서도식 교수(서울대)의 작품 등 4점”이라고 밝혔다. 이 작품들은 공예특성화 박물관인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됐다. 충북 청주에서는 지난 1993년 사뇌사 터에서 불교공예품과 생활용품 등 400여점의 금속공예품이 발굴된 인연으로 공예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있다. 배기동 관장은 “국립청주박물관의 특성화 브랜드로 공예품을 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구입작품 중에 나전칠기는 단 한 점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물관 실무자가 검토한 10여명의 작가 작품 중에는 금속공예품과 함께 나전칠기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박물관 해명자료는 “조사는 했지만 가격의 적절성, 기존 전시품과의 연계성을 검토해서 최종적으로 4점 구입했다”고 밝혔다. 검토단계에서 나전칠기는 빠진 것이다. 구매대상에 오른 나전철기는 국정감사에서 손의원이 직접 거명한 오모씨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손 의원을 겪어본 박물관 관계자들은 “자기가 믿는 분야에 대해서는 확신과 집착이 대단해서 자기의견을 거침없이 발언한다”면서 “그러나 국회의원의 그런 거름장치없는 언행을 받아들이는 피감기관 관계자들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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