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린의 아라비안나이트] 베트남 고추처럼 매서운 박항서와 제자들

박린 2019. 1. 2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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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에 승부차기 승, 8강 진출
평균 키 1m75cm, 참가국 최단신
선수 때 박항서처럼 악바리 축구
20일 베트남과 요르단의 아시안컵 16강전 승부차기에서 선수들을 독려하는 박항서 감독. [뉴스1]

“난 키가 작아서 베트남 선수들 비애를 잘 압니다. 작지만 기동력 있는 축구를 펼치겠습니다.”

박항서(60)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은 2017년 베트남축구협회 임원 면접 때 머리 위에 손을 대고 이렇게 말했고 한다. 당시 지원자가 300명에 달했다. 박 감독 특유의 솔직한 화법에 임원들은 크게 웃었고, “당신의 축구를 이해하겠다”고 호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요르단과 아시안컵 16강전에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는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베트남 성인 남성의 평균 키는 1m65㎝ 정도인데, 박 감독 키도 1m70㎝다. 선수 시절 박 감독과 함께 뛰었던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박)항서 키가 실제로 재보면 1m70㎝에서 1㎝가 모자랐던 거로 기억한다.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녀 별명이 ‘밧데리(배터리)’였다”고 전했다.

2019 아시안컵 축구대회에 출전한 베트남 대표팀 평균 키는 1m75㎝로 24개 참가국 중 최단신 팀이다. 1위 이란(1m84㎝), 2위 한국(1m83㎝)보다 10㎝ 가까이 작다. 미드필더 트란민부옹(1m65㎝) 등 1m60㎝대 선수가 5명이다. 그런 ‘꼬꼬마 군단’ 베트남 선수들이 ‘밧데리’ 박항서처럼 뛰고 있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20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알 막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 베트남과 요르단의 경기 승부차기에 앞서 선수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날 경기는 베트남이 승부차기를 통해 4대 2로 승리했다. [뉴스1]

베트남은 20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아시안컵 16강전에서 요르단과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2로 승리했다. 조 3위로 16강에 간신히 올라온 베트남은 조 1위 요르단보다 휴식 기간이 이틀 짧았다. 체력 면에서 불리했다. 박 감독은 짧게 짧게 연결하는 패스 축구로 맞섰다. 파이브백 수비를 포백으로 전환했고, 양쪽 측면 선수를 전진배치 했다. 후반 6분 베트남 응우옌 꽁푸엉이 발리슛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20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알 막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 베트남과 요르단의 경기 연장전에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뉴스1]

2017년 10월 박 감독이 처음 지휘봉을 잡았을 때만 해도, 베트남은 속된 말로 ‘당나라 군대’ 같았다. 더운 날씨 탓에 선수들은 경기든 훈련이든 쉽게 포기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뒹굴었다. 그 과정에서 박 감독은 베트남 선수들에 대해 ‘체격이 작을 뿐, 체력과 민첩성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처방을 내렸다. 선수들에게 밤마다 30분씩 상체 강화 트레이닝을 시켰다. 오리고기, 우유 등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권했다.
20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막툼 경기장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요르단과 베트남과의 16강전에서박항서 감독이 연장 후반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감독은 “폭스스포츠 기자가 ‘베트남이 수비축구를 한다’고 혹평했던데 인정하기 싫다. 우리 베트남은 우리 몸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실리 축구를 한다”고 반박했다. 박 감독은 경기 전 “오늘도 전쟁이 시작됐다. 피곤하다는 건 변명이 되지 않는다. 끝까지 싸우고 포기하지 말자”고 독려했다.
베트남 8강으로 이끈 박항서 (아부다비=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20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막툼 경기장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16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둔 베트남 박항서 감독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이 쓰러지면 벤치 앞까지 달려나가 항의하는 등 한마음으로 뛰었다. 베트남 골키퍼 당반럼은 “박항서 선생님이 늘 믿음을 주신다”고 말했다. 베트남 매체 더타오반호아는 “마법의 지팡이를 쥔 박항서의 지휘로 승리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한국과 베트남에서 박 감독 인기는 방탄소년단(BTS) 못지않다. 박 감독은 프로축구 3부 리그인 내셔널리그 창원시청 감독을 맡아 정년 퇴직까지 바라볼 수 있는 입장이었다.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인물이, 해외의 약팀을 이끌고 기적을 써가는 스토리에 모두가 열광한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20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알 막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 베트남과 요르단의 경기 승부차기에서 승리한 후 선수들과 포옹하고 있다. [뉴스1]

진심이 묻어나는 박 감독의 인터뷰도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다. 박 감독은 요르단전 직후 이렇게 말했다. “박항서 매직? 베트남은 저 혼자만의 팀이 아닙니다. 우리 코치진과 선수들이 함께 한 겁니다. 행운은 그냥 오는 게 아닙니다. 맡은 일에서 노력을 다했을 때 결과가 나옵니다. 오늘 경기 역시 100% 행운만 따른 건 아닙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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