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고용안정 위한 법인데"..대학가, 대량해고 '초읽기'

이혜인 기자 2019. 1. 20.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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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8월 시행 앞둔 ‘강사법’ 놓고 벌써부터 한숨
ㆍ재정 부담 우려 ‘강좌 통합’ 등 선제적 구조조정 움직임
ㆍ“200명 이상의 대형강의 늘어날 것” 학습권 침해 불 보듯
ㆍ대학들 ‘꼼수’에도…교육부는 “자율성 사안, 개입 못해”

올해 8월 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대학들이 지난해 말부터 강의 통폐합 등을 통해 강사 수를 선제적으로 줄이고 있는 정황이 포착돼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등 대학 관련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말 부산대 시간강사들이 구조조정 없는 강사법 적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 참가한 한 강사가 팻말을 들고 있다. 부산대는 지난 3일 강사를 해고하지 않기로 했다. 연합뉴스

“이렇게 강의를 한꺼번에 다 폐지시키는 것은 처음 봤어요. 지금은 잠잠해도 2월에 학생들 수강신청할 때가 되면, 신청할 교양강좌가 없어서 학생들이 난리가 날 거예요.”

김어진씨(50)는 경기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시간강사다. 2년 전부터 서울과 수원캠퍼스를 오가며 3학점짜리 경제학 기초 강좌인 ‘경제학의 이해’를 가르쳤다. 특히 외국인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강의의 호응도가 높았다. 김씨는 “대학들이 외국인 학생은 점점 늘리는데, 막상 그들이 들을 만한 수업이 많지 않다”며 “중국·베트남에서 온 학생들이 주로 수업을 들었는데, 이들은 한국 회사에 취직해서 한국에 정착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경제학 수업에 목말라했다”고 말했다.

인기에도 불구하고 김씨의 강의는 다음학기부터 없어진다. 학교 측은 강사나 학생들에게 상의 없이 비용 문제를 들어 외국인 대상 교양강좌 십여개를 한꺼번에 없앨 계획이다. 2011년부터 시간강사를 하면서 아주대·중앙대 등에서 강의를 쭉 해왔지만, 이렇게 강사들에게 통보도 없이 한꺼번에 강의를 없애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김씨는 “제 학생들 대부분은 방학 중이라 외국에 있어서 강의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며 “연구자들이 주로 가는 게시판에 글을 올려서, 저 같은 피해사례들을 취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 ‘강사법’이 강사 자르는 근거?

대학에서 강의가 사라지고 있다. 올 8월 예정된 강사들의 고용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벌어지는 일이다. 강사법 시행으로 추가 비용 발생이 예상되자 대학들이 선제적으로 강사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강사제도개선과 대학연구교육 공공성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강사 공대위)에서 파악한 바에 따르면 대학들은 이른바 ‘시간강사 제로’를 목표로 강사를 해고하고 그 자리를 전임·겸임교수로 대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구대, 대구가톨릭대, 동아대 등은 각 100~300명에 이르는 강사에게 해고 통보를 했다. 가천대, 신라대, 고신대는 강사를 겸임 교원으로 대체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강사법의 시행 취지와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강사법은 2010년 조선대 시간강사로 일하던 서정민씨가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우를 호소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계기로 만들어진 법안이다. 4차례 법 시행이 유예되면서 지금의 강사법이 만들어졌다. 시간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주고 1년 이상 임용하되,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3년까지 재임용을 보장하는 게 골자다. 방학 중 임금·퇴직금을 지급해야 하고, 향후 시행령에는 합의안에 따라 학기당 강의시간을 주 6시간 이하로 정하는 등 세부사항이 담길 예정이다.

강사법이 시행되면 대학이 강사 인건비로 지출하는 비용은 늘어나게 된다. 이를 감안해 교육부는 올해 하계 방학 기간 동안 전국 대학의 강사들에게 지급될 임금 577억원 중 절반인 288억원을 ‘강사 처우 개선’ 항목으로 각 대학에 지원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대학들은 강사를 줄이기 위해 온갖 ‘꼼수’를 부리고 있다. 두 명의 강사가 각각 3학점짜리 수업을 하던 것을 한 명의 강사에게 몰아주거나, 전임교원의 강의 시수 늘리기, 강좌 통합을 통한 200명 이상 대형 강의 늘리기 등 다양한 꼼수들이 동원되고 있다.

김진균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한교조) 성균관대 분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계속돼온 상황”이라며 “이 밖에도 폐강기준을 완화하거나, 사이버 강의를 늘리는 식으로 대학들이 장기적으로 강사 수를 줄이기 위한 대책들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남대의 경우 지난해 전체 시간강사 수를 640명에서 470명으로 대폭 줄이겠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부는 느긋하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들에 공문을 보내서 강사 고용 상황에 대해서 취합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 “200명 넘는 강의 너무 많아져”

강사 대량해고는 강사들의 고용 안정뿐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권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강의를 늘려도 부족한 판인데 강사 해고로 강의가 줄기 때문이다. 김용섭 한교조 영남대 분회장은 “대학생들은 200명 넘는 강의를 너무 많이 듣고 있다”고 말했다.

한교조는 정부가 대학에 연구비를 지원하는 대학혁신지원사업의 평가항목에 ‘강사 고용 안정’과 관련된 항목을 넣는 것이 강사법이 안착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연구지원사업인 BK21이나 대학인문역량강화를 위한 ‘CORE’ 사업 등 대학재정지원사업 지표에 전임교수가 맡은 강의 시수가 적정한지, 한 강의당 학생 수가 적절한지 등의 평가항목을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해법에 교육부는 소극적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이 교원을 고용하는지는 헌법에도 보장된 대학의 자율성으로 보장되는 사안”이라며 “대학혁신지원사업 성과 판단이 올해 4~5월에나 이뤄질 것이라서, 관련 지표를 수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는 “대학들은 정부 지원이 없으면 존립하지도 못할 것처럼 이야기하고, 아픈 부분을 건드리면 대학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한다”며 “강사법은 대학원과 교육정책과도 관련돼 있지만 정부가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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