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의 역발상..농민들 집념으로 익어가는 '한반도 바나나'

윤희일 선임기자 2019. 1. 2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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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태안·포항서 시험 재배 성공
ㆍ열대·아열대 작물 키워보니 새 농가소득원 가능성 보여
ㆍ“바나나 농가소득, 쌀의 40배” 재배 면적 해마다 증가 추세…강원 등 전국 지자체서 관심

충남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 시설하우스에서 이용권씨가 재배하고 있는 바나나. 충남 태안군 제공

최근 충남 태안군 안면도의 한 농가가 대표적인 열대과일인 바나나를 시험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안면읍 창기리에 사는 이용권씨(53)는 4년 전 2314㎡ 규모의 시설하우스 안에 바나나 나무 10여그루를 심었다. 이씨가 키운 바나나는 다음달 말 첫 수확을 앞두고 있다.

예전부터 해양성 기후를 보여온 태안반도 지역은 겨울철 날씨가 온화한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더해지면서 과거 같으면 겨울철에 말라죽던 상당수 식물이 겨울이 돼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현상이 잦아졌다. 이런 상황에 주목한 이씨는 열대·아열대 작물을 키워보기로 하고 제주도에서 바나나와 파파야 등을 들여와 심었다.

결과는 당초 예상을 크게 뛰어넘었다. 현재 열매를 맺은 바나나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생산성도 높고 바나나의 품질도 좋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씨는 “바나나 나무 1그루당 수확 예상량이 50㎏으로 일반적인 수확량인 30~35㎏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태안반도의 풍부한 일조량 등의 영향으로 당도도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에서도 최근 바나나 재배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 한모씨(43) 형제가 최근 바나나 재배에 성공한 것이다. 한씨 형제는 논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고 바나나 나무 400그루를 심었다. 포항시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현재 순조로운 착과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착과된 바나나는 3월 중하순에 수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씨 형제는 포항시 흥해읍 일원을 포함한 동해 남부지역의 따뜻한 기후를 바탕으로 열대·아열대 과수를 재배하면 경제성이 있다는 포항시농업기술센터 등의 판단에 따라 바나나 재배를 시작했다. 포항시농업기술센터 최규진 소장은 “이번 바나나 재배가 성공하면서 우리 지역에서도 열대과일이 새로운 농가 소득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아열대 농업 기술을 더욱 확대 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포항시농업기술센터는 바나나 농사를 제대로 지을 경우 단위면적당 농가 소득이 쌀의 40배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지구온난화 이후 국내에서는 제주도에서나 재배되는 것으로 알려진 바나나가 중부지방으로까지 올라오면서 머지않아 한반도 곳곳에서 바나나 재배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제주도 이외 지역의 일반 농가에서 바나나 재배에 성공한 사례는 그동안 없었다.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김성철 농업연구관은 “바나나가 태안을 비롯한 중부지방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아열대화가 본격화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관은 “아직까지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난방을 하는 방법으로 바나나를 재배하는 등 당장 노지에서 바나나를 재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온난화의 가속화로 난방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게 되면서 중부지방의 농가들까지 바나나 재배에 나설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산 바나나가 본격적으로 생산된다면 신선하고 안전한 국산 과일에 대한 신뢰가 높은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안·포항 등에서 바나나 재배가 성공하자 전국 곳곳의 지자체·농민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포항 바나나 재배 농가에는 최근 전북은 물론 강원지역 농민들까지 찾아와 바나나 농사를 배워 갔다.

바나나 재배가 성공한 이후 커피 등 다른 열대·아열대 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시도도 늘어나고 있다. 포항농업기술센터는 커피나무 시범재배장을 새로 설치하고 ‘국산 커피’ 재배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로 했다.

충북농업기술원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들을 돕기 위해 아열대 작물 연구에 나섰다. 충북농업기술원은 현재 차요테와 산타클로스 멜론 등 아열대 작물을 충북지역에서 재배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는 전남도는 아예 관내에 ‘아열대농업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경지 면적 중 아열대 작물 경지 면적은 2020년 10.1%에서 2060년 26.6%, 2080년 62.3%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반도 대부분이 아열대 기후권에 속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의 열대·아열대 작물 재배 면적은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2년 99.2㏊이던 열대·아열대 작물 재배 면적은 2017년 356.3㏊로 3.6배 늘었다. 2020년에는 100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열대·아열대 작물을 키우는 농가는 2017년 말 기준 1730농가로 집계되고 있다.

안면도에서 바나나 재배에 성공한 이씨는 “지난해에 열대과일인 파파야를 4t가량 생산해 2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면서 “지구온난화가 닥쳐도 신선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바로 농민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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