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 인출도 본인 직접 와야"..우체국, 정신장애인 과도한 제약

입력 2019. 1. 20. 20:16 수정 2019. 1. 20.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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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의 한 요양원에서 지내는 ㄱ(정신장애 2급, 지적장애 3급)씨는 지난해 병원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었다.

ㄱ씨의 '금융생활'이 이처럼 험난해진 것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금융기관의 과도한 거래제한 탓이 크다.

ㄱ씨는 1만원을 찾으려고 해도 우체국에 가야 한다.

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법원 결정의 범위를 넘어서는 금융거래 제약은 타당하지 않다. 법원의 후견 심판을 바탕으로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해야지 그 권리를 과도하게 제약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선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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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후견' 제도 되레 차별로 작용
장애인들, 우정사업본부 상대 소송
<한겨레> 자료사진

충남 논산의 한 요양원에서 지내는 ㄱ(정신장애 2급, 지적장애 3급)씨는 지난해 병원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었다. 장폐색 등으로 인한 입원 치료비 200여만원을 결제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 직원이 급한 대로 병원비를 대납해준 덕분에 겨우 치료를 이어갈 수 있었다.

ㄱ씨의 ‘금융생활’이 이처럼 험난해진 것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금융기관의 과도한 거래제한 탓이 크다. ㄱ씨는 가정법원으로부터 ‘한정후견’ 심판을 받았다. 요양원이 외진 곳에 있어 가까운 금융기관은 우체국과 농협뿐인데, 후견인의 경제적 도움을 받는 ㄱ씨는 우체국 계좌를 이용한다.

하지만 우체국은 후견인이 있는 정신장애인의 경우 매번 우체국을 방문해야 돈을 인출해주고 있다. ㄱ씨는 1만원을 찾으려고 해도 우체국에 가야 한다. 예금계좌가 있지만 우체국은 현금카드를 발급해주지 않는다. 인터넷뱅킹도 할 수 없다. 방문 현금 인출도 100만원이 넘으면 후견인을 우체국 창구까지 동행하도록 했다. 후견인의 서면동의서를 제출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같은 요양원에서 지내는 ㄴ씨도 마찬가지다. 면도기나 간식거리를 사려고 해도 당장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우체국에 가야 한다. ㄴ씨는 한정후견 심판을 받기 전에는 문제없이 자기 통장을 관리해왔다. 그는 “내 돈인데 왜 건건이 허락을 받고 써야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와 관련해 우정사업본부는 “법원의 한정후견 심판 결정에 따라 한정후견인의 동의 의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동행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원의 결정문에는 “예금계좌에서 해당 인출일 이전부터 30일 합산한 금액이 100만원 이상인 경우 한정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하다”고만 돼 있다.

이런 이유로 법조계 일부에서는 우체국 등의 이런 금융거래 제한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금융상품 및 서비스 제공 차별금지)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신장애인의 권리 행사를 일정 부분 제한하더라도 그 범위를 최소화해야 하는데, ‘후견인 동의서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막연한 우려만으로 과도한 제한을 한다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도 정신장애인의 금융거래를 과도하게 제약한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일 “치매, 발달장애, 정신장애 등으로 자기 결정을 온전히 할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필요한 범위에서 대리 결정을 하도록 하는 것이 후견제도”라고 설명했다. 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법원 결정의 범위를 넘어서는 금융거래 제약은 타당하지 않다. 법원의 후견 심판을 바탕으로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해야지 그 권리를 과도하게 제약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선 안 된다”고 했다.

ㄱ씨와 ㄴ씨 등 정신장애인 18명은 지난해 11월 정부와 우정사업본부 등을 상대로 장애인 차별 행위를 중지하라며 소송을 냈다.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일반인들과 동일한 권리·행위능력을 유지하도록 보조하는 것이 후견제도의 목적이다. 장애인 보호라는 이름으로 그 권리를 부당하게 축소해선 안 된다”고 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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