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긴급회의 "올해 가격 최대 30% 떨어질 것"
한국 경제의 주력 수출 제품인 D램 반도체 가격이 올해 추가로 최대 30%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지난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호승 기획재정부 1차관이 소집한 '반도체 전문가 간담회'에서 나온 분석이다. 이 자리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임원들과 반도체 관련 협회, 증권사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업계를 대표하는 반도체산업협회의 안기현 상무는 "반도체 수요 감소에다 생산 기술 개선에 따른 원가 절감까지 더해져 올해 전반적으로 D램 가격이 30%가량 떨어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D램 반도체 고정 거래 가격(기업 간 대량 거래가)은 작년 9월 개당 8.19달러로 고점(高點)을 찍었지만 10월에는 7.31달러로 10.7% 급락했다. 이후 하락세가 이어지며 작년 말에는 7.25달러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 가격이 올해에는 5달러대까지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다. 안 상무는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면 시장이 커지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공급량을 늘려 매출은 작년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순익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해외 시장조사기관을 중심으로 올해 가격 하락 폭이 클 것이란 전망은 꾸준히 있었지만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이 같은 구체적인 수치가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반도체 '큰손'들, 재고 쌓아놓고 구매 미뤄
이날 간담회는 반도체 가격이 작년 4분기부터 꺾이자 '반도체발(發) 경제 쇼크'를 우려한 정부가 전문가들을 소집한 자리였다. 반도체는 지난해 한국 수출액의 20% 이상을 차지한 효자 산업이다. 관세청이 이달 1~10일 한국 수출액을 집계한 결과, 반도체 수출이 27.2% 줄어든 여파로 전체 수출액이 7.5% 하락할 정도다. 기재부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비공식 간담회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 동향과 전망을 중점 논의했다"고 말했다. 전날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반도체 경기가 안 좋다는데 요즘 어떠냐"고 물을 만큼 정부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반도체 가격 하락은 제품 공급이 늘어난 만큼 수요가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PC용 CPU(중앙처리장치) 공급 부족, 스마트폰 시장 둔화의 영향으로 메모리 반도체 판매가 타격을 입었고 가상 화폐 가격 급락에 따른 채굴용 PC 수요 감소도 악영향을 미쳤다. 반도체 가격 추가 하락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과 같은 주요 고객사들이 구매를 미루는 것도 낙폭(落幅)을 키우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미 고객사들이 지난해 반도체를 대거 구매해 재고(在庫)가 충분한 데다 작년 IT(정보 기술) 업계 실적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아 올 들어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 반등 기대하지만 실적 하락 불가피"
반도체 기업들은 공급 과잉 해소를 위해 올해 설비 투자 감축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증권 황민성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올해 반도체 장비용 설비 투자는 당초 7.7조원으로 예상됐지만 경기도 평택의 D램 증설 투자를 줄이며 이를 6.7조원 수준으로 낮췄다"며 "투자와 생산 축소를 통한 재고 소진에 중점을 두는 것"이라고 했다. SK하이닉스도 작년 10월 콘퍼런스콜(투자자 회의)에서 "올해(2018년)는 반도체 공급 부족에 따라 투자를 적극적으로 진행했지만 내년(2019년)에는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올해 대비 투자 지출 규모를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올 하반기 반도체 수요가 다시 늘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기존 재고가 소진되고 5G(5세대 이동통신)가 본격 상용화되면서 데이터센터 투자가 늘고 반도체 수요도 다시 올라간다는 것이다. 다만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 전문가는 "오는 5월쯤부터는 수요가 다시 조금씩 살아날 것으로 보이지만 1분기의 가격 하락폭이 워낙 큰 만큼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실적 하락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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