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강민정] ‘일’의 새로운 정의

입력:2019-01-18 04:05
수정:2019-04-2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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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된 일터’는 산업혁명 시기의 개념일 뿐… 지금 청년에겐 일을 선택할 자유가 필요하다


‘새해’와 함께 언급된 단어의 빈도를 어느 포털에서 분석해보니 작년까지만 해도 없었던 ‘퇴사’가 순위권에 올라왔다고 한다. 한 취업사이트에서는 입사 후 1년 안에 회사를 그만두는 청년들이 66%라는 조사 결과를 내기도 하였다. 취업준비와 스펙 쌓기로 대학시절을 보내고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은 뒤 드디어 취업해서 한시름 놓았는데, 퇴사라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25~34세 청년층의 절반 이상이 전문대 이상을 졸업해, 하향 취업 규모가 30%에 이른다.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이라는 청년들은 저임금과 권위적인 조직 문화,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을 견디다 결국은 진정한 나의 삶을 찾겠다며 퇴사를 꿈꾼다.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무한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은 안정을 희구한다. 2017년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으로 꼽은 것은 공무원과 공기업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농담 코드였던 ‘요즘 아이들의 꿈은 정규직’은 이제 엄연한 현실이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들어간 안정된 직장에서 청년들은 행복할까. 먹고 살기 위해, 혹은 더 많은 부와 높은 지위를 위해, 자신의 개성이나 취향과는 상관없이 진로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청년들이 퇴사를 꿈꾸는 이유다. 우리의 삶에서 진정한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면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이라면, 우리의 일과 삶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탈일자리(dejobbing) 시대가 오고 있다. 아침이면 출근해 8시간 동안 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고정된 일터의 종말을 의미하며 각자가 전 생애에 걸쳐 ‘일의 포트폴리오’를 꾸려가며 살게 된다는 뜻이다. 일을 제공하고 필요로 하는 당사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서비스가 생겨나면서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채용하는 크라우드 워커(crowd worker)가 확산 중이다.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에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추세가 더해지면서, 장기화된 청년실업이 해소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일자리를 새롭게 정의하여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청년들 스스로 새로운 일과 삶을 정의하도록 하는 것이다.

고정된 일터는 산업혁명 이후 대공장 시대가 도래하며 등장한 것으로,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볼 때 특정 시기에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고용’된 형태의 일자리는 우리 삶의 많은 일을 가치가 없는 일로 바꿔버렸다. 문화·창작 활동과 돌봄 노동은 가치 있는 일인데도 기업과 고용 계약을 맺기 힘든 분야여서 노동가치가 제대로 매겨지지 않는다.

돌봄 노동이 건강하고 공감능력이 있으며 효율적 조직능력이 있는 프로페셔널의 영역으로 재정의된다면 어떤 가치가 매겨질까. 지역 혁신 비즈니스나 지역 공동체의 다양한 비영리 활동이 제대로 된 일로 정의된다면 청년들의 창의성이 더해져 더 큰 사회적 가치를 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우리 삶의 다양한 일들에 제대로 가치를 부여하고 사람들이 이 일을 통해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시각을 바꿔보자. 청년들 스스로 일과 삶을 재정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 ‘스스로 일을 조직하는 형태’인 창직과 창업을 통해 자유로운 일과 삶이 가능해진다면 인간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굳이 한정된 일자리를 찾아 서울을, 대기업을, 엘리트를 지향할 필요가 없어진다. 교육현장에 무의미한 스펙 경쟁이 없어지고,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닌 더 의미 있는 존재를 지향하는 삶을 희구하게 될 것이다. 지역에서의 소박한 삶, 함께 나누는 삶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다. 공무원과 정규직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기업가정신 함양에 청년들은 더 시간을 쓰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환이 가능하려면 청년들이 진정한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청년들에게 자신을 발견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갭이어를 줘야 한다. 국가도 고정된 일터 중심의 사회 보장 정책을 넘어 고용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의 안정성을 보장하도록 복지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여야 한다. 청년들이 미래를 계획할 때, 잠시 일에서 벗어나 있을 때, 경제적 불안 없이 살아 갈 수 있도록 기본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제도적 뒷받침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꿔낼 수 있다. 청년들은 지금 선택의 자유가 필요하다.

강민정(한림대 교수·사회혁신경영 융합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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