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역 칼부림..경찰은 움찔, 시민은 외면, 범인만 당당했다

박성우 기자 2019. 1. 1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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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퍼진 ‘암사역 칼부림’ 논란
①움찔 공권력, 누구를 믿어야 하나
②피해자 못들어오게 문 닫아…옳았나
경찰 "동영상은 일부, 제대로 대응했다"

13일 저녁 유튜브에 ‘암사역 칼부림 사건’이라는 2분 13초짜리 동영상이 올라왔다. 영상 속에서 흉기를 쥔 한모(19)씨는 두 명의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대치 과정에서 경찰은 한씨를 제압하지 못했다. 테이저건을 쐈지만 먹히지 않았고, 삼단봉은 펼쳤으나 휘두르지는 못했다.

여유가 있던 쪽은 오히려 한씨였다. 그는 경찰관 앞에서 담배를 빼물거나, 손가락에 묻은 피를 빨아 먹었다. 경찰관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자 한씨는 흉기를 쥐고 시민들이 몰린 쪽으로 달아났다. 인파 속에서 비명이 나왔다.

영상을 접한 시민들은 "흉악범 앞에서 움츠러든 경찰의 모습에 충격 받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논란은 또 있다. 흉기에 찔린 피해자가 가게 앞에 쓰러지자, 매장 안에서 도와주기는커녕 문고리를 잡고 못 들어오게 막는 장면이 영상에 잡힌 것이다.

지난 13일 오후 7시쯤 ‘암사역 칼부림’ 피의자 한씨가 암사역 3번 출구 앞에서 커터칼을 든 채 손가락에 묻은 피를 빨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모습. /유튜브 캡처

◇‘움찔 공권력’ 도대체 몇 번째냐
"영상을 보면, 칼까지 든 흉악범인데 경찰이 즉각 제압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아서 답답했습니다. 이미 사람이 찔렸는데...총이라도 쏴서 체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시민 정수연(32)씨 얘기다. 동영상을 모두 봤다는 시민 백영민(35)씨는 "범인 앞에서 움찔하는 경찰의 등을 보면서 슬픈 기분이 들었다"고 했고, 오진석(38)씨도 "내가 만약에 저런 상황에 몰렸을 때 공권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고 말했다.

‘움찔 공권력’ 동영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4월 광주광역시 택시 승차 시비로 피해자를 실명에 이르게 한 집단 폭행사건도 시민들을 답답하게 했다. 문신이 드러나게 웃통을 벗은 가해자들은 돌, 나뭇가지로 끔찍하게 구타했다. 이 광경을 촬영한 동영상에서 일부 경찰은 가해자 위세에 눌려 움찔거렸다. 영상은 급속히 퍼졌고 "경찰은 뭐 했냐"는 비판이 일었다.

지난해 4월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한 집단 폭행 사건현장. 문신을 한 남성 등 성인 7명이 피해자를 폭행하는 모습.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허수아비 공권력’이라는 말까지 나오자 당시 광산경찰서 측은 "출동 경찰들이 어떤 상황인지, 누구를 잡아야 하는지 초반에 파악하는 과정이 동영상에 담긴 것"이라면서 "도착하자마자 테이저 건을 쏘며 강제 진압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밝혔다.

‘암사역 칼부림’에 대한 경찰 해명도 비슷하다.
"칼부림 당사자들이 모두 미성년자인데다, 시민들이 둘러싸서 구경하는 상황을 고려했습니다. 권총을 쓸 상황은 아니었어요. 테이저건을 쐈지만 전극침이 제대로 꽂히지 않아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흥분한 범인에게 섣불리 달려들기보다는, 지원병력이 올 때를 기다렸다가 확실히 검거한 겁니다. 동영상 잠깐만 보고 ‘왜 그리 오래 대치했냐’고 하면 힘이 빠집니다." 최초 사건현장에 출동한 서울 강동경찰서 천호지구대 관계자 말이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14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영상의) 부분만 보면 경찰이 주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확인한 바로는 법 집행 절차대로 한 것"이라고 거들었다.

그러나 경찰 내부에서도 "소극적이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피를 본 범인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추가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즉각 제압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찰 간부 김모(50)씨는 "실탄 사용이 망설여지는 것은 현직경찰로서 이해가 되지만, 자칫 잘못하면 시민들이 위험한 상황이었다"면서 "흉기를 쥔 범인이 군중 속으로 뛰어들기 전에 어떻게든 제압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건 이튿날인 14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공권력을 강화해달라"는 청원 글이 60여건 게재됐다. 한 청원인은 "사람에게 중상을 입힐 수 있는 흉기를 든 사람이면 권총으로 사격하여 제압할 수 있도록 발포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썼다.

지난 13일 오후 7시쯤 ‘암사역 칼부림’ 피의자 한씨가 칼을 들고 한 매장 앞에 앉아있는 박씨를 위협하고 있다. 매장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출입문을 붙잡고 한씨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다. /유튜브 캡처

◇나만 아니면 돼? 시민의식 갑론을박
암사역 칼부림 동영상은 또 다른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피해자가 찔려 바닥에 쓰러졌는데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가 "악"하는 비명과 함께 화장품 가게 앞에 쓰러지자 매장 안의 사람들은 문을 닫았다. 일부는 출입문을 잠그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시민 김민주(27)씨는 "영화 ‘부산행’에서 자기가 살겠다고, 위기에 몰린 다른 시민들 앞에서 문을 잠그는 장면이 떠올랐다" "만약 매장 밖에 있던 피해자가 본인이거나 가족이어도 그렇게 했을까 싶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진규(36)씨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 전반에 흐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다수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반론도 있다. 강동구 천호동에 거주하는 차명진(53)씨는 "제3자가 보면 ‘어떻게 돕지도 않고 건물 내부에 피신해있냐’고 쉽게 비판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막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암사역 부근에서 분식집을 하는 임모(64)씨도 "칼을 든 범인이 매장 안에 들어왔다면 더 큰 피해가 생길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이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문을 닫는 것이 옳았느냐’에 대한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화장품 매장 측은 "따로 말씀드릴 부분이 없다고 판단해, 입장을 내놓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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