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탄수화물] ③ 구석기 식단으로 회귀? 농부의 식단은 왜 거부당하나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19. 1. 1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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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1만년 전 사냥꾼·채집인에서 농부로 변신하며 정착
고기·골수·씨앗·열매에서 쌀·밀·보리 등 곡물로 주식 바뀌어

쌀밥은 여전히 한국 밥상의 주식이지만, 탄수화물 과다 섭취가 건강에 이롭지 않다며 꺼리는 이들이 늘면서 그 위상이 위협받고 있다./조선일보DB

‘구석기 식단’ 혹은 ‘펠리오 다이어트(Paleo Diet)’를 지지하는 이들은 "탄수화물을 주식(主食)으로 삼은 건 인류 전체 역사를 봤을 때 매우 짧은 기간으로, 건강을 위해서는 육류·견과류·과일 등 구석기 인류가 먹던 식단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구석기시대의 몸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곡물을 주식으로 삼을 만한 유전자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풀무원기술원 남기선 센터장(영양학박사)는 "구석기인들이 탄수화물을 주식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육류를 비롯 곡물·채소·과일·견과류 등 다양한 식품으로 구성된 식단을 가졌으며, 전체적으로 먹거리가 부족해 식사량이 많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탄수화물을 위주로 한 식단을 갖게 됐을까.

◇탄수화물 주식된 건 인류 역사 700분의 1에 불과

인류가 탄수화물을 주식으로 삼은 건 1만 년쯤 됐다. 물론 긴 시간이다. 하지만 인류가 700만 년 전 유인원에서 분화했다고 추정한다면, 1만 년은 인류 역사(700만 년)의 700분의 1에 불과하다.

699만 년 동안 탄수화물은 주식이 아니었다. 초기 인류는 사냥꾼과 채집인이었다. 사냥으로 잡거나 정찰 나갔을 때 발견한 죽은 짐승의 고기나 알, 젖을 먹었다. 일본 동물학자 시마 타이조(島泰三) 박사는 옛 인류의 주식이 동물의 뼈와 골수라는 대담한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식물의 열매나 씨앗이 맺히는 계절이면 이것들을 구해다 먹기도 했다.

1만8000년쯤 전 빙하기가 끝났다. 지구 기온이 상승했다. 초원이 줄어들자 그동안 인류가 사냥하던 거대 동물도 줄어들었다. 인류는 사냥보다 채집에 의존해야 했다. 독일 라이프니츠 대학 식물지리학연구소 한스외르크 퀴스터 교수는 ‘곡물의 역사’에서 "사람들은 주변에 식물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완전히 의도적으로 수많은 장소에 헤이즐넛을 심었다"고 했다.

인류는 전분 성분 즉 탄수화물을 함유한 큰 낟알이 달리는 식물을 채집해 식용할 수 있다는 걸 알게됐다. 차츰 인류는 이렇게 수집한 낟알을 다시 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만1000년 전 레바논, 이스라엘, 시리아, 터키 아나톨리아, 이란, 이라크 산악지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인류는 처음으로 재배식물을 활용했다. 농업의 탄생이었다.

◇300년 전 탄수화물 고도로 정제되면서 과다섭취 해로워져

쌀은 별다른 가공 없이 먹어도 맛있다는 편의성 덕분에 아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곡물이 됐다./조선일보DB

한국에서 탄수화물 특히 쌀은 언제 주식이 됐을까. 한반도에서는 신석기시대 농경이 도입됐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벼농사는 기원전 10~15세기 경까지 소급되나 논란이 많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시대 귀족은 쌀을 먹었지만 하층민인 대부분의 서민은 피·조·보리·기장 등 잡곡을 주로 먹었다. 1970년대 다수확 품종 벼 도입 이전까지 대부분 한국인의 주식은 잡곡이었다. 쌀은 가장 맛있고 선망하던, 귀한 탄수화물이었다.

과거에는 하루 두 끼를 먹었고 반찬이 별로 없었으니 탄수화물을 다량 섭취한 건 세계적 현상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심하달 수준이었다.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 사람들이 한국인의 밥량에 놀라 기록으로 남길 정도였다. 조선후기 한 끼 식사로 성인 남자가 7홉, 여자 5홉, 아동 3홉, 어린아이 2홉을 먹었다. 조선시대 1홉이 약 60ml이니까 남자 어른 한 끼 밥양이 무려 420ml나 된다. 요새 식당이나 가정에서 흔히 쓰는 밥 공기 용량이 290ml이다. 성인 밥 한 그릇이 조선후기 갓난아기의 그것보다 작다.

이같은 기록을 근거로 ‘탄수화물 다량 섭취는 건강에 해롭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옛날 쌀은 요즘과 달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는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에서 "쌀밥이라고 해도 오늘날의 흰쌀밥을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했다. "껍질만 가볍게 벗기고 속겨는 벗기지 않은 ‘매조미쌀’(현미)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밥맛은 지금과 달리 거칠었다." 쉽게 말해 우리 조상들은 쌀밥을 먹었다 하더라도 주로 현미를 먹은 셈이다.

고도로 정제된 탄수화물이 식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건강을 위협하게 된 건 18세기부터다. 미국 과학·건강·의학 전문 기자 게리 토브스는 ‘굿칼로리 배드칼로리’에서 "농경의 시작으로 저탄수화물 식이에서 고탄수화물 식이로 변화"했고, "지난 몇백 년 동안 탄수화물의 정제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밀가루를 정제하는 기술이 발달했고, 흰 빵이 보편화됐다. 이전까지는 한국의 흰 쌀밥과 마찬가지로 흰 빵은 유럽에서 부자들만 먹을 수 있는 비싼 고급 식품이었다. 일본에서는 에도시대 중기 흰 쌀밥을 먹는 습관이 정착됐다.

탄수화물이 건강의 적으로 여겨지면서 세계적으로 섭취량이 줄고 있다. 한국에서도 매년 쌀 소비량이 최저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통계청 ‘2017 양곡소비량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1.8kg으로 역대 가장 낮다.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은 169.3g. 밥 한 공기가 쌀 90g 기준이니 하루에 두 공기를 채 먹지 않는 셈이다. 고기와 열매, 씨앗 위주의 ‘구석기 식단’으로 돌아가는 날이 멀지 않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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