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베트남 제삿상엔 초코파이가 오른다
- 한국의 情, 베트남서도 통했다
개방초기 시장선점·고급화 전략.. 인구 1억 나라서 年 5억개 팔려
집집마다 제단에 초코파이 박스.. 설날 절에선 초코파이로 탑 쌓아
지난달 11일 오후 베트남 호찌민 시내 빈탄구(區) 재래시장(市場) 인근에 있는 2층 주택. 전업주부인 딘 홍 응언(28)씨와 남편이 처가살이를 하고 있는 집 2층 거실에 들어서자, 높이 1m 정도의 제단(祭壇)에서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친조부 영정 사진이 놓인 제단에는 베트남 국화를 꽂은 작은 화분과 포도·망고·키위 등 과일 접시, 술잔이 놓여 있었다.
특이한 건 제단 오른편에 오리온 초코파이가 박스째 놓여 있었다는 점이었다. 향을 양손에 공손하게 잡고 허리를 숙여 절을 한 응언씨는 "내가 열 살도 되기 전인 20년 전부터 부모님이 제단에 초코파이를 올리셨다"며 "이젠 내가 초코파이를 사서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집집마다 제단 모시는 베트남… 공물로 매일 초코파이 올리는 게 일반적 유교 문화가 남아 있는 베트남에선 집집마다 제단을 마련해서 조상을 기리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처럼 명절이나 기일에만 제를 지내는 게 아니라 응언씨처럼 일반 가정에선 상시적으로 제단을 마련해 놓는다. 초코파이가 베트남에서 제사상에 오르는 건 '프리미엄 과자'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응언씨는 "제단에는 양념이 강하지 않으면서도 귀한 음식을 놓는 게 전통"이라며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베트남 전통과자를 올렸는데, 요즘은 집집마다 초코파이를 제단에 올리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초코파이는 오리온이 정식 수출하기 이전인 1990년대 초부터 베트남에 퍼졌다. 당시엔 베트남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인들이 바이어나 현지 파트너에게 주는 선물용으로 퍼져 나갔다. 부 티 트이 흐엉(42) 오리온 베트남법인 옌퐁공장 부팀장은 "1990년대에 베트남에서 외국 과자를 맛보는 건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며 "당시 거의 처음으로 베트남에 들어온 외국 과자가 초코파이였다"고 말했다.
사회주의국가 베트남이 대외 개방 정책을 편 초기에 오리온 초코파이가 시장을 선점한 것이다. 오리온이 현지에서 초코파이를 생산·판매한 2006년에는 이미 베트남인 사이에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초코파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시장 선점·고급화 전략… 베트남 '1위 과자' 수성 이날 오후 찾은 호찌민시 고밥구에 있는 이마트. 스낵류가 모여 있는 코너 중 입구 쪽에 가까운 '요지'에는 선반 한 면이 온통 초코파이와 오리온 스낵류로 가득했다. 박스에는 한국에서 파는 초코파이와 같은 자리에 동일한 크기로 '띤(정·情)'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종연 오리온 베트남 법인 마케팅부문장은 "베트남 진출 초기부터 부모와 자식 간의 끈끈한 정을 강조하는 TV 광고를 내보내면서 베트남 국민과자가 됐다"며 "오리온 초코파이는 인구 1억 명인 베트남에서 1년에 낱개로 5억 개가 팔리며 과자 시장 전체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혼식과 결혼식의 하객 답례품으로도 인기다. 최대 명절인 설에 절에선 초코파이 박스로 탑을 쌓고 복(福)을 비는 사람도 많다. 설 특수는 월간 판매량에 뚜렷하게 드러난다. 작년의 경우 설 직전 두 달간 베트남에서 초코파이 월평균 판매 수량은 7693만 개로, 연간 월평균 판매 수량(4172만 개)의 1.8배를 기록했다.
베트남 현지 업체가 짝퉁 초코파이를 내놓기도 했다. 지난 2015년 베트남 현지 업체가 'ChocoPie' 상표를 단 제품을 무단 사용해 해외 수출까지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리온은 베트남 특허청(NOIP)에 상표권 취소 심판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오리온은 작년 4월 승소하며, 배타적 사용권을 인정받았다.
고가(高價) 정책도 유지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12개 들이 초코파이 한 박스의 가격은 우리 돈 2500원 정도다. 절대가격은 한국의 절반 정도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란 점을 감안하면 비싼 과자인 셈이다.
초코파이의 성공은 다른 제품으로도 이어졌다. 오리온은 '오스타'를 내세워 감자 스낵 분야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등 파이, 스낵, 비스킷, 스폰지케이크 등 4개 분야에서 베트남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이영균 오리온 홍보실장(상무)은 "오리온은 베트남에서 급증하는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온라인·모바일 마케팅 활동을 적극 펼쳐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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