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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조선왕조 500년…참모 40人의 `막전막후`

김시균 기자
입력 : 
2019-01-11 17: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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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로 산다는 것 /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펴냄 / 1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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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유성룡 초상화. [매경DB]
"처음에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서 생활을 했으므로 시집을 여러 번 갔었다. 그러다가 대군 가노의 아내가 되어서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가 되었는데,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 나이는 30세였는데도 얼굴은 16세의 아이와 같았다. 왕이 듣고 기뻐하여 드디어 궁중으로 맞아들였는데, 이로부터 총애함이 날로 융성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좇았고, 숙원으로 봉했다." 1502년(연산군 8년) 11월 25일에 쓰인 '연산군일기'의 한 대목이다. 천민이자, 기생이었고, 슬하에 아들까지 둔 30세 여인이 조선 왕의 간택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놀라운데, 이어지는 얘기는 더 기가 막힌다.

여인의 이름은 장녹수(張綠水). "얼굴은 중간 정도를 넘지 못했다"는 그는 그럼에도 당대 최고의 악녀이자 팜파탈로서 권세를 떨쳤다. '흥청(일등급 기녀)'들과 함께 '흥청망청' 노는 것이 취미인 폭군의 눈에 띄어 그의 마음을 온통 헤집은 것이다. 장녹수는 연산군 정권의 실질적 2인자였다. "(연산군이) 한창 장녹수를 사랑하여 그 말이라면 모두 따랐기 때문에 특별히 벼슬이 올라"(연산군일기)갈 수 있었다. 때로는 어린아이같이, 때로는 노예같이 그를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참모였고, 대로하던 폭군도 그만 보면 기뻐 강아지처럼 헥헥대며 웃었다.

'연산군일기'는 폭군을 대하는 그의 모습을 이처럼 묘사하고 있다. "남모르는 교사와 요사스러운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으므로, 왕이 혹하여 상사가 거만이었다…(중략)…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같이 하였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

'참모로 산다는 것'은 조선왕조 500년을 누빈 40명의 참모를 다룬 책이다. 518년을 존속한 장수 왕조이자 27명의 왕이 재위한 조선사 중심부에서 막전막후를 담당한 이들의 이야기가 만화경처럼 펼쳐진다. 주목할 것은 비단 충신들 얘기만 다루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국정 농단의 책임자였던 장녹수처럼 왕의 판단을 흐트러트린 파탄의 주범들도 세세히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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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들의 면면을 훑다 보면 누군가는 익숙하고, 누군가는 생경할 것이다. 그냥 마음 가 닿는 대로, 눈길 가는 대로 읽으면 좋겠다는 소리다. "건국과 창업 시기에 개혁을 진두지휘한 정도전, 세종 시대와 성종 시대를 거치면서 문물과 제도 정비에 기여한 한명회, 신숙주, 서거정,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같은 전란의 시기 전쟁 극복에 힘을 다한 유성룡, 최명길, 장만, 당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 당파의 수장이자 왕의 참모로 활약한 허목, 송시열, 김석주, 최석정" 등이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분량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충신들보다 먼저 관심이 가는 건 국정 농단의 주범들이다. 장녹수에 이어 광해군 말기, 인사권·청탁권·경제권 모두를 주무른 김개시 같은 상궁 등이 그들이다. 어쩔 도리 없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범들이 오버랩된다. 그만큼 역사는 지금 이 순간을 비추는 거울이며, 반면교사임을 보여주는 책이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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