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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강의평가` 목매는 강사들…성적정정 요구에 몸살

김희래 기자
입력 : 
2019-01-10 17:39:44
수정 : 
2019-01-10 17: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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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강사법 시행 앞두고 학생 눈치보는 강사들

성적에 불만 품은 일부 학생
강의평가로 노골적 압박

"다음 학기 살아남으려면…"
몰지각·무례 참으며 속앓이
사진설명
"계속 학교에 계시려면 강의평가도 잘 받으셔야 할 텐데, 저도 강의평가 '정성껏' 해드릴게요." 서울 시내 한 사립대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는 임경식 씨(가명·41)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2018학년도 2학기 기말고사 성적에 불만을 품은 한 학생이 시간강사인 임씨의 처지에 대해 비아냥대는 내용과 함께 다음 학기 강의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줘 2019학년도 2학기에는 강좌가 개설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협박성 이메일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임씨는 "학생들의 학점 경쟁이 치열한 것은 알았지만 강사들을 협박까지 할 줄은 몰랐다"며 "올해 8월 시행될 강사법 때문에 대학에서 강사들을 줄이는 분위기라 비슷한 속앓이를 하는 강사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대부분 대학에서 작년 2학기 기말고사 성적 정정이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일부 학생이 강사들에게 '강의평가'를 무기로 위협을 가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가에서 시간강사 구조조정과 관련해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어 취업난에 시달리는 학생과 강사 사이에 '을(乙)들의 갈등'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통상 대학에서는 한 학기 수업이 종료된 후 4주 이내에 학생들이 성적을 정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다만 성적 정정은 담당자의 기재 착오, 채점 착오, 계산 착오, 입력 착오 등 성적 부여 과정에서 담당자의 착오가 있었던 경우로 엄격히 제한돼 있다.

10일 한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해 2학기 기말고사 성적에 대한 불만을 담은 글이 줄을 잇고 있었다. 대부분 '출석도 제대로 하고 시험도 평균 이상으로 본 것 같은데 어떤 기준으로 이런 점수가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또 '수차례 성적 정정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글도 많았다. 이 같은 불만 제기는 극심한 취업난으로 인해 대학생들 사이에 학점 경쟁이 과열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문제는 불만족스러운 성적에 대한 학생들 분노가 이번엔 시간강사들에게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학생은 '이래서 시간강사들은 다 없어져야 한다' '다음 강의평가 때 최하점을 줘 더는 강의 개설을 할 수 없게 만들자' 등 폭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강사법과 함께 시작된 강사 구조조정 압력이 일부 몰지각한 학생에게는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무기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강사들도 최근 들어 성적 정정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유독 공격적으로 변했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가르치고 있는 강사 신 모씨(38)는 "과거 구체적인 평가 기준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사례가 있었지만 최근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며 "'우리 학교에 당신 같은 강사는 필요 없다'고 강사에게 (문자나 이메일을 통해) 대놓고 말할 정도"라고 전했다.

또 다른 강사 황 모씨(43)는 "'시간강사 주제에 지각하는 거 참고 수업 들었더니 말도 안되는 성적을 줬다. 언제언제 지각했는지 다 기억하는데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고 으름장을 놓는 학생도 있었다"며 "위협 때문에 성적을 고쳐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나에 대한 소문이나 강의평가가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시간강사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학생들의 무례한 성적 정정 요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문의하는 글이 빗발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무처 관계자는 "강의평가는 강사들의 다음 학기 강좌 개설 여부를 판가름 짓는 중요한 요소"라며 "특히 오는 8월 강사법 시행을 앞둔 만큼 강사들이 올해 1학기 강의평가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서면계약으로 강사 임용, 강사 재임용 절차 3년까지 보장, 방학 기간 임금 지급 등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을 골자로 한 강사법이 되레 강사들의 대량 해고를 초래할 조짐을 보이면서 시간강사 단체와 대학 사이 갈등이 해를 넘어서까지 지속되고 있다. 진화에 나선 교육부는 지난 8일 시간강사 고용안정성과 총 강좌 수를 평가해 대학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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