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은 싫다는데..또 석기시대?

김윤호 2019. 1. 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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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선사 콘텐트 확대 논란
6억 투입 조형물 설치·도색 등 이어
2억3000만원 '거리 박물관' 추진
"예산 낭비하며 왜 하는지 모르겠다"
대구 달서구에 있는 원시인 석상. 길이만 20m에 이른다. [중앙포토]
대구 달서구에 가면 돌도끼를 든 원시인 조형물 등 선사시대를 나타내는 상징물 232개가 있다. 가로·세로 5m짜리 멧돼지·코뿔소 같은 동물 그림 19개가 아파트와 상가 벽에 그려져 있다. 돌도끼로 찍어 간판을 부순 것 같은 이색 안내판도 8개가 세워져 있다. 길이 20m, 높이 6m 원시인 석상도 있다. 2016년부터 최근까지 5억7000여 만원을 들여 달서구가 관광 콘텐트라며 하나둘 만든 것들이다.

새해 달서구가 선사시대 상징물을 또 만든다. 이번엔 선사시대 유물 발굴을 주제로 한 ‘거리 박물관’이다. 달서구청 측은 7일 “2억3000여 만원을 들여 지하철역인 진천역과 역 주변을 이용해 거리 박물관을 만들 예정이다”고 밝혔다. 거리 박물관은 이달 말 공사에 들어간다.

박물관 총괄 디자인은 ‘광고 천재’로 불리는 디자이너 이제석씨가 맡는다. 달서구청 한 간부는 “역사 안 벽에 사진 등을 부착해 마치 유물 발굴터 내부에 있는 착각을 일으키게 꾸미고, 역사 입구와 그 주변에 유물 발굴터에서 나온 칼·돌도끼·토기 같은 조형물을 큼지막하게 여러 개 설치해 박물관이 거리에 튀어나온 것처럼 꾸밀 계획이다”고 했다.

달서구는 공사 시점과 사업비를 확정했지만, 외부에 사업 일정을 정식으로 밝히진 않았다. 주민 반발 등 여론을 의식한 탓이다. 적절한 시점을 봐 밝히겠다고만 한다. 지난해 3월 달서구가 설치한 원시인 석상 논란의 기억 때문이다. 당시 달서구는 진천동 도로변에 원시인 석상을 설치했다. 옆으로 누워 잠이 든 원시인을 형상화했다. 이 조형물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흉물’이라며 철거해 달라는 주민 3140명이 서명을 모아 달서구에 제출했고, 구의회는 이를 회의에 부쳐 철거 여부를 정하기로 하는 등 파문이 일었다.

달서구 한 아파트 벽에 설치된 선사시대 벽화를 상징하는 그림과 원시인 조형물. [중앙포토]
원시인 조형물로 간판이 일부 가려진 식당 업주가 반발했고, 종교단체의 비판, 언론의 질타가 이어졌다. “조형물이 무섭게 느껴진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진정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논란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징물을 또 만든다고 발표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달서구도 ‘논란’을 부르는 사업인 것을 알고 있는 셈이다.

상징물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차갑다. 예산 낭비라는 의견이 많다. 한모(39·송현동) 씨는 “지금도 충분한데 왜 자꾸 선사시대와 원시인 상징물 설치에 달서구가 힘을 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진천동 한 식당 주인은 “주민들이 싫다고 하고 보기에도 좋지 않은 선사시대 사업을 왜 자꾸 예산을 낭비하면서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달서구가 상징물을 만드는 이유는 선사시대 유적 등이 발견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상화로와 가까운 달서구 월성동 한 아파트 개발지에서 흑요석·좀돌날 등 1만3184점의 구석기 유물이 출토됐다. 진천동에 청동기 시대 돌 구조물인 사적 제411호 입석도 한곳이 있다.

그렇다고 아직 상징물이 관광 콘텐트로 큰 효과도 없다. 달서구 선사시대 관련 탐방객은 2016년 7096명, 2017년 8390명, 지난해 9364명으로 연간 1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예산 낭비 논란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은 “선사 유적이 많은 고창·화순, 서울 강동구 등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을 것이다. 달서구의 과시성 사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권구 계명대 행소박물관장은 “예산 낭비 논란이 있을 수 있어 지자체에선 더 의견 수렴을 해야 한다”며 “하지만 도심을 그냥 두는 것보다 선사시대 조형물로 꾸며 나가는 것은 미래를 볼 때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역사적 가치로 볼 때도 달서구처럼 도심 한가운데 유적이 다량으로 발견된 곳은 흔치 않다”고 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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