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쓴 이유

백세희 입력 2019. 1. 3. 09: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개인 문제라면 마음 아픈 사람이 많은 건 어떻게 설명할까

[오마이뉴스 백세희 기자]

 내가 두려워하는 일 중 하나는 약속 잡는 일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친구가 묻는다. "요즘 상태는 어때?" 요즘의 내 기분과 우울감을 묻는 걸 알기에 괜찮다고, 운동이 도움이 되는 거 같다고 답했다. 그리고 연말에 다른 친구들과 언제 만날지 이야기하다가 약속을 잡지 못한 채 흐지부지 전화를 끊고 말았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 중 하나는 우습게도 약속을 잡는 일이다. 정확한 다음을 기약하는 것, 달력에 써넣은 일정대로 움직이는 일 말이다. 오랫동안 앓아온 우울증 때문이다. 

사노 요코의 책 <죽는 게 뭐라고>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암보다 우울증이랑 자율신경실조증('자율신경기능이상'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 편집자 주)이 훨씬 더 괴롭고 힘들었다. (...) 정신에 관련된 병은 차별을 당한다. 주변에 사람들이 점점 없어진다. 사람들이 없어질 만한 증상이 나오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암에 걸린 사람은 동정할 수 없지만, 신경계통의 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상냥해질 수 있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지만 격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암의 고통을 폄하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나는 '기분부전장애'라는 다소 생소한 질환을 앓고 있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가벼운 우울감이 오랫동안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우울장애 중 하나다.

가볍게 우울하기만 하면 괜찮으련만, 감정이 크게 날뛰는 편이라 어떤 날은 무난하게 보내고, 어떤 날은 자해를 할 만큼 심각하며, 또 어떤 날에는 행복하게 잠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게 우울증인지, 아니면 단순히 우울할 때가 잦은 건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10년 이상을 앓고서야 병원치료를 시작했다.

나조차도 예측할 수 없는 마음 상태 때문에 학교를 빠지고 회사에 나가지 못한 날도 꽤 많았다. 무기력하고 공허하며,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무겁게 몸을 짓누를 때면 그날 하루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미리 약속을 잡는 일은 내게 공포스러운 일이다. 언제 마음이 몸을 짓누르게 될지 모르니까. 약속 당일에 나가지 못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나를 떠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말이다.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하고 모자라서 남들 다 하는 걸 하지 못하고 유난인지 끝없이 자책하는 건 덤이다. 

그렇게 복잡했던 내 마음 상태를 치료하는 과정을 담은 나의 첫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처음엔 나만 그런 줄 알았던 우울감과 못난 마음을 함께 느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안심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공감하고 때로는 눈물 흘리며 나와 쌍둥이 같은 경험이 담긴 메시지를 내게 보내오자, 안심되기보다는 여러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책에는 단순한 우울과 공허, 무기력감뿐 아니라 다양한 문제로 고통받는 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잦은 만취, 허언증, 외모 강박, 자기검열, 과도한 타인 의식과 도 아니면 모밖에 없는 극단적인 성격 등등. 나만 이렇다고 생각했기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또 날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하다고 여기며 숨기기 바빴던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독자분들의 메시지 대부분에 들어있던 '내 일기장인 줄 알았다'라는 문장은 모호했던 생각을 명확하게 정리해주었고,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구나'라는 강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개인의 문제가 아니구나, 라는 깨달음
 
  2018년 6월 출간된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백세희
 
개인의 '노오력'만으로 부를 축적하는 게 어렵다는 건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공감하지만, 정신적인 문제만큼은 철저하게 개인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특히나 괴로운 건 아주 납작하고 간단하게 우울증이 개인의 나약함과 부족함이란 단어로 치부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마음이 삐걱거리는 게 모두 개인의 문제라면, 나와 거의 완벽하게 비슷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평범한 한 사람의 TMI(너무 과한 정보, Too Much Information의 준말)가 가득 담긴 책에 왜 이렇게까지 공감하는 걸까?

책을 손에 쥐고 오열하며 읽은 사람들이 그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눈에 훤히 그려졌다. 오로지 자신만의 문제라고 여기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학대하고 미워하며 마음속에 꽁꽁 숨겨놓아 곪고 썩어갔을 상처들. 하도 억누르다 보니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아니 이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알기 힘들다. 실제로 내 책을 통해 자신이 느끼던 문제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던 분들도 많았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편견이라는 커다란 벽 앞에서 과감하게 벽을 부수거나 넘어갈 수 없기에 상처를 숨기고 살아가는 연약한 사람들이 있다. 마음의 건강에 무지하고 모든 걸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적 구조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끝없이 자신을 갉아먹다가 죽음을 택하고, 잔혹하게도 그 죽음조차 개인의 나약함으로 쉽게 치부된다.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면서 우울증이나 정신병에 대한 편견의 장벽이 조금이나마 낮아진 것 같아 기쁘면서도, 이런 단어들이 지속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고 바라면서도, 갑작스러운 열풍은 식기 마련이고 같은 고통도 반복되면 더 이상 고통이 되지 않고 무감각해지기에 '이제는 지겹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두렵기도 하다.

우울증이 아닌 사람들이 마음의 컨디션을 조절하는 건 의지만으로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기분을 넘어서서 우울장애를 얻게 된 사람들은 의지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앨릭스 코브의 <우울할 땐 뇌과학>에 따르면 "우울증은 뇌의 생각하는 회로와 느끼는 회로가 잘못 작동해 생기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울증 환자들에게 마음을 강하게 먹으라고 조언하는 건, 뼈가 골절된 사람에게 열심히 걸어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모든 게 내 잘못이라는 자책에서부터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 자책은 내려놓고 내 마음을 온전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덮어두거나 억누를 때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내 마음 상태에 대해 영영 모르게 되기 쉽다. 그래서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마음이 병들어가는 이유가 꼭 당신 때문은 아니다
 
 사회가 개인에게 마음의 안부를 묻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너의 마음은 어떠니"
ⓒ unsplash
 
유명한 영화 <굿 윌 헌팅>에 유명한 대사가 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숀 교수로부터 그 말을 들은 윌은 그제야 마음의 빗장을 열고 스승을 끌어안으며 오열하고 만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정말 듣고 싶었지만, 드러낼 수 없던 그 말을 누군가가 실제로 해주었기에.

나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몸이 다친 것처럼 마음이 다친 것일 뿐이라고, 뼈가 부러진 것처럼 마음이 부러졌을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마음이 병들어가는 이유가 꼭 당신 때문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렇다고 남 탓만 하며 멈춰있으라는 말은 아니다. 정신병원이나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것, 일상에서 햇볕을 쬐고 샤워를 하고 산책을 하는 등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나아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게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음이 아픈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무지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무시하거나 덮어두게 되는 것이다. 받아들일 수 없거나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사회가 개인에게 마음의 안부를 묻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편견이 사라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이런 분위기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진다면, 우리 역시 몸의 건강을 묻듯 마음의 건강을 물으며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챙길 수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해당 칼럼은 서울청년정책LAB 블로그 및 페이스북을 통해 2018년 12월 16일 발행된 칼럼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