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운전자 300만 시대.."브레이크인줄 알고 액셀 밟았다"는 80대

이가영 2019. 1. 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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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일 오전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한 도로에서 80대 운전자가 몰던 그랜저XG 승용차가 운전미숙으로 병원을 들이받았다. [경찰 제공=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일 경남 창원의 한 병원. A씨(80)가 몰던 승용차는 돌연 병원 현관문을 뚫고 들어왔다. 승용차는 병원 현관문과 1층 로비 시설물을 들이받은 뒤 멈춰 섰으나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 다음날인 11월 3일 경남 진주의 한 병원에서는 운전자 B씨(72)가 행인이 지나고 있음에도 병원 입구를 향해 돌진했다. 두 사람 모두 음주 운전은 하지 않았으며 “브레이크와 액셀을 혼동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런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는 적지 않게 일어난다.

늘어나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도 급증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민기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8년 65세 이상 고령운전자는 298만6676명으로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의 9%를 차지한다. 2010년 100만 명대를 넘긴 지 8년 만에 300만 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2028년에는 고령운전자가 전체의 22%, 2038년에는 35%로 늘어날 전망이다.

나이가 들면 인지·반응 능력 등 신체 기능이 떨어져 운전할 때 돌발 상황에 취약해진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감소방안’을 보면 정지해 있는 물체를 파악하는 능력인 정지시력은 40세부터 저하해 60대 이상부터는 30대였을 때에 비해 80% 수준으로 떨어진다. 움직이는 물체를 보는 시각 능력인 동체시력은 정지시력보다 30% 정도 더 낮게 측정된다. 주간 대비 야간시력은 더욱 감소하는데, 75세 운전자가 시각적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25세 운전자보다 약 32배의 빛이 필요하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2013년 1만7590건에서 해마다 10% 내외로 증가해 2017년에는 2만6713건이 발생했다. 최근 10년(2008~2017년)으로 기간을 늘려보면 60세 이하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 건수가 약 12% 줄었지만 61세 이상에서는 244% 증가했다.


고령자 안전교육 강화…면허 취소까지 가능
이 때문에 정부에서도 고령자 안전교육을 강화했다. 1월 1일부터 75세 이상 운전자는 고령운전자 교통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면허 취득과 갱신이 가능해진다. 면허갱신·적성검사 주기도 현행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된다. 교통안전교육에는 고령운전자 스스로 안전 운전을 하기 위해 필요한 주의력 등을 진단하는 ‘인지능력 자가진단’ 과정이 포함됐다. 도로교통공단 운전면허본부 관계자는 “선 잇기, 표지판 기억하기 등의 인지능력 검사를 통해 점수가 안 좋을 경우 간이 치매 검사를 시행한다”며 “이 검사에서도 낮은 점수를 받으면 신경과 의사의 소견서를 받아 운전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만약 소견서에 운전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담기면 운전면허 취소까지 이루어진다.

한국보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국가들은 각자의 교통 여건과 사회적 여론을 바탕으로 고령운전자 교통안전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70세부터 단계적으로 면허증 유효기간을 차등화해 갱신 주기가 감소한다. 미국의 경우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은 고령운전자가 직접 교통국을 방문해 시력검사 등을 받아야 면허를 갱신해준다. 워싱턴 DC에서는 5년마다 70세 이상은 시력검사를, 75세 이상은 필기 및 주행시험을 다시 봐야 한다. 일리노이주 역시 75세 이상은 주행시험을 봐야 하는데 4년의 갱신주기는 80~86세의 경우 2년으로, 87세 이상은 1년으로 줄어든다. 이 밖에도 영국은 70세부터 의무적으로 3년마다 한 번씩 면허를 갱신해야 하며 운전에 영향을 주는 건강상태는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고령자 이동권 제한 우려…“한정 면허제 고려해야”
다만 고령자에 대한 운전면허 갱신 강화는 자칫 운전제한으로 이어져 고령자의 이동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위원은 “외국에서 하는 것보다 낮은 수준의 규제기는 하지만 자칫하면 고령자 이동권을 제한할 수 있다”며 그 대안으로 ‘한정 면허제’를 제안했다. 임 위원은 “시골에 거주하는 고령 운전자의 경우 농사지으러 갈 때 운전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지 않으냐”며 “집 근처나 낮에만 운전할 수 있는 면허 발급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65세 이상 운전자가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할 경우 의료기관, 음식점, 목욕탕, 노인용품점 등 협력업체에서 할인 등의 혜택을 주는 카드. [사진 부산시]
일본과 뉴질랜드는 운전면허 자진 반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일본의 각 지방자치단체는 교통승차권 및 택시이용권을 제공하고 지역 내 상점에서 사용 가능한 상품권을 지급하는 등 혜택을 부여해 면허 반납자를 늘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부산시가 지난해 7월 지자체 중 가장 먼저 면허 자진 반납제를 운용했다. 만 65세 이상 운전자가 면허증을 반납하면 지역 내 의료기관, 목욕탕, 안경점 등 고령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에 할인 혜택을 주는 내용이었다. 400명을 예상하고 예산 4000만원을 책정했으나 4달 만에 4800여 명이 지원해 지난달 전자추첨을 통해 대상자를 뽑았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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