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록 버전 '마태수난곡'

임희윤 기자 입력 2018. 12. 26. 03:00 수정 2018. 12. 2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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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5일 화요일 흐림.

중식당에 앉자마자 그는 내게 성탄 선물을 내밀었다.

이탈리아 록그룹 라테 에 미엘레의 데뷔 앨범, '마태수난곡'(사진)이다.

바흐의 미사곡처럼 장엄한 파이프 오르간, 유다와 마태의 내레이션, 웅장한 합창 사이사이로 무자비하게 후려갈기는 드럼, 로이 뷰캐넌(1939∼1988)이나 지미 헨드릭스(1942∼1970)가 연주한 듯 몽환적인 블루스 록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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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5일 화요일 흐림. 패션 플레이. #300 Latte E Miele ‘Getzemani’(1972년)

평론가 H와 크리스마스이브에 중국 음식을 먹었다. 중식당에 앉자마자 그는 내게 성탄 선물을 내밀었다. 흰 비닐봉지에 담긴 가로 30cm, 세로 30cm가량의 물체. LP레코드임에 틀림없었다. H가 내용물을 꺼낸다. 안에 든 얇은 그 물체가 비닐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은 내겐 늘 일출만큼이나 장엄하며 경이롭다.

‘Passio Secundum Mattheum. LATTE E MIELE.’

이탈리아 록그룹 라테 에 미엘레의 데뷔 앨범, ‘마태수난곡’(사진)이다. 집에 한 장 있지만 이건 일본반이라고 하니 혹시 그가 무를까 겁나 일단 받아들고 본다.

라테 에 미엘레는 1970년 이탈리아 제노아에서 결성됐다. 세 명의 멤버는 당시 모두 10대였다. 특히 드러머 알피오 비탄사는 불과 15세.

내가 이 음반을 처음 듣고 충격에 빠진 것은 스무 살 무렵이다. 최후의 만찬과 유다의 배반, 빌라도의 심판과 십자가 고행…. 예수의 수난극을 시간 순으로 13개의 곡에 늘어 놓은 앨범. 바흐의 미사곡처럼 장엄한 파이프 오르간, 유다와 마태의 내레이션, 웅장한 합창 사이사이로 무자비하게 후려갈기는 드럼, 로이 뷰캐넌(1939∼1988)이나 지미 헨드릭스(1942∼1970)가 연주한 듯 몽환적인 블루스 록 기타. 이 모든 악곡 위를 날카로운 궤적으로 관통하는 선율….

‘Il Pianto’(비탄) ‘Il Re Dei Giudei’(유다의 왕)’ ‘Il Dono Della Vita’(삶의 선물)의 감동적인 멜로디가 있는가 하면, 헤비메탈과 스윙재즈를 이종 교배한 뒤 냉소적 보컬을 얹어낸 ‘Giuda’(유다) 같은 파격도 있다. 멤버 올리비에로 라카니나는 성당 오르간 연주자였다. 성서를 재해석하되 ‘Giuda’만은 난폭한 악곡으로 만들기로 결의했을 이들의 혈기. 40여 년 전 이국의 연습실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수난극이니 따져 보면 부활절에 더 어울리겠지만, 뭐 어떤가. 인생은 탄생이 출발점인 환희와 고난의 골고다인 것을. 신의 아들이라도 태어날 때부터 최후를 예상했겠는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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