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로부터 학생 구출'..스웨덴 룬드대 화학과의 비밀작전 4년만에 공개

조승한 기자 입력 2018. 12. 19. 15:24 수정 2018. 12. 1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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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로타 터너 스웨덴 룬드대 교수(오른쪽)은 4년 전 제자였던 피라스 주마(왼쪽)가 IS 점령지에 갇히자 용병을 고용해 구출했다고 룬드대 잡지 ′LUM′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캐닛 루오나 제공

"교수님, 제가 만약 일주일 내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학위 논문을 영영 제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2014년 8월 샬로타 터너 스웨덴 룬드대 분석화학과 교수는 박사 과정 제자이던 피라스 주마로부터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녀는 곧바로 전화를 걸어 제자의 상황을 확인했다. 제자가 전한 이야기는 그녀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소수민족인 야지디족을 학살하고 있으며 위험에 빠진 가족을 구하기 위해 고향인 이라크 북부 신자르로 갔다는 것이다. 가까스로 고향에 도착했지만 IS의 눈을 피해 가족들과 폐쇄된 표백공장에 숨어 오고가지도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주마와 가족들은 사실상 절망에 빠져 있었다. 

터너 교수는 곧바로 제자와 그 가족을 구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그녀와 학교는 민간군사기업(PMC)에 이들을 구출할 방법을 문의하고 실제 구출 작전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19일 미국 폭스뉴스 등 외신은 터너 교수와 지금은 박사 학위를 받은 주마 연구원이 13일 발간된 룬드대 교지(LUM)과 한 인터뷰를 소개하며 4년간 비밀에 부쳐왔던 전쟁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긴급했던 구출작전의 전말을 소개했다.   

터너 교수는 인터뷰에서 IS와 이라크 소수민족 야지디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야지디족은 이라크 북서부 니네베(니나와)주에서 70만명가량이 살고 있는 소수민족으로 고대 페르시아 종교인 조로아스터교 계열 종교를 믿는다. IS가 2014년 여름 이라크 북서부를 점령하면서 야지디족을 ‘우상숭배자’로 몰아 학살하고 여성들을 성노예로 끌고 갔다. 당시 피해자 중 한 명인 나디아 무라드는 3개월 만에 탈출해 IS의 성폭력 만행을 전 세계에 고발해 올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야지디족인 주마 박사와 가족도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었다. 2014년 여름 잠시 가족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을 찾은 주마 박사 아내와 아이들이 IS 공격이 격화되면서 위험에 빠진 것이다. 가족을 먼저 고향에 보내고 스웨덴에 머물고 있던 주마 박사는  IS가 바로 옆 마을을 공격해 모든 남자를 죽이고 여성을 노예로 데려갔다는 말을 듣고 그 길로 이라크로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끊었다. 하지만 그도 홀로 가족을 구출할 능력은 없었다. 가족과 만나는 데는 성공했지만 빠져나오기에는 너무 늦었다. IS가 이미 주변 지역을 모두 점령했기 때문이다. 

주마 박사와 그의 가족들을 포함한 야지디족은 IS를 피하기 위해 폐 표백 공장에 숨어 지냈다. -피라스 주마 제공

주마 박사는 지도 교수인 터너 교수에게 우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아무 희망도 없었지만 터너 교수에게 상황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터너 교수가 우리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터너 교수는 제자로부터 문자를 통해 처참한 상황을  알게 됐다. 주마 박사와 가족들은 다른 야지디족과 함께 45도의 더위 속에 문닫은 표백 공장에서 식량과 물 없이 숨어지내야 했다.  주마 박사는 표백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시도때도 없이 IS가 총을 쏘고 있다며 상황의 긴박함을 알렸다. 터너 교수는 “그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IS가 제자를 위험에 빠트리고 연구를 방해한 데 대해 화가 났다”고 말했다.

휴가 중이던 터너 교수는 즉시 학교로 돌아와 학장을 만났다. 학생이 사적인 이유로 고향에 갔기 때문에 학교 입장에서는 책임져야 할 아무런 의무는 없었다. 하지만 룬드대는 즉각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터너 교수는 페르 구스타프손 룬드대 보안책임자와 만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구출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구출 작전의 성사를 위해 여러 민간군사기업들과 접촉했다.

곧 중무장한 용병 4명이 두 대의 SUV를 나눠타고 이라크 북부 신자르로 향했다. 용병들은 주마 박사가 터너 교수에게 메시지로 일러준 표백 공장에서 주마 박사와 가족, 야지디족을 찾아내 쿠르드족이 점령하고 있던 안전 지대인 아르빌로 탈출시키는데 성공했다. 구스타프손은 “정말 특별한 일”이었다며 “어느 대학도 이런 일을 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마 박사는 “엄청난 특혜를 받은 기분이었다”면서 “한편으로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여동생들을 고향에 남겨두고 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다른 가족들도 IS 점령에서 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마 박사는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는 영구 거주 허가를 받아 스웨덴 말뫼의 한 제약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부인도 화학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 직업을 찾고 있다. 이 구출작전에는 6만 크로나(745만원)가 들어갔다. 주마 박사는 구출 작전에 대학이 쓴 비용을 거의 갚았다. 

주마 박사는 터너 교수와 대학의 노력 끝에 구출돼 스웨덴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주마 박사와 그의 부인 -피라스 주마 페이스북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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