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앞둔 직장인 아내 '협박'하는 남편, 내가 더 부끄럽다

김종성 입력 2018. 12. 14. 11:24 수정 2018. 12. 14. 11:2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TV리뷰]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에 등장한 젊은 남편의 낡은 사고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 MBC
 
"아기 낳고 하면 몸도 힘들고 그런데 육아휴직은 어떻게 되냐?"

출산 전후로 3개월 정도를 쉬고 일터로 복귀해야 한다는 이현승의 말에 가족들은 '너무 짧다'고 난리가 났다. 다들 산모의 건강을 엄청 챙기는 듯하다. 시어머니는 대뜸 "집(시댁)'에 좀 와 있어"라고 제안한다. 명절에 굳이 만삭의 며느리를 불러들여 쪼그려 앉아 전을 부치게 만든 그 시댁으로 가고 싶을까? "몸은 편해도 마음이 계속 불편할 것 같아서." 이현승은 온몸으로 그 제안을 거부한다. 

그런데 가족들의 진짜 관심은 사실 산모의 건강이 아니다. 최현상은 "나는 원래 내 성격이 그래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아이가) 우리 가족 손에 컸으면 좋겠어"라며 본심을 드러낸다. 이 말이 잘못됐다는 건 권오중이 먼저 눈치챘다. "부모 손에 키워야지, 왜 가족 손에 키워!" 이지혜는 "가족 손에 키우고 싶으면 (최)현상씨가 일을 관두고 애를 보는 것도 방법이잖아요"라고 되묻는다. 최현상은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나는 빨리 일을 하고 싶어." 현승은 기상캐스터로서의 자신의 커리어를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 확고하다. 그런데 이기적인 남편은 "그러면 아기는 어떡해?"라며 아내를 '협박'하고 나선다. 굉장히 비겁하고 무책임한 '예비 아빠'의 발언이다. 최현상의 입장은 분명하다. 아내가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육아에 전념하길 바라는 것이다. "오빠가 돈 많이 벌어올게. 집에서 아기만 봐." 이현승은 남편의 말이 황당하기만 하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 MBC
 
최현상은 아내를 한 명의 사회적 존재로 바라보고 존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아기를 낳고 양육하는 보육사 쯤으로 여기는 걸까? 이현승은 "사실 일이라는 게 돈을 벌기 위해서만 하는 게 아니거든요. 제가 평생을 공부하고 자기계발한 게 애를 보는 삶을 위해 산 것도 아니고"라며 섭섭함을 토로했다. 시부모와 남편의 합동 공세 앞에 고립된 채 세상을 잃은 표정을 하고 있던 현승이 안쓰럽기만 하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볼 때마다 가장 많이 드는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남성들의 저토록 안이한 인식 수준과 안하무인식 태도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매순간 떠오른다. '옛날에는 밭을 매다가 아기를 낳았다'는 말을 아기를 낳는 일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예시로 인용하는 시아버지야 옛날 사람이니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최현상을 보면, 그들의 아들들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임신과 출산, 육아에 있어 여성들의 무조건적 희생을 강요하고, 남자는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저 이기적인 사고는 여전히 우리가 가부장제의 그늘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을을 증명한다. 그런데 저와 같은 생각이 '평균적인' 남성들의 생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여성들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 MBC
  
방송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만큼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출연하고 있는 저 가족들이 그리 별난 이들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과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 고상하게 '나는 다르다'는듯 이런 글을 쓰고 있지만, 어느 순간 '본성'이 발현될지 모른다는 걸 안다. 노골적인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은연중에 성차별적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기에 결코 안심할 수 없다.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남자들은 물론이고, 이제 여성들도 달라져야 한다. 오정태의 시어머니는 자신의 며느리(백아영)를 끌고 가 딸의 집 청소를 시키고, 오로지 아들의 '식모'가 되길 강요하고 있다. 시즈카의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육아 문제에 있어 자신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내며 시즈카의 엄마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현승의 시어머니는 대놓고 "엄마는 집에서 아기만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어쩌면 반성은 우리 모두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