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김혜수라서 가능했던 것들

김지혜 기자 2018. 12. 9.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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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funE | 김지혜 기자] "늘 본보기가 되어주시는 김혜수 선배님, 제게 항상 응원의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고맙습니다."(한지민)

"드라마 마지막 방송 후 김혜수 선배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많은 격려와 칭찬을 해주셨어요. 저도 선배님처럼 좋은 선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김남주)

배우 김혜수는 자타공인 충무로 최고의 여배우다.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해 오늘날까지 배우로 살아온 날만 32년이다. 비단 활동 기간만을 따져서 '최고'라 하는 것은 아니다. 감독, 제작자뿐만 아니라 후배들의 존경과 지지를 한 몸에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한지민과 김남주. 올해 스크린과 안방극장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그에 대한 결과로 트로피까지 거머쥔 배우들은 무대에 올라 하나같이 김혜수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김혜수는 자신이 후배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하찮다는 듯 "선배는 무슨 선배예요. 다 고만고만한데..."라고 반응했다. 이 배우는 늘 이렇다. 자신을 높이는 데는 닭살이 돋는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넘기려고 한다.

누가 뭐래도 김혜수는 김혜수다. 실력과 인격, 품위와 매력까지 갖춘 충무로 여배우들의 자부심이다.

김혜수가 최고의 연기력을 가졌느냐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배우는 하이틴 스타로 출발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발전하며 배우로 무르익었고, 트렌드에 민감한 대중의 꾸준한 사랑과 신뢰를 받으며 제 자리를 지켜냈다. 

데뷔 32년이 지난 현재까지 충무로에서 한편의 영화를 이끄는 여배우는 김혜수가 유일하다. 이 엄격한 자기 관리와 전문성에 후배 여배우이 존경을 표한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제 밥그릇 챙기기에 연연하지 않고 후배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진심 어린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 때론 그 자극을 자양분 삼는다. 

비단 연예계, 충무로라서가 아니라 어느 사회에서도 이런 존재는 흔치 않다.

김혜수가 1년 만의 스크린 컴백 '국가부도의 날'에서 근사한 캐릭터와 연기로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쓰러져가는 국가 경제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인물을 입체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로 표현해냈다. 이 연기는 김혜수라서 가능했던 지점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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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부도의 날', 김혜수를 위한 영화? 김혜수에 의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김혜수의, 김혜수를 위한, 김혜수에 의한 영화다. 1997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IMF 사태의 뒷이야기를 픽션으로 그려낸 이 작품에서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으로 분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기 전까지는 '외환위기 당시 비공개 대책팀이 있었다'라는 단 하나의 정보뿐이었어요. IMF 일주일 전 이야기라길래 재밌겠다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맥박이 빨리 뛰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 영화를 내가 하고 안 하고를 떠나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도 잘 만들어져서 많은 이들이 봤으면 했고요."

오랜만에 만나는 여성 배우가 주연인 상업 영화다. 투자자들이 주인공을 남성으로 바꾸라는 제안도 있었다지만, 제작자도 감독도 '김혜수 카드'를 관철했다.

"솔직히 한시현이라는 인물은 남자가 연기해도 이상하지 않은 잘 만들어진 캐릭터예요. 그런데 여자가 한 거죠. 그렇다고 해서 여자이기 때문에 뭘 더하거나 어떤 요소를 염두에 두진 않았어요. 자기 자리에서 소신을 지키고 제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을 그리는데 주력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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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의 말대로다. 한시현은 전문적이고 책임감 넘치는 인물이다. 모두가 대한민국의 경제를 낙관하고 있을 때 국가부도 위기를 가장 먼저 예견하고 대책을 세운다. 보수적인 관료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계집'이라는 욕을 듣기도 하고, "커피나 타 와" 같은 말도 나오지만 능력과 전문성으로 낮춰보는 시선을 타파해 나간다.

무엇보다 한시현은 여성이라서 받는 대우에 분노할 시간에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먼저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대중이 보는 김혜수의 이미지와 일치하는 면이 있다. 멋지고 당당한 여성, 똑똑하고 전문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 말이다. 여기에 김혜수는 학습과 연습을 통해 캐릭터의 입체성을 부여했다.

"프리 프로덕션 5개월에 준비기간은 4개월 반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대사 대부분이 경제 용어다 보니 입에 붙지 않았어요. 일단 무슨 뜻인지,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했어요. 경제학 강의를 들으면서 내 말처럼 할 수 있는 훈련을 해나갔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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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경제에 대한 이해, 영어 연기보다 중요했던 건..."

'국가부도의 날'에서 김혜수는 연기의 테크닉보다는 인물의 상황과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는데 집중했다. 금융경제를 잘 이해하고, 영어 대사를 잘 소화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인물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인물이 품고 있는 진심을 잘 드러내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대사에 부담을 느끼면 배우가 진심을 어디에 투영할 수 있겠어요?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에요. 한시현의 쓰는 단어와 말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연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기본적인 베이스를 잘 깔아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정을 짜서 강의를 듣고 대사를 외우고, 영어 대사를 공부했어요."

그 결과 한시현이라는 캐릭터는 입체적인 인물로 거듭났다. 누구보다 실물 경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며, 미래를 예견해 비극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김혜수에게 1997년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연기를 하고 있었어요. 저도 그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느껴졌던 것을 느꼈던 것 같아요. 알만한 기업들이 부도가 났다는 뉴스가 나오고, 유학 간 친구들이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했었어요. 지나고 나서 들었는데 친,인척들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전국민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했고, 저 역시 금을 냈던 기억이 나요. 그렇지만 저도 자세한 내막은 이번 영화를 하면서 알게 됐어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정부나 언론에 대한 배반감도 느꼈죠. 그들은 이 사태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으니까요. "우리 스스로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국치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는 방송사 앵커의 뉴스 멘트가 생생히 기억이 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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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 관객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순간이 있다. 바로 한시현과 갑수(허준호)가 대면하는 장면이다. 반전의 재미를 주지만 이야기의 흐름에서 다소 튄다고 느낄 수도 있는 부문이다.

"한시현은 (경제 돌아가는 상황을) 다 아는 사람이라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개진하다가 실패한 거잖아요. 그러다가 사직서를 내고 건물을 나서는데 갑수를 만나죠. 물론 한시현에게도 가족이 있었겠지만 내 남편, 내 아이는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구성원 모두를 케어하지 못했겠죠. 그 직격탄을 가족이 맞았다는 걸 알았을 때 느낀 좌절감은 훨씬 컸을 거예요. (눈물신은) 굉장히 복잡적인 상황에서 흘리는 눈물이에요. 단지 속상하다고 하기에는 그 감정 이상이 포함된 표현을 찾고 싶은데...속상과 이상 사이에서 울었달까요."

김혜수는 영화의 엔딩부에 등장하는 갑수의 모습에 대해 '현실적인 변신'이라고 평가했다. "아들에게 '아무도 믿지 말라"라고 당부하는 통화를 끊고, 돌아서서 외국인 직원을 채찍질하는 변화는 영화에서 생략된 수 십 년의 세월이 그에게 남긴 뼈아픈 교훈 같은 의미였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국가부도의 날'은 실패의 서사다. 불가피하게 역사가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는 이 영화는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를 통해 제작진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IMF가 이랬구나'느끼는 사람, '그때 더했어', '나 이런 상처 들쑤시는 거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또 너무 어린 시절에 겪은 사람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를 구제해줬다고 느끼기도 하더라고요.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위기라는 게 우리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걸 느끼면서 맞이하는 경우도 있고, 위기라는 걸 모르고 지나갈 때도 있어요. 하지만 한시현의 말처럼 위기는 반복돼요. 좋은 일이 많아도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요소가 있기 마련이에요. 매 순간 위기는 있는데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 사람인지를 생각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아요. 또 이 영화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국가부도의 날'을 통해 우리의 경험, 의견, 생각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유의미한 시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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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수가 말하는 여성 영화, 여성 캐릭터

'국가부도의 날'에서 그려진 여성 캐릭터는 김혜수가 구현했기에 더욱 근사하게 보인 측면도 없잖다. 하지만 연기를 30년 이상 해 온 연륜의 배우로서 매 작품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무게감도 느낄 것이다. 무엇보다 배우에 대한 관객의 신뢰와 기대감, 따르는 후배들에 대한 본보기 같은 보이지 않는 부담감도 있을 것 같았다.

"작품을 선택할 때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해요. 그저 이런 작품에서 이런 캐릭터로 그려진 것에 대해 안도했죠. 그건 제가 운이 좋아서예요. 캐릭터를 만들고 연기를 수행하는 건 제 과제고, 그건 배우로서는 당연한 거죠. 목표가 좋은 작품에서 배우로서 조금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목표예요. 사실 전 결과가 훌륭한 배우는 아니에요. 빈구석도 많고 일관성도 떨어지는 편이거든요. 아주 작은 좋은 것도 부풀려지는 감이 있는 것 같아 민망해요."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라고 해서 여성 영화의 울타리에 넣는다거나, 여성 캐릭터를 부각한 영화라고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자 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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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니 이게 여성 캐릭터라는 게 부각되는 거지 저는 촬영하면서 '근사한 여성 캐릭터'가 아니라 한시현을 잘 수행하고자 하는 마음뿐이었어요. 영화계가 어렵고 여성 영화도 기획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지만 억지로 뭔가를 만들어내려는 게 아니라 영화의 본분을 다하니 제대로 된 여성 캐릭터가 나오게 된 거라고 봐요. 마찬가지로 우리 영화도 '제대로 된 IMF영화를 만들자'가 목표였어요."

영화 '국가부도의 날'과 배우 김혜수가 성의 구분, 세대의 구분을 떠나 하고 싶은 말은 명확했다.

"의도한 건 아닌데 '국가부도의 날'은 제작자가 여성('영화사 집' 이유진 대표)이고, 프로듀서(오효진 PD)도 여성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여자끼리 잘해보자"하고 만든 영화는 아니에요. 앞서 말했듯 소신을 갖고 자기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에 대해 그리고 싶었어요. 자기 소임을 다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는 투사가 필요없어요. 물론 사회의 구조적인 제어나 선입견이 존재하긴 하죠. 그렇다고 해도 남성, 여성, 청소년, 성인의 구분을 떠나 자기 자리에서 제 할 일만 제대로 해도 이기심이 내 생존 무기가 아닌 세상이 올 수도 있다고 봐요.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지만 저는 그 당시 한시현 같은 사람이 정말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도 말이에요. 그때 이런 사람이 좀 더 많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김혜수에게 "관객들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우문을 던지자 현답을 남겼다.

"기억에 남기는 건 제 몫이 아녜요. 저를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시면 돼요."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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