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겨울산책..머무르고 싶은 키 작은 섬

입력 2018. 12. 7. 10:36 수정 2018. 12. 7.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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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가파도 기행
섬의 풍경 바꾸는 가파도 프로젝트
전경 한눈에 들어오는 소망 전망대
청보리 사라진 황량한 들판의 아름다움

가파도는 청보리가 일렁이는 3~5월이 유명하지만 겨울의 낭만을 즐기기도 좋다.

가파도에 가려면 제주도 남쪽의 대정읍 모슬포에 있는 운진항에서 배를 타야 한다. 겨울에는 9시 첫 배를 시작으로 오전 11시, 오후 2시 세 차례만 출항하기에 배를 놓치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가파도는 마라도보다 제주 본섬에서 가깝다. 그래서 마라도행 배가 뜨지 않는 날도 가파도는 갈 수 있는 날들이 있다. 배에 오른 지 20분이 채 안 돼 항해는 허무하게 끝난다. 출항하는가 했더니 이내 가파도다. 실제 가파도와 제주는 가깝다. 모슬포에서 남쪽으로 불과 5.5㎞ 떨어져 있다. 그래서 가파도에선 한라산과 송악산, 산방산, 군산 등 제주도가 한폭의 병풍처럼 보인다. 건너편 섬에서 바라보는 제주의 풍광은 근사하다.

가파도는 한국의 유인도 가운데 가장 낮은 섬이다. 섬의 최고 높이가 20.5m에 불과하고 느리게 걸어도 두 시간이면 섬 전체를 돌아볼 수 있다.

포구에 도착하자 예전에 보지 못했던 세련된 현대식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새롭게 단장한 가파도 터미널이다. 터미널 안에는 커피와 청보리 미숫가루 등 간단한 음료를 파는 간이 바가 있고 가파도의 특산물과 여러 기념품도 판다. 알고 보니 이는 현대카드와 제주도가 손잡고 지난 2012년부터 진행하는 ‘가파도 프로젝트’ 사업의 하나다. 낙후된 지역의 변화를 꾀하기 위한 사업이다.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섬 곳곳을 돌다 보면 터미널 외에도 그 성과물들이 가끔 눈에 띈다. 터미널 부근에는 가파도 해녀가 직접 물질해온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어업센터가 있다. 올레길 10-1코스가 마련된 오른쪽 해안 산책로를 따라 조금 걷다 보면 바로 세련된 외양의 스낵바가 나타난다. 스낵바 뒤편에는 가파도 프로젝트 진행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아카이브 룸이 있다.

해안가를 따라 걸어가다 고개를 돌리면 상동포구와 하동포구 사이 해안가에 갤러리다운 모습을 한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가 보인다. 본관과 2개의 별관으로 구성된 이곳에는 작가들의 개인 숙소와 작업 공간, 갤러리 등이 자리 잡고 있는데 전망대에 올라가면 가파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상설 갤러리가 아니어선지 ’작가들의 작업 공간으로 출입을 자제해달라’는 문구가 붙어 있어 아쉬웠다.

이 밖에 철거 위기의 빈집들을 원형을 살리며 예쁘게 리모델링해 숙박 시설로 내놓은 가파도 하우스, 버려진 농협 창고를 개조한 마을회관 등도 가파도 프로젝트의 성과물이다.

소망전망대에서 가파도 올레길 답사자들이 제주 본섬을 바라보고 있다.

올레길을 따라 섬을 걷는다. 아침만 해도 빗방울이 흩날리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아졌다. 섬은 상동과 하동으로 나뉘는데 여객선이 도착하는 곳이 상동이다. 올레길 10-1코스를 따라 섬을 걷는다. 포구에서 섬을 바라보고 오른편으로 돌면 바위에 아담하게 꾸며진 당이 있는데 상동마을 할망당이다. 할망당을 지나 해안로를 따라간다. 오른편으로는 반짝이는 바다가 펼쳐지고 왼편으로는 돌담이 이어진다. 여러 풀꽃들이 길을 따라 피어 있어 조금도 심심하지 않다. 해안로를 따라가다 냇골챙이 앞에서 섬 안쪽으로 곧게 뻗은 길을 따라 들어간다. 봄에는 청보리로 장관을 이루는 곳이지만 아직 싹이 나기 전의 누런 들판과 억새들이 우거진 겨울 가파도는 쓸쓸하다. 그래도 밭길을 걷다 보면 몇 군데 밭에 돋아난 철 모르는 푸른 보리 싹이나 이름 모를 들꽃이 위안을 준다. 가파초등학교 부근에 소망 전망대가 있다. 가파도에서 제일 높은 위치(해발 20.5m)에 돌로 축대를 쌓아놓았다. 이곳에 오르면 가파도 전체는 물론 제주 본섬과 한라산, 마라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부근엔 때아닌 유채꽃들이 피어 있다. 전망대에서 올레 기행을 왔다는 일행을 만났다. 제주서 왔다는 송인하씨는 “올레길 중에서도 가파도 올레는 걷기에 매우 편해 동네를 산책하듯 힐링하기 좋은 섬”이라고 말했다.

가파도 해안길에 예쁜 들꽃들이 피어있다.

가파초등학교를 끼고 오른편으로 돌아 섬을 가로지르면 하동포구다. 어선들과 낚싯배들이 정박해 있는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다. 걷다 보니 속이 출출하다. 한정식으로 유명한 용궁민박에 들어가 정식 한 상을 받는다. 옥돔구이 등 제주 토종 반찬이 무려 스무 가지가 넘는다. 보기만 해도 속이 든든하다. 식사 후 다시 걷다 정자에서 잠시 지친 다리를 쉰다. 멀리 마라도와 마라도로 가는 여객선이 보인다. 가파도는 급히 다닐 이유가 없다. 그저 앉아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은 섬이다.

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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