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네쓰구 도쿠지 코코이찌방야 창업자, 밥 먹듯 굶던 '無수저' 고아 청년..맨손으로 세계 최대 카레 체인 키워

설지연 입력 2018. 12. 6. 17:05 수정 2018. 12. 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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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CEO & Issue focus
알바 출신에 회사 물려주고 훌쩍 떠나
중학교때부터 생활비 벌어
나고야에 동네 카페 개업
입소문 타고 가맹점 늘려
독특한 '나만의 맛' 전략 적중
밥의 양·매운 맛·단 맛·토핑까지
고객이 입맛대로 골라서 주문
점포수 1500개 '글로벌 체인' 성장
유명한 가맹점주 육성시스템
점포 청소·그릇 닦기·카레 조리..
5년 훈련 받고 심사 통과해야
개업 자격 주고 초기투자금 보

[ 설지연 기자 ]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일본의 ‘국민 음식’으로 흔히 스시나 라멘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들 못지않게 대중적인 음식이 카레다. 일본인 한 명당 한 해 평균 76끼를 카레를 먹는다는 통계도 있다. 1주일에 한두 번은 카레를 먹는 셈이다. ‘코코이찌방야(CoCo番屋)’는 카레 체인점으로 일본에서 압도적인 위상을 자랑하는 업체다.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많은 점포를 두고 있다. 국내외 점포가 모두 1500여 개에 달하는 세계 최대 카레전문점으로 2013년엔 ‘가장 큰 카레 레스토랑 체인’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코코이찌방야를 창업한 무네쓰구 도쿠지(宗次二) 전 회장은 괴짜 경영인으로 통한다. 맨손으로 회사를 키웠지만 50대에 돌연 물러난 뒤 보유 주식까지 모두 매각했다.

밥 굶던 고아에서 거대 식품기업 창업자로

코코이찌방야의 시작은 무네쓰구 전 회장과 아내인 나오미 씨가 1974년 나고야시에 개업한 카페 ‘밧카스(バッカス)’다. 일본에선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도 곧잘 스파게티나 카레 등 음식을 판매한다. 40석 규모의 카페 밧카스에서 가장 인기를 끈 메뉴는 나오미 씨가 만든 카레라이스였다. 소문이 나자 이들 부부는 1978년 나고야시 교외에 카레 전문점 코코이찌방야 1호점을 냈다. 이듬해에는 2호점, 3호점을 잇따라 열었고 2002년엔 전국 점포 수가 500개를 넘어설 만큼 승승장구했다. 지금은 도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일본에 1200여 개의 점포가 영업 중이다.

‘코코이찌(ココイチ)’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거대 카레 레스토랑 체인을 일군 무네쓰구 전 회장의 인생이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1948년생인 그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아동보호시설, 고아원 등에서 자랐다. 낳아준 부모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한다. 세 살 무렵 잡화점을 운영하던 무네쓰구 후쿠마쓰와 부인 기요코 부부에게 입양됐지만 양아버지가 도박에 빠진 탓에 가정 형편은 어려웠다. 그는 “리어카에 식기와 이불, 교과서만 싣고 여러 번 야반도주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가난에 쪼들려 오카야마, 나고야 등을 전전하며 생활하다 보니 따뜻한 밥 한 공기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러던 중학교 1학년 때 양아버지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무네쓰구는 아침·저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고교 졸업 후엔 부동산개발 회사인 야시마에 입사했고 3년 뒤 주택건설 회사인 다이와하우스로 옮겼다. 그곳에서 만나 결혼한 부인 나오미 씨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무네쓰구 전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무 고독한 인생이라 장사로 돈을 버는 것보다 먼저 손님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가맹점주와 공생하는 기업

코코이찌방야의 성공 비결은 차별화다. 주문과 조리시스템을 바꿔 고객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카레라이스를 제공했다. 손님이 밥의 양과 카레의 매운 정도, 카레와 곁들여 먹을 토핑까지 모두 하나하나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블룸 시스템’으로 불리는 독특한 가맹주 육성 시스템도 성장의 원동력으로 꼽힌다. ‘블룸(bloom)’은 ‘꽃을 피우다’라는 뜻이다. 코코이찌방야는 본사나 본사 직영점에서 점포 청소, 그릇 닦기, 카레 조리 등 모든 과정을 5년간 훈련받고 심사를 통과해야 가맹주가 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가맹주 자격을 얻고 창업할 때 2000만~3000만엔(약 2억~3억원)가량 초기 투자금이 드는데 이때 본사는 은행 융자 보증을 서줬다.

또 가맹점에 대한 무(無) 로열티 방침도 특징이다. 대개의 프랜차이즈 계약에서는 가맹점이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본사에 지급하는 것과 달리 코코이찌방야 본사는 로열티를 받지 않는다. 대신 카레 소스나 쌀 등 원재료를 가맹점에 판매해 수익을 걷는다. 즉석카레, 샐러드용 드레싱 등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코코이찌방야의 사시(社是)는 ‘니코·키비·하키’다. 일본어 ‘니코니코(ニコニコ)’ ‘키비키비(キビキビ)’ ‘하키하키(はきはき)’를 줄인 것으로 ‘생글생글 웃고 활기차게 일하며 시원스럽게 대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무네쓰구 전 회장은 “장사의 기본은 일찍 일어나기와 청소, 웃는 얼굴”이라고 강조했다. 그 스스로 현업에서 일할 땐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나 고객 의견 1000건 이상을 읽고 가게와 주변을 청소했다.

50대에 전격 은퇴…사회공헌에 몰두

코코이찌방야는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점포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한국, 미국, 중국 등에 150개가 넘는 점포가 있다. 한국에선 2008년 1호점이 서울 강남에서 문을 연 이래 20년이 지난 현재 35개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전 세계로 점포가 확산되던 2002년 무네쓰구 전 회장은 53세의 나이로 전격 퇴임을 발표했다. 그는 “후계자가 충분히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고문으로 남겠다”고 밝혔다. 후계자로 고른 이는 19세에 코코이찌방야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고위 임원 자리에 오른 하마지마 도시야 사장이었다.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그의 인터뷰는 화제가 됐다. 2015년엔 소유 주식도 모두 매각했다. 그는 “애착은 있지만 모든 힘을 쏟아부어 매진한 만큼 미련은 없다”고 했다.

은퇴 후엔 기부 등을 통해 사회공헌에 힘쓰고 있다. 나고야 거리에 수천 송이의 꽃과 나무를 심었고 초·중학교 등에 수십억원어치의 악기를 기부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07년엔 270억원을 들여 나고야시에 클래식 음악홀을 건립했다. 경영에서 손을 뗀 무네쓰구 전 회장은 “음악과 꽃으로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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