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 특집ㅣ<1> 심마니 열전] 등골 오싹한 계곡에서 1억2,000만 원짜리 산삼 발견

글 월간산 신준범 기자 2018. 12. 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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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심마니 원현덕, 최경찬, 배용수씨의 신비로운 산삼 이야기

“심봤다!” 대신 “여기여!”하고 외쳤다. 그것도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였다. 강원도 양구와 춘천 경계의 깊은 산자락, 한 발을 옮겨놓기가 고역이었다. 가파른 사면에는 크고 작은 나무와 넝쿨, 도깨비 뿔 같은 바위가 곳곳에 튀어나와 있어 이동하기 쉽지 않았다. 등산로가 없는 원시림 속에서는 제 아무리 베테랑 산꾼이라 해도 심마니를 따라 잡을 수 없었다.

[월간산]등산로가 없는 7부 능선 사면에서 산삼을 찾는 심마니들. 거친 산 속을 누벼야 하기에 내구성이 좋은 옷과 장비를 선호한다.

한국심마니협회의 추천으로 3명의 심마니가 모였다. 전국에서 추천 받은 4개 지부의 4명의 심마니가 모이기로 했으나 사정상 3명이 모였다. 협회에 소속된 200여 명의 심마니 중에서도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산삼을 잘 찾아내는 심마니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주인공은 한국심마니협회 부회장최경찬, 가평지회장인 원현덕, 남양주 진접읍에서 온 배용수 회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산을 좋아한다는 것.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도시로 나간 적도 있었지만, 산이 그리워 결국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협회 박만구 회장까지 4명의 베테랑 심마니가 산에 깃든다. 축지법을 쓰는지 분명 왼쪽 사면에 있었는데, 다가가보면 오른쪽 사면 위에 있고, 가면 또 왼쪽 사면 위에 있다. 등산로에서라면 20㎏ 배낭을 메고 있어도 따라잡을 자신이 있지만, 비등산로 급경사 사면에서는 어린이와 어른마냥 따라 잡기가 버겁다.

마음 같아선 계곡을 따라 오르거나 능선까지 치고 올라가, 능선을 따라 걷고 싶지만 그런 쉬운 길로는 절대 가지 않는다. 산삼이 계곡과 능선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적당히 그늘지고, 너무 빽빽하지 않아 바람이 잘 통하는 곳, 사람 발길이 과연 닿은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깊고 거친 곳을 누빈다.

산에 든 지 5시간 정도 되었을 뿐인데 산행 10시간은 한 것 같은 피로감이 몰려온다. 워낙 가파르고 앞을 막는 장애물이 많아 한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다. 게다가 심마니들은 “나름 천천히 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서둘러도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다. 그들을 놓칠까봐 노심초사할 지경이다.

산이 낯설다. 등산로가 얼마나 편한 곳이었는지를 실감한다. 습한 곳, 낙엽 쌓인 곳이 많아 발은 푹푹 빠진다. 심마니들이 등산화가 아닌 장화를 신은 이유를 알 것 같다.

툭 튀어나온 나뭇가지와 가지가 곳곳에서 팔을 잡아당기고, 등산복이 여기 저기 긁힌다. 비슷해 보이는 사면이 계속 반복된다. 감각만으로 현 위치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GPS가 없다면 조난 당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심마니들은 어렵지 않게 위치를 파악한다. 심마니 4명 중 3명은 처음 온 곳이고 지도나 GPS가 없는데도 어렵지 않게 산을 읽어 낸다.

처음에는 기자도 산삼을 찾겠다는 의지가 있었으나, 6시간이 넘자 산삼은커녕 따라가는 것에만 전력을 다한다. 간혹 일행이 멀어졌다 싶으면 나무 지팡이로 나무를 쳐 소리 내어 위치를 알린다. 숲이 짙어 사진 촬영도 어렵고, 산삼도 없어 하산하자고 얘기하려는데 “여기여”하는 소리가 들린다. 설마 산삼을 찾은 건 아니겠지 하고 가보니 산삼을 찾았단다.

[월간산]한국심마니협회의 베테랑 심마니들. 왼쪽부터 배용수, 최경찬, 박만구, 원현덕 심마니. 비포장 임도를 오를 때가 많아 4륜 지프차를 이용한다.

가을이라 잎이 바래고 고개를 숙인, 산삼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모양새다. 심마니들은 먼저 산삼을 앞에 두고 절부터 올린다. 산신령에 대한 감사의 의미다. 거칠게 산을 누비던 심마니들이 섬세해지는 순간이다.  조심스런 손길로 흙을 걷어내자 산삼 뿌리가 조금씩 모양을 드러낸다.    

15년 정도 된 산삼이다. 오래되진 않았으나 뿌리의 모습으로 봤을 때 종자 자체는 확실한 산삼이라 한다. 전통 방식으로 산삼을 포장한다. 굴참나무 잎과 개동백나무 잎사귀 등을 수북하게 뜯어 산삼을 넣고 끈으로 묶어 배낭에 넣는다. 나뭇잎이 습도를 맞춰 주어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긴장감이 돌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으로 침묵하며 산삼 찾는 데만 열중하던 심마니들이 그제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분위기가 확연히 바뀌고 걸음도 느릿느릿 여유롭다. 하산길, 계곡에 들러 세수를 하며 묵은 땀을 씻어내고 농담을 나누며 한 바탕 웃는다. 약초꾼과는 다른 그들만의 프로 정신이 드러난다.

◎오싹한 곳에서 몇 달 버티며 산삼 캐

원현덕 가평지회장

원현덕(55) 심마니협회 가평지회장은 목에 수염을 길렀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산삼을 캐서 내려오다 넘어지는 바람에 뿌리가 부러져서 상품성이 없어져 그냥 먹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목에 흰 수염이 나기 시작했다. 이 수염을 깎으면 가려워서 잠을 편히 자기 어려워 독특하게도 목 수염을 기르게 되었다.

[월간산]산삼을 발견한 심마니들이 산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절을 올리고 있다.

25년 경력의 베테랑 심마니인 그는 사계절 내내 산을 누빈다. 보통 겨울에는 일종의 휴식기에 들어가는 심마니도 많지만 그는 한겨울에도 겨우살이나 버섯을 채취하러 다닌다. 심마니이자 약초꾼이다.

가평군 조종면 현리에 살고 있으나 집을 나와 전국의 산을 누빌 때가 더 많다. 길게는 3개월까지 집에 가지 않는다. 큰 산에 한 번 들어갈 때 쌀과 된장, 고추장만 가지고 가서 열흘씩 산삼을 찾기도 한다. 반찬은 곰취나 더덕, 도라지 같은 산에서 만나는 것들이다. 그는 기억력이 비상해 산삼을 한 번 발견했던 곳은 GPS나 지도가 없어도 세세하게 기억한다.

“심마니는 산삼 나는 곳은 자식에게도 안 가르쳐준다고 해요. 제가 알고 있는 산삼 터가 40군데예요. 산삼 시즌에는 이런 고정적인 장소를 돌아다니죠. 즉흥적으로 산에 갈 때는 당긴다고 할까? 뭔가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지는 산을 오르는 거죠.”

가장 이상한 기운을 느꼈던 건 10년 전 강원도 인제의 깊은 산에서다. 높이 1,000m가 넘는 큰 산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어느 골짜기만 가면 너무 무서워 더 이상 들어 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냥 그 골에만 가면 소름이 끼치고 무서웠다. 사실 그는 산에서 밤에 혼자 자는 데 이골이 나 있을 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음기가 강한 계곡이 있어요. 산을 내려와 마을에서 물어보면 대부분 6·25 때 사람이 많이 죽은 곳이에요. 낮은 야산도 그런 데가 있어요. 헌데 그런 데서 꼭 산삼이 나와요.”

신기하게도 심마니 여럿이 갔을 때도 동시에 그런 한기를 느끼는데, 이빨이 달달 떨리고 “아우 추워”하는 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오싹하다고 한다. 심할 경우 현기증이 나고 머리가 어지럽기도 한데, 상당수의 심마니는 이것을 못 견뎌 그 장소를 떠나고 만다. 

원현덕 심마니가 인제에서 1억2,000만 원 가격의 산삼을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그의 심마니 인생에 있어 가장 비싸게 팔린 산삼이었다. 그는 무척 강한 오싹함을 느끼고선 분명 이 골짜기에 특별한 산삼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계곡 주변을 맴돌며 악착같이 버텨 한 달쯤 지나자 무서움이 걷혔다고 한다. 그때부터 2개월간 골짜기를 샅샅이 훑어 산삼 뿌리만 80㎝에 이르는 귀한 산삼을 캤다. 혼자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캐는 데 3일이 걸렸다.

원 심마니는 손재주가 뛰어난 기인으로 손꼽힌다. 산에서 가져온 목재로 공예가에 가까울 정도로 세련되게 부엉이 같은 앙증맞은 조각품을 만들어낸다. 애주가로도 유명했는데, 하루 걸러 하루 술에 취해 있을 정도였다. 한 번은 과음으로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손님에게 주기로 한 수 천만 원 가격의 산삼을 안주로 먹고는 다음날 찾아온 손님에게 무릎 꿇고 빌고서는 술을 완전히 끊었다고 한다. 

[월간산]

원현덕 가평지회장 산삼 문의

010-4781-7149

길몽으로 떼심 발견한 직감 뛰어난 심마니

한국심마니협회 최경찬 부회장

30년 경력의 한국심마니협회 최경찬(60) 부회장은 ‘몽夢을 받아 산삼을 캔 일화’로 심마니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월간산]

강원도 양구 토박이인 그는 1998년 꿈에서 여자가 아이를 낳는 장면을 보았다. 분명 산삼을 점지해 준 것이라 믿은 그는 인근의 양구 ‘해산’을 찾았다. 지명과 꿈이 연관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산신제를 올리고 입산한 그는 다음날 곧장 80년 묵은 산삼 5뿌리를 캤다.

최 부회장은 젊은 시절 트럭 운전을 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 두고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형편이 도저히 나아지지 않아 약초꾼의 길을 택해 여기까지 왔다. 당시 시골 사람들에게도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강원도의 산이란 산은 다 누비고 다녔다.

최 부회장은 유명한 일화가 여럿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심마니들 사이에서 전설로 통하는 ‘떼심’ 이야기다. ‘떼심’은 산삼이 엄청 많은 곳을 뜻하는 심마니들의 은어다. 최 부회장은 강원도 인제의 어느 산에 수 천, 혹은 수 만 뿌리가 숨겨진 떼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노 심마니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그 심마니는 1년에 한 번 이상, 몇 십 년을 떼심을 찾아 헤맸으나 찾지 못했다고 한다. 

1990년대 초 그는 강원도 인제의 그 산에 발 빠른 2명의 심마니와 함께 떼심을 찾기 위해 작심하고 들어갔다. 산 속에서 나뭇가지와 비닐로 임시 움막을 짓고 자는데 꿈에서 큰 상여가 그들이 자는 움막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는 분명 산삼을 찾을 조짐이라 여겼다.

다음날 높은 벼랑 위에 섰는데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 산삼 잎이 얼핏 보였다. 그런데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아, 반신반의하며 내려갔다고 한다. 절벽 아래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 천 뿌리의 산삼이 있었다. 그는 일행을 불러 80뿌리를 캐었고, 나머지는 가을에 캐기로 약속했다. 가을에 캔 삼이 약효가 좋아 비싼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어 그곳을 다시 찾았으나, 산삼은 한 뿌리도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행 중 한 명이 배신하고 몰래 와서 다 캐 간 후였다. 심증이 가는 사람이 있었으나 그는 극구 부인했고 증거가 없었다.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로또를 맞은 것과 마찬가지였으나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었다. 답답했던 그는 용하다는 점집을 찾았다. 무당은 “훔쳐간 사내가 올해를 넘기기 전에 죽을 것”이라 했고, 실제로 그는 간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 동료 심마니가 죽은 지 3일 만에 그 집에 불이 났고, 죽은 심마니의 아들이 그 자리에 으리으리한 큰 집을 지었다고 한다.

한때 이렇듯 직관력이 뛰어난 심마니였으나 지금은 산양삼과 산삼을 함께하고 있다. 협동조합 형태로 마을주민 4명과 산을 임대해 산삼씨를 뿌려 농약 없이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키우는 산양삼이다. 내년에 환갑이 되는 만큼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매일 험산 비등산로를 누비기 어려워서다.

최경찬 부회장 산삼·산양삼 문의

[월간산]

010-5340-5539 /033-481-5539

“딸 살리고 심마니 됐어요”… 산삼 기운 확신

남양주 진접 배용수 심마니

남양주에서 온 배용수(57) 심마니는 첫인상이 부드러운 호남형이라 산에 다니는 사람 같지 않다. 그러나 16년 경력의 심마니로 파란만장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는 딸 때문에 심마니가 되었다. 원래 자동차 공업사를 운영하며 아내와 두 딸을 키우며 단란한 가정을 꾸렸으나 IMF 외환위기로 사업이 망하고, 마지막 수단으로 미국 이민을 갔다.

[월간산]조심스런 손길로 산삼을 캐는 심마니. 뿌리가 끊어지거나 상하면 상품성이 없으므로 극도로 주의해 산삼을 캔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일했으나 영어가 늘지 않아 점점 스트레스만 커졌다. 결국 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이번엔 고등학생이던 큰딸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심장이 멎어 전기충격기로 살렸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어느 날 병원에서 “산삼이 딸의 병에 좋다”는 말을 들었으나 구입하기엔 턱없이 비쌌다. 아내는 일을 하고 남편인 배씨는 딸을 살려야겠다는 일념에 온 산을 누볐다. 한 달간 산을 누벼 결국 작은 산삼 한 뿌리를 캐왔다.

“큰딸에게 먹였더니, 얼마 안 가 몸이 간지럽다는 거예요. 보니까 등이 빨갛게 되면서 혈액순환이 되기 시작하더라고요.”

산삼의 효험을 피부로 접한 그는 심마니협회에 가입해 산삼 찾는 노하우를 배우며, 온 산을 누볐다. 30세가 넘은 딸은 현재 완치되었고, 지금도 몸이 조금 약해졌다 싶으면 산삼을 찾을 정도로 산삼 마니아가 되었다. 배용수씨는 그렇게 심마니로 거듭났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 2006년 남양주 진접읍 팔야리에 산삼과 약초를 파는 매장을 차려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10년 넘게 매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그는 “이 장사는 속이면 오래 못 간다”며 “주로 효험을 본 단골이 사간다”고 한다. 기억에 남는 단골로 서울 강남에 살던 효자를 꼽았다.

“매년 몇 천 만 원짜리 산삼을 사가던 단골이 있었어요. 알고 보니 90세가 넘은 노모를 위해 매년 사가는 거였어요. 한 번은 경북 봉화에서 가격이 5,000만 원에 이르는 50년 묵은 큰 삼을 캐서 연락했더니 망설임 없이 사갔어요.”

그는 “산삼에도 기운이 있다”고 말한다. 손님에게 산삼을 보여 줬는데 망설이거나 찝찝해 하면 산삼을 팔지 않는다. 또 단골들은 믿고 거래하기에 가격을 깎지 않으며, 그는 가격을 비싸게 받지도 않는다고 한다. 간혹 사정이 딱한 손님에게는 그 입장에 맞춰서 산삼을 주기도 한다.

“조카가 43세에 파킨슨병이 온 거예요. 온라인 보안시스템 관리 일을 하다 보니 운동은 안 하고 온 종일 책상에 앉아 모니터만 보는 일을 오래 했거든요. 결국 일을 더 할 수 없어 누워 있었는데 산삼을 4년 동안 공짜로 주다시피 했어요. 지금은 다 나아서 정상적으로 직장생활하고 있어요.”

배용수 심마니는 딸과 조카를 비롯해 그가 산삼으로 살린 사람만 여럿이라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거짓말이라 할 만큼 깜짝 효험을 본 사래도 여러 번 있다고 한다. 특히 혈액과 관련된 지병에 좋다고 구체적인 사례를 예로 들며 설명한다. 배 심마니는 직접 약효를 체험했기에 눈빛과 말에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배용수 산삼·버섯 약초 문의

010-5393-3385 매장 자연산약초 남양주시 진접읍 팔야리 7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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