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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21C 대한민국과 단테의 신곡’ 무절제의 죄 ‘식탐’, 타락으로 가는 지름길

  • 입력 : 2018.12.03 09:18:51
  • 최종수정 : 2018.12.03 09:22:57
누가 나에게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재 상태를 정의하라면 ‘식탐’이라고 말하겠다.

식탐의 조장자는 분명 방송과 SNS다. 언제부터인가 연예인들이 나와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방영하더니 이제는 정색을 하고 앉아 음식 품평회를 진행한다. 정말 보여주고 싶지 않을 듯한 냉장고를 열고 만천하에 공개한다. 심지어는 술을 마시며 벌건 얼굴로 주고받는 농담과 잡담을 온 국민이 몰입해 듣는다. 언제 어디서나 공허함을 채워줄 음식배달 서비스가 핸드폰 한 통화에 가능하며, 심지어는 음식과 술로 인사불성이 돼도 내 차를 몰아 집에다 데려다줄 대리운전사가 항상 곁에서 기다린다. 우리가 IT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은 게임, 음식, 대리운전, 음란 콘텐츠 그리고 댓글을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지상천국’이다.

‘치아코를 만나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귀스타브 도레.

‘치아코를 만나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귀스타브 도레.

2015년 프랑스 음식전문지 ‘르 셰프(Le Chef)’는 미쉐린가이드에서 별 2~3개를 받은 전 세계 요리사 512명 중 가장 뛰어난 요리사를 선정했다. 한국의 한 호텔에서도 음식점을 연 프랑스 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1950년~)다. 그는 음식을 연구하는 예술가다. 음식이라는 재료를 이용해 기존에 없었던 맛을 창조한다. 그는 말한다.

“영감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저는 일과 여가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영감의 핵심인 창조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창조는 조용한 몰입의 딸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방에서 완벽한 침묵을 강조합니다. 부엌 안의 요리사들은 각자가 맡은 재료를 통해 최선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온전히 자신에게 몰입하며 침묵합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못한 것이 있다. 인간은 절제하지 못해 결국 중독에 빠진다. 동물은 필요 이상으로 먹는 법이 없다. 사자는 이미 배를 채웠다면 어린 사슴이 지나가도 본 척도 안 한다. 동물은 약육강식이라는 대원칙으로 살아가지만 필요 이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 순환의 형평성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몫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인간만이 탐닉하고 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악행을 계속해 중독의 늪에 빠진다. 인간은 중독된 쾌락을 일깨우는 외부의 조그만 자극에 필요 이상으로 달려간다.

고대 성인이나 사상가들은 항상 일상 중 ‘식사의 엄중함’을 경고해왔다. 우리의 일상은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이라는 식사 의례로 구분된다. 그러나 이 구분을 망각하고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면 결국 반복된 식사 습관에 중독되기 마련이다. 붓다나 예수 같은 성인은 음식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음식은 자신들이 가고 싶은 목적지로 가기 위한 비상식량이다. 이들은 모두 일상에서 ‘금식’을 수련하라고 조언한다. 인간은 금식할 때 자신의 몸에 집중한다.

무슬림은 매년 라마단 한 달 동안 금식을 수련한다. ‘라마단’이란 단어는 아랍어에서 ‘(몸 안에 있는 찌꺼기를) 제거하다, 태우다’란 의미다. 이슬람 신앙을 지닌 사람이라면 일생에 한 번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위치한 메카에 가서 일주일 동안 금식을 통해 자신을 심오하게 바라봐야 한다. 무슬림은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세 가지 행위를 금지한다. 먹기, 마시기 그리고 성행위. 이 세 행위의 특징은 본능적이다.

‘삼두견을 만나는 단테’, 살바도르 달리, 1957~1965년.

‘삼두견을 만나는 단테’, 살바도르 달리, 1957~1965년.

금식을 아랍어로 ‘짜움’이라고 부른다. 짜움의 깊은 의미는 ‘습관적으로 하던 행위를 스스로 하지 않기로 결심하기’다. 무슬림은 금식을 통해 음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음식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한 톨의 쌀이 자신에게 오기까지 햇빛, 비, 공기, 농부의 수고, 가족의 요리를 총체적으로 기억하고 감사하는 시간이다. 그뿐 아니라 금식은 ‘자비’를 함양하는 시간이다. 주변에 음식을 먹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을 기억해 연민의 정을 마음속에 만들고 그들을 위해 봉사할 것을 스스로 약속하는 시간이다. 그는 결심한다. 필요 이상으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단테는 칸토 5 마지막에서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처지를 생각하며 너무 슬퍼 기절한다.

그가 기절에서 깨어나면서 ‘정욕’의 형벌을 받고 있는 곳에서 ‘식탐’의 형벌을 받고 있는 장소로 이동한다. 식탐은 무절제의 죄 중 두 번째로 정욕보다 더 심한 죄다. 여러 사람이 함께 즐겨할 자연의 선물을 혼자 독식하기 때문이다. 식탐의 죄인들은 더럽고 얼음처럼 찬 진눈깨비가 쌓인 악취가 나는 진탕에서 뒹굴고 있다. 식탐은 다른 무절제로 인한 죄와 마찬가지로 욕망으로 이성을 마비시킨다. 욕망은 항상 배고픈 식욕과 같다. 그래서 이 영혼들은 개처럼 짖는다. 배가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음식을 달라고 울부짖는다.

단테는 이 장소를 이렇게 설명한다.

“(7) 나는 세 번째 둘레에 있다. 그곳은 (8) 영원하고 악하고 춥고 무거운 비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의 규모와 상태는 결코 새롭지 않다.”

단테는 지상에서 자신만이 독식하려는 피렌체 정치가들을 염두에 두고 말한다. 이들은 식탐에 중독돼 육체를 충족시키기 위해 영혼과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들은 더러운 오물에 빠져 있다. 추위와 우박과 눈비가 영원히 이들을 괴롭힌다. 그들은 과다의 상징인 끈적거리는 점액으로 가득 찬 땅에서 빠져나올 생각조차 없다. 그들이 지상에서 과도한 음식으로 육체를 충족시켰다면, 이곳에서 이들은 춥고 배고프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식탐가들을 지키고 있는 삼두견 케르베로스(Cerberus)와 마주친다. 케르베로스는 ‘일 그란 베르모’, 즉 ‘거대한 벌레’로 묘사됐다. 이 괴물은 탐식의 상징으로 입이 세 개나 있다. 케르베로스는 늪에서 개처럼 울부짖는 자들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상처를 내고 때린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케르베로스는 지옥을 지키는 삼두견이다. 그러나 단테는 이곳에서 케르베로스를 식탐하는 자들의 살을 벗기고 고문하는 괴물로 등장시켰다. 단테는 28~30행에서 케르베로스를 통해 식탐하는 죄인들의 특징을 설명한다.

“(28) 케르베로스는 항상 배가 고파서 짖는다. (29) 그가 음식을 물어뜯을 때, 조용해진다. (30) 그가 하는 일이란 게걸스럽게 먹을 생각과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싸울 생각뿐이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지상에서 과도한 탐식을 편안하고 사치스럽게 즐겼던 사람들이다. 식탐하는 자들은 앞을 보지도 못하고 주위 사람들을 인식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자신의 육체의 쾌락에 맞춰져 있다. 단테는 그들을 ‘불경스러운 불쌍한 자들’이라고 부른다.

베르길리우스는 길을 막고 선 케르베로스의 입을 진흙으로 가득 채운 후 단테와 겨우 통과한다. 그러자 죄인 중 한 명이 단테를 알아보고 그를 부른다. 그의 용모는 자신의 악행과 형벌 때문에 뒤틀려 알아보지 못할 정도다. 그는 단테가 어려서부터 알던 친구로, 좋은 음식만 찾아다닌 시인 ‘치아코’다. 치아코는 ‘돼지’란 의미며 ‘식탐에 빠진 지아코모(Giacomo)’의 약칭이다. 그는 지오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도 등장한다. 보카치오는 그를 피렌체 상류사회에서 멋진 말솜씨와 상냥한 태도로 존경받는 인물로 표현했다.

그레고리안 성가를 만든 교황으로 유명한 성 그레고리(540~604년)는 식탐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큰 죄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는 성서에 등장하는 예를 인용하며 식사 원칙을 다음 네 가지로 기술했다.

첫째, ‘정해진 시간 이외에 먹지 않기’. 인간은 수만 년에 걸쳐 최적의 시간을 식사 시간으로 구분했다. 그 시간을 준수하는 것이 지혜롭다. 둘째, ‘미각을 자극하는 진귀한 음식을 먹지 않기’. 인간의 감각은 무한하게 확장되기 때문에 그 무의미한 탐닉을 절제해야 한다. 셋째, ‘필요 이상의 음식을 배부를 때까지 먹지 않기’. 탐식하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배부르다는 사실을 망각해 건강에 해가 될 때까지 게걸스럽게 먹는다는 것이다. 넷째, ‘음식을 상상해 식사를 기다리지 않기’. 음식이 아니라 음식을 바라는 욕망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그레고리의 네 원칙을 지키도록 노력해야겠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5호 (2018.11.28~12.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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