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무기 후손' 자율주행차의 '살신성인'

최기성 2018. 12. 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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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자율주행 시험 장면/사진=현대모비스

[세상만車-106] SF 영화 '데몰리션맨'(1993년 개봉)에는 주인공인 실베스터 스탤론과 샌드라 불럭이 자율주행 경찰차를 타고 질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맨인블랙'(1997년 개봉)에서도 외계인의 기술로 만든 자율주행차가 등장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SF 영화·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상상 속 존재에 불과했던 자율주행차가 현실이 됐다. 자율주행차 시대 개막은 구글이 알렸다. 2010년 구글이 본사가 있는 도시 마운틴뷰의 도로에서 자율주행차를 운행하는 게 사람들 눈에 띄면서 구글 자율주행 프로젝트가 세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자율주행차를 세상에 알린 계기는 구글이 마련했지만 세상에 등장하게 만든 계기는 전쟁이 제공했다.

자율주행차의 핵심 장치는 GPS, 레이더, 라이더, 소나, IMU(관성측정장치) 등이다. 자율주행차는 이들 장치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운전자의 손과 발의 힘을 빌리지 않은 채 움직인다.

GPS는 위성에서 보내는 신호를 수신해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계산하는 위성항법시스템이다. 항공기, 선박, 자동차 등 이동수단의 내비게이션 장치에 주로 사용된다.

GPS는 미국 국방부가 미사일 폭격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군사용으로 개발한 시스템이다. GPS가 개발되기 전에는 목표물을 파괴하기 위해 수천 개의 폭탄을 한꺼번에 쏟아붓는 '융단폭격'을 사용했다. 융단폭격은 정확도가 떨어지고 민간인 피해를 일으켜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냈다. GPS는 미사일 외에 탐사, 구조, 수색 등의 군사 임무에 사용되다 민간 기업에 기술이 이전됐다.

레이더는 요약 무선 탐지와 거리 측정(Radio Detecting And Ranging)의 약자다. 마이크로파 정도의 전자기파를 물체에 발사시켜 그 물체에서 반사되는 전자기파를 수신한 뒤 물체와 거리, 방향, 고도 등을 알아내는 무선 감시장치다.

영국은 1938년 레이더 기술을 활용한 방공망을 구축했다. 레이더 방공망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이 독일의 공습을 막아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데 기여했다.

레이더는 초기 자율주행차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자동차 간 거리를 계산해 추돌 사고를 막아주는 추돌예방시스템, 차 스스로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일정 속도로 달리게 도와주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은 레이더 기술 때문에 개발됐다.

구글 자율주행차의 지붕에 원통 모양으로 달린 뒤 자율주행차의 상징처럼 된 라이더(Lidar)도 레이더 덕분에 등장했다. 라이더는 레이저 방식을 사용하는 레이더다. 레이더는 빛의 일종인 레이저 광선을 사용해 물체 종류를 인식한다.

현대차 스마트시티 가상 이미지/사진=현대차

야간 군사 작전을 위해 개발된 적외선 감시 장치도 자율주행차에서 빼놓을 수 없다. 적외선을 활용하는 카메라인 나이트비전은 어둠에 가린 사람이나 사물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소나는 시간, 주파수, 반사된 음파를 바탕으로 사물의 위치와 속도를 추적하는 음향탐지장비다. 소나는 적의 잠수함을 탐지하는 군사용 목적으로 주로 사용됐다.

햇빛이 닿지 않는 바닷속은 어두워서 눈으로 잠수함을 찾아내기 어렵다. 또 레이더가 내는 전자파는 물속에서 에너지 손실이 많아 짧은 거리만 진행한다. 이와 달리 소나는 물에서도 잘 전달되는 음파를 사용하기에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다. 잠수함이 나오는 영화를 보다 보면 "핑" 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나가 내는 소리다.

소나는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와 자율주행차에 탑재됐다. 레이더를 보충하는 역할을 맡는다. 소나 음파는 안개, 먼지, 직사광선에 방해받지 않고 느린 속도로 진행된다. 이로써 작은 물체도 높은 해상도로 확인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에 사용되는 IMU도 군사적 목적 때문에 개발됐다. IMU는 이동 물체의 속도와 방향, 중력, 가속도를 측정하는 장치다. 인공위성 신호를 잃어버리는 GPS 오류를 해결한다. 원래는 무인항공기, 우주탐사선, 위성에 사용됐다. 현재는 자율주행차는 물론 스마트폰, 정보통신기술 등에서 폭넓게 쓰인다.

BMW 그룹 뮌헨 자율주행 전문 개발센터 연구 장면/사진=BMW

살인무기 후손인 자율주행차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살리는 '살신성인'으로 대접받는다. 교통사고, 교통체증, 주차 등 자동차가 일으키는 사회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전쟁 사망자보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마다 국내에서는 5000여 명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매년 세계 각지에서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람은 130만명에 달한다.

현재 전쟁 사망자와 관련한 통계는 없다. 다만 세계보건기구(WHO)가 2000년에 발표한 보고서로 유추할 수 있다. WHO가 세계 각지에서 2000년에 발생한 사고사를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교통사고 사망자는 126만명, 전쟁 및 분쟁 사망자는 31만명으로 조사됐다. 교통사고 희생자가 전쟁 희생자보다 4배 많은 셈이다.

전쟁보다 무서운 교통사고 10건 중 9건 이상은 전방주시 태만, 졸음 운전, 안전거리 미확보 등 운전자의 부주의 때문에 일어난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따르면 2016년 교통사고의 94%가 운전자의 부주의 때문에 발생했다.

NHTSA는 자율주행차가 운전자 실수를 최소화해 2040년에는 교통사고를 현재의 3분의 1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자율주행차에 장착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운전자를 대신하기 때문에 운전자 부주의로 일어나는 사고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가 대중화되면 현재 운행되는 자동차 대수도 50~90%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로써 교통체증, 환경오염, 주차 공간 부족 등 자동차가 야기한 사회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신체적 장애로 운전이 어려운 장애인이나 노약자 등 사회 약자들의 이동권도 강화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는 슈퍼맨처럼 사람을 보호하고 지구를 지키는 자동차인 셈이다.

현재 구글은 물론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도요타, 현대차, 보쉬, 콘티넨탈, 현대모비스 등이 자율주행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최기성 디지털뉴스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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