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서 급성장한 한국계 스타트업

박수호 입력 2018. 11. 2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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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제26 매장서 파는 한국빵
[재계 인사이드-140] 설탕 하얗게 올린 꽈배기, 소보로, 단팥빵, 고로케까지...

한국 빵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한눈에 봐도 먹음직스럽습니다. 그런데 기자가 들어선 가게는 한국이 아니라 독일에 있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의 부촌 지역인 바트홈부르크(Bad Homburg)의 쇼핑거리에 있는 베이커리였는데요. 제품 구성은 영락없는 '한국 빵집'이었습니다. 거리이름을 따 상호명은 '루이제26(Louise26)'으로 명명했다는데요. 출장 기간 중 이동하던 길에 '한국에 왔나?' 했을 정도로 신기해 발걸음이 저절로 이끌렸지요.

루이제26 매장내 편집숍

그런데 들어가니 '빵집'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매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널찍한 편집숍이 함께 있었습니다. 실리트, 마리메코, 노르만, WMF, 웰라 등 유럽 가면 쇼핑해야 할 필수 아이템이라 할 유아, 리빙, 생활용품 브랜드들이 테마별로 전시돼 있더군요. 어찌 보면 일단 베이커리는 고객을 유인하는 '미끼(?)'가 되고 실제로는 보다 객단가가 높은 쇼핑으로 연결하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 녹아있는 매장 구성이었습니다. 실제 한국인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도 이런 예상 동선에 부합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태용석 임광성 다미공동대표

'참 머리 잘 썼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을 즈음 매장 직원이 '사장님 오셨다'며 친절히 소개를 해주더군요. 한국분이라네요. 그런데 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태용석, 임광성 공동대표랍니다. 태 대표는 독일에서 효성 주재원으로 5년 여 근무하다 독일에서 아예 독립해 20여 년 동안 개인 무역사업을 했다네요. 임 대표와 만나게 된 것도 사업 때문이었답니다. 임 대표는 한국에서 블랙박스 등 해외에서 통할 만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는데요. 두 사람은 10여 년 전부터 독일 시장에서 만나 바이어와 셀러 관계로 잘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중국이 무섭게 성장하면서 예전에는 OEM(주문자제작생산) 생산 공장 정도였던 중국 협력업체마저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며 이 시장을 잠식하자 두 사람의 사업에도 타격이 많았답니다. 자체 브랜드와 유통 능력 없이 중국산 제품과 상대하느니 차라리 독일과 같은 선진국 시장에서 브랜드도 만들고 가능성 있는 제품 무역도 하면서 힘을 키우자며 의기투합한 게 오늘에 이릅니다.

그래서 '한국 빵집'을 차렸느냐고요?

아닙니다. '루이제26' 사업은 비교적 최근 일이고요. 모회사는 '다미'라는 곳이었습니다. 일단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통할 만한 아이템을 무역하는 데 집중하면서 사세를 키웠다고 합니다. 태 대표가 독일 현지 사정과 관세, 세무 부문에 환하다는 장점이 있고 임 대표는 제품 기획력과 국내외 트렌드에 밝다는 점에서 시너지 효과가 있었답니다. 사업 초반에는 한국에서 인기가 높았던 독일산 분유 등 다양한 독일산 제품을 한국에 병행수입 방식으로 유통시켰던 게 주효했지요.

그런데 이때 다른 업체와 차별화한 것은 자체 물류, 유통 시스템을 구축한 것입니다.

태 대표는 "ERP(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 선진국이라고 알려진 독일이지만 해외 무역, 유통에서 중요한 재고관리, 상품 배송 등에 특화된 중소기업 맞춤형 시스템은 없었다. 그래서 회사규모로 보면 아주 영세했을 초창기부터 IT전문 현지 인력을 뽑아 시스템을 구축한 게 단순 무역회사를 넘어 또다른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틀이 됐다"고 설명합니다.

3PL 사업이 대표적입니다. 3PL이란 물류 관련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제품 생산을 제외한 물류 전반을 특정 물류 전문업체에 위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 다미에서 IT물류, 유통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구축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국내 대기업 몇 군데가 곧바로 다미에 일감을 맡겼답니다. 다미 입장에서는 이런 물량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제품 관리는 물론 유통채널에도 눈을 뜨게 됐답니다. IT 개발자, 물류 전문 인력들이 사업 초창기부터 계속 기틀을 잡아나가면서 노하우가 생기자 일감은 계속 늘어나게 됐다는군요. 그덕에 다미는 1만여 상품을 취급할 수 있게 됐고 물류창고 역시 계속 확장할 수 있게 됐답니다.

더불어 눈길을 돌린 건 독일 현지 B2C사업이었습니다.

임 대표는 "최근 유럽 사람들이 K팝, 한국음식, 한글 등 한국 문화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한국 제과를 모티브로 한국 상품의 소개와 판매를 하면 승산 있겠다고 봐서 일단 시작한 게 한국형 베이커리 사업이었다. 여기에 한국에서 유행하는 혹은 유명한 K뷰티, 패션, 리빙 제품 중 독일 현지 시장에서 통할 만한 아이템을 적극 발굴해서 내년 초에 개설할 온라인 자사몰과 연계하면 종전 교민, 여행객 위주 시장을 넘어 현지인 시장에서도 승부를 볼 만하겠다고 봤다"고 소개했습니다.

이런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루이제26 복합문화공간 매장 모델이 당장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장 석 달여 만에 손익분기점을 달성하면서 입소문이 퍼졌답니다. 최근 뒤셀도르프에 추가 매장이 문을 열었고요. 연내 베이커리 생산시설 확정이 끝나면 함부르크, 베를린, 뮌헨 지역에 직영 혹은 가맹사업도 착착 진행 중이랍니다. 더불어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앞 요지에 있으면서 대규모 관광객 사이에서 유명한 '킴패션센타' 매장을 인수했는가 하면 인터시티호텔 내 승무원 대상 매장으로 유명한 '크루샵'도 인수, 현지 유통채널을 늘리고 있더군요. 다미는 창업 4년 만인 올해 매출액 400억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한답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엔 미디어커머스 회사에도 투자를 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분더바TV'라는 회사인데요. 지난해 유럽유학파 정유라 대표가 독일서 창업한 스타트업으로 한국에서 통할 만한 유럽 제품들을 직접 시연 혹은 상세하게 사용해보는 동영상으로 구매를 유발하는 게 주요 사업모델입니다. 'WMF 믹스앤고'라는 미니 믹서 사용 영상은 한국 외 다른 국가에서도 구매 문의가 올 정도로 주목을 끌기도 했지요.

정유라 대표는 "기존의 이미지와 텍스트로만 소개하던 해외 직구 상품을 자세한 사용법이나 팁을 영상으로 알려주니 구매전환율이 높아졌다. 그렇다고 영상만 어필하면 참고용으로 쓸 뿐 구매는 다른 데서 일어날 소지가 있었다. 다미와 손잡고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게 됐고 한정판매 웹쇼핑 개념을 적용하면서 시너지 효과가 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다미와 분더바TV는 일단 유럽에서 정말 좋은 상품이 많은데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을 한국 등 여러 나라에 소개하는 게 1차 목표고 이어 한국 제품, 특히 아이디어 넘치는 중소기업 제품들을 유럽에 알리겠다는 복안이랍니다.

독일처럼 소위 선진국 시장에서 이처럼 창업해서 고성장하기 쉽지 않은데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그런데 출장 기간 중 마침 이베이코리아와도 연락이 닿으면서 또 다른 한국계 스타트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올해 중순 기자는 이베이코리아가 해외직구 시장을 본격적으로 강화하겠다는 기사를 쓰며 이베이는 물론 물류 전문업체 판토스 관계자와 역시 독일 현지에서 인터뷰를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생각이 나 그 후 진척 사항이 있는지 문의를 해봤는데요. 이베이코리아와 최근 협업한 후 성과가 뚜렷하게 나오고 있는 독일 스타트업으로 정소미 이베이코리아 해외직구팀장이 알려준 곳은 '독한남자'로 유명한 레인지인터내셔널이었습니다. NHN 출신 한덕희 대표가 4년 전 독일로 혈혈단신으로 날아와 창업한 스타트업인데요. 이 회사도 올해 누적 매출액만 100억원을 돌파했을 정도로 빠른 시일 내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다미'와 비슷한 듯 다른 색깔이었습니다.

일단 다음은 한 대표와의 일문일답.

독한남자로 유명한 한덕희 레인지인터내셔널 대표

Q. 창업하게 된 계기는?

한 대표=해외에서의 창업은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무역에 늘 관심이 많았어요. 앞으로의 무역은 e커머스를 통해 전 세계 상품을 어디서든 거래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e커머스를 연결해주기 위해 물류는 필수인데 물류 허브 역할을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망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무역업이라는 건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그리스, 로마제국 ,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실크로드를 통해서 번성했잖습니까. 앞으로도 무역은 망하지 않을 거라 확신합니다. 다만 소포장 다품종 형태의 무역으로 발전하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e커머스 전문 기업에 들어가 5년 정도의 전문 경력을 쌓은 후 생태계를 이해한 상태에서 주말이면 창업 준비를 하면서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처음엔 '허브어스(HUBEARTH)'라는 플랫폼 사업을 준비했어요. 전 세계에 있는 셀러들이 각 지역마다 상품들을 올리고 소비자를 연결, 무역을 쉽게 해 줄 수 있는 플랫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획력이 있다고 아무나 투자해주진 않더군요. 무역 관련된 일은 너무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직접 창업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Q. 왜 독일이었나요?

한 대표=창업 당시인 4년 전 해외직구 시장은 지금보다 규모가 훨씬 작았고요. 미국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 정도 됐습니다. 그런데 독일 쪽에 e커머스 비중을 보니 해외직구 비중은 작으나 성장하는 속도가 상당히 빨랐습니다. 이 시장에 가서 준비를 하면 되겠구나 해서 독일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후 과감하게 독일행 비행기를 탔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 결정이 얼마나 무모했던 결정이었는지 그땐 몰랐어요. 이게 다 젊었기 때문에 겁이 없어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웃음).

레인지인터내셔널 물류창고

Q. 4년 만에 매출액 100억 원을 바라볼 정도로 급성장하게 됐는데 비결은 뭔가요?

한 대표=독일에서 좋은 파트너와 좋은 팀원들을 만나면서입니다. 특히 현지 교포들이 창업한 강소기업 4J라는 회사와 인연을 맺은 게 큰 힘이 됐습니다. 독일에서 유명한 패션브랜드 '벨렌슈타인(Wellensteyn)'의 유럽 리테일 사업은 물론 앱 개발, 한국 제품 역직구 사업을 전개하면서 지난해에만 직원 200명, 매출액 674억원대를 올린 회사인데요. 이들과 제휴하면서 '압타밀'이라는 브랜드를 본사에서 직접 소싱해 한국에 유통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었고요. 그밖에도 1000여 개 독일 제품을 한국에 '독한남자'라는 이름으로 유통하면서 빠르게 사업이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Q. 최근에는 PB(자체 브랜드)상품을 만들겠다고 나섰는데.

저희 히트상품이 분유인데요. 이를 중심으로 상품 카테고리를 늘려나가다 보니 고객들이 독일 제품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꼭 브랜드 제품이 아니더라도 독일산 제품인데 저렴한 가격과 높은 품질이라면 고객은 재구매를 하더군요. 그래서 PB 상품들을 준비 중이고요. 6개월 전에 브랜드 등록까지 다 돼서 OEM, ODM을 전문으로 하는 독일 현지 유명 업체와 상품 개발 중입니다. 시제품은 내년께 한국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제품 품질은 어떤 제품보다 좋다고 자부합니다.

Q. 독일에 있다보면 또 다른 사업모델이 보일 거 같은데.

역직구 사업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최근에 스위스 쪽 '뷰티앤드케어(유럽에서 캐릭터 판권을 확보해 화장품을 제작 유통하는 업체)'라는 업체와 함께 한국 K뷰티 박람회에 직접 방문해 소싱도 했습니다. '뷰티앤드케어'가 가지고 있는 유럽 내 유통 라인을 통해 전개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 제품에만 국한하지 않을 겁니다. 한국 외 지역에서 뜨는 제품이라도 독일은 물론 유럽으로 들여오는 사업모델을 차근차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독일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e커머스 물류 허브 역할을 해주는 회사로 만드는 게 궁극적인 꿈입니다. 최근에 독일 유명 제조사들도 저희 쪽에 많은 문의를 주고 있습니다. 한국 시장에 직접 진출하는 것보다 저희 같은 회사의 물류 시스템을 활용해 직접 진출하고자 하는 니즈가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몇몇 독일 업체들과 직접 테스트도 진행을 해봤고 실제로 독일에서 제조된 제품들이 저희를 통해 직접 한국으로 진출하는 사례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교포 2세 창업기업 4J 정일, 정바울 형제

인터뷰 말미에 한 대표가 소개한 4J 창업자 정일, 정바울 형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박정희 정권 시절 독일로 날아온 광부, 간호사 커플 사이에 태어난 전형적인 교포2세였습니다. 유럽 내 중대형매장(300㎡ 이상) 40여 곳을 운영하면서 한국 제품도 여럿 유럽에서 전개한 바 있답니다. 세계한상대회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었고요.

정일 대표는 "레인지인터내셔널과 제휴하면서 한국의 다양한 스타트업과도 연이 닿았다. 단순히 한국뿐만 아니라 한국 업체들이 진출해 있는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으로 시야를 넓힐 수 있고 다양한 브랜드와 제품을 연결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고 밝혔습니다. 더불어 4J와 레인지가 힘을 모아 계획대로 물류 자동화 시스템 구축, 해외시장 개척까지 한다면 말그대로 한국계 다국적 강소 기업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번 출장길에 의외로 독일에서 스타트업 열기를 느낄 수 있어 참 의미 있었습니다.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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