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고민하다 보게된 영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송정우 2018. 11. 2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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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마담프로스트의 비밀정원>

[오마이뉴스 송정우 기자]

올해  7월 군대를 전역하고 9월에 대학에 복학을 했다. 처음에는 지긋지긋 했던 군생활을 마치고 꿈에 그리던 학교로 다시 돌아온 것 만으로 행복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재회, 학교 선 후배들과 가지는 즐거운 술자리 등으로 첫 한달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던 중 '나만의 진로설계'라는 교양수업을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은 수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본인들의 꿈을 위해 이렇게나 노력을 하고 있는데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전공인 소비자학을 살려 유통업체로 취업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연봉, 근무조건, 선배들의 추천 등으로 결정을 한 것이지 사실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 선택한 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공을 살려 선배들이 많이 진출한 업계로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우려 때문에 다른 길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영화'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감독 실뱅 쇼메)'포스터
ⓒ 찬란
      
그렇게 나의 진로에 대해 한참 고민을 하던 때에 친구들과 함께 <마담프로스트의 비밀정원>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어렸을 때의 아픈 기억으로 평생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았던 주인공 '폴'이 마담 '프로스트'를 만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되고 인생의 전부였지만 또 족쇄였던 피아노를 그만두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이 영화를 본 직후에는 영화의 내용이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들도 많았고 영화 속 인물들도 정상적인 사람이 하나 없고 모두 괴짜같아 보였다. 하지만 같이 영화를 보았던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눠보고 혼자서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지금의 내처지가 괴짜라고 생각했던 주인공 '폴'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폴을 친자식처럼 여기는 두 이모 밑에서 자랐다. 그리고 두 이모의 바람대로 평생을 피아노만 치며 살았다. 영화 초반 폴이 두 이모가 운영하는 댄스 교실에서 기계적으로 피아노를 칠 때 폴의 얼굴에서 행복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이런 폴이 답답하고 멍청해보였다. 보모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 트라우마가 있다라고 해도 '왜 저렇게 까지 원하지 않는 재미없는 삶을 사는 것일까?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 사람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럼 나는?'이라는 물음이 뇌리를 스쳤다. 아찔했다. 폴은 남이 정해준 삶을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정도가 심했을뿐 그 본질적인 문제는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와 동일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마음으로 다시 영화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니 이해가 되지않았던 부분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더욱 확실하게 다가왔다.

영화 속에서 마담 프로스트는 이런 말을 한다. "폴의 진짜 문제는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가 아니라 지금 의미없이 반복되는 일상이에요." 그렇다 사실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다고 해서, 어렸을 때 안 좋은 기억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폴처럼 말을 하지 못하거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의미없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폴이 어른되어서도 트라우마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의미없는 일상를 살아가는 이유는 두 이모들의 강요에 의한 삶, 즉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폴은 자신의 문제에 직면할 수 없었고 자신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안나 이모 역의 헬렌 벤상, 폴 역의 귀욤 고익스, 애니 이모 역의 베르나데트 라퐁
ⓒ 찬란
 폴의 이런 모습은 나와도 묘하게 닮아있었다. 폴의 두 이모처럼 내 삶을 강요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전공을 살려 선배들처럼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한다'는 틀에 박힌 생각을 하며 나 자신이 '두 이모'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도 다른 길을 보지 못했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있는데, 폴이 트라우마를 극복하여 피아노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장면이다. 당연히 폴이 피아노를 치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으로 영화가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는 돌연 피아노를 그만두고 우쿠렐레를 치며 부인과 아이를 낳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폴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생각을 해보면 폴이 피아노를 그만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폴의 인생에서 피아노는 행복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마담 프루스트 역을 맡은 앤 르 니
ⓒ 찬란
 
이 엔딩을 보고 나도 지금의 좁은 시야로 내 인생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행복의 근원에 대해서 고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공을 살려 유통업체로 취업하는 것은 내가 가진 수많은 선택지 중에 하나일 뿐인 것이다. 폴이 마담 프로스트를 만나 자신의 문제에 직면하고 자신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처음 가졌던 것처럼 나도 이 영화를 보고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다가올 겨울 방학은 내가 진정으로 살고 싶은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 답을 찾기 위한 시간으로 온전히 보낼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 늦었을 수도 있고 그 길이 쉽지 않은 길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폴이 피아노라는 족쇄를 벗어던진 것처럼 나도 스스로 옭아메고 있던 족쇄를 벗어던지고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와 마주했느냐의 차이는 인생을 살면서 더 뼈저리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영화 한편으로 나의 진로가 결정된 것도, 문제가 해결된것도 아니지만 행복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얻었다는 것만으로 영화를 볼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면서 '네 인생을 살거라'라는 메시지를 던져준 마담 프로스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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