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준의 스포츠톡]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 한국 대표팀 색깔 바꿨다

김현준 기자 2018. 11. 22.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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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부임 후 한국 대표팀을 탈바꿈시키고 있는 파울루 벤투 감독./사진=뉴스1

“우리 팀만의 정체성과 전술을 만들겠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난 8월23일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부임 후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밝힌 다짐이다. 이전까지 한국팀은 점유율 축구로 무색무취의 플레이를 이어갔다. 전임인 신태용 감독은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도 확실한 ‘플랜A’를 정하지 못하며 첫 두 경기를 연이어 패했다.

벤투 감독은 총 6번에 걸친 평가전을 통해 빠르고 간결한 축구가 현재 한국팀이 지향해야 할 목표임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빌드업’이 있었다. 대표팀 선수들도 인터뷰 등을 통해 벤투 감독이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 빌드업이라고 입을 모아 밝혔다.

◆전 포지션서 중요한 ‘빌드업’ 능력

‘쌓아올리다, 확립하다’ 등의 뜻을 지닌 ‘빌드업’은 축구에서도 공격 기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공격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일반적으로 공격수 및 미드필더들이 주로 수행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대 축구에서는 수비수의 빌드업 능력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꼽히는 프란츠 베켄바우어, 프랑코 바레시 등은 일반 수비수와는 다른 선상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리베로’라고 불리는 이 포지션은 3백 또는 5백의 3명 센터백 중 1명이 수비라인보다 더 올라와서 선수들의 위치를 조율하고 공격 시에는 미드필더처럼 볼 배급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런 특정 포지션의 선수들만이 후방에서 빌드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는 점차 경기를 풀어가기 어려워졌다. 현대축구에서 전방 압박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이 그 이유였다. ‘명장’ 리누스 미헬스는 체력소모가 심한 본인의 토털사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공격과 수비 상황에서의 이동거리를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를 위해서 라인을 극단적으로 올렸다.

여기에 감명받은 ‘아리고 사키’는 전방압박을 한차원 더 완벽한 전술로 발전시켰다. 전방 압박에 대인방어를 완전히 탈피한 ‘지역방어’의 개념을 더했는데 지역방어에서는 수비 상황에서 볼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팀 전체가 유기적으로 일정한 지역에 자리잡으면서 ‘공간’을 내주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수비수는 물론이고 미드필더, 그리고 공격수까지 모두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본인이 맡은 공간을 수비해내야 한다.

4-4-2 형태의 ‘사키식’ 압박 축구를 장착한 AC 밀란은 유러피언컵 2연패, 세리에A 무패 우승 등을 일구며 유럽 축구를 호령했고 이를 지켜본 수많은 팀이 차용하면서 압박 축구가 전세계로 보편화됐다. 이후 현대축구의 그라운드는 후방라인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이 압박과 탈압박이 끊임없이 이뤄지는 전쟁터로 변했다.

결국 현대 축구에서 상대방의 진영까지 볼이 도달하려면 후방라인에서부터 압박을 견디며 운반해야 하기에 볼 간수 능력과 패싱력, 즉 ‘빌드업’이 탁월한 수비수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심지어 골키퍼 역시 빌드업에 무관하지 않는 포지션으로 변모하면서 골키퍼들의 킥력도 중요한 자질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 축구에서는 헤라르드 피케(31·FC 바르셀로나), 레오나르도 보누치(31·유벤투스), 마누엘 노이어(32·바이에른뮌헨), 에데르송(25·맨체스터 시티) 등 특출난 빌드업 능력을 겸비한 수비수와 골키퍼들이 이름을 날리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끌었던 유로 2012 당시 포르투갈 대표팀. 이때의 포르투갈도 후방 빌드업과 빠른 역습 축구를 중심으로 3위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사진=로이터

벤투 감독 역시 전 포지션에 걸쳐 빌드업 능력이 좋은 선수들로 팀을 꾸려 빠르고 유기적인 축구를 구사한다. 벤투 감독은 유로 2012에서 포르투갈을 이끌 당시 풍부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적재적소에 볼을 운반할 수 있는 하울 메이렐레스(35·페네르바체 SK), 주앙 무티뉴(32·울버햄튼 원더러스) 등을 미드필더진에 배치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유벤투스)와 루이스 나니(31·스포르팅 리스본)의 속도를 살린 역습축구에 힘을 보탰다.

여기에 공격력과 스피드가 뛰어난 파비우 코엔트랑(30·히우 아브)과 주앙 페레이라(34·트라브존스포르)를 양쪽 측면 수비수로 세우면서 이들의 활발한 공격가담을 통해 단조로운 공격 패턴을 지양했다.

벤투 감독은 이런 선수진으로 빠르고 간결한 팀을 만들었다. 벤투의 포르투갈은 역습 상황에서는 긴 패스와 짧은 패스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후방에서부터 빌드업 작업을 진행했다. 미드필더들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전·후방 적재적소에서 빌드업에 관여함은 물론, 전방압박으로 넓어진 공간을 쉴 새 없이 커버했다.

측면 수비수들은 공격 상황에서 적진 깊숙이 적극적인 오버래핑을 시도하면서 호날두·나니와 유기적으로 포지션을 바꾸며 공격 작업에 임했다. 유로 2012 당시 포르투갈은 4강에서 당대 최강팀인 스페인과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하는 등 선전하며 3위에 올랐다.

◆'빌드업+속도' 벤투호, 색깔 만드는 중

한국에서도 벤투 감독은 본인이 그동안 보여줬던 축구 철학에 맞는 포메이션과 팀을 구성했다. 부임 후 첫 경기인 코스타리카전에서는 4-2-3-1을 기본으로 후방 빌드업을 위해 수비력이 좋은 김영권의 짝으로 패싱력이 양호한 장현수를 선발 출전시켰다.

그리고 선방능력이 뛰어나지만 패스능력은 떨어지는 조현우(27·대구 FC) 대신 발기술이 좋은 김승규(28·빗셀 고베)를 선발로 내세웠다. 여기에 기성용(29·뉴캐슬 유나이티드)과 정우영(28·알 사드)을 중원에 배치하면서 ‘빠르지만 만들어가는’ 축구를 구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후 6경기를 치르면서 장현수(27·FC 도쿄)가 병역특례 봉사활동 서류 조작으로 대표팀에서 영구 제명되는 등 약간의 선수 변동이 있었지만 벤투 감독이 처음 제시한 틀은 계속 유지됐다. 선수들도 경기를 치를수록 전술에 익숙해지면서 점차 팀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의미 없는 볼 소유도 크게 줄었다. 벤투 감독은 최대한 간결한 패스를 강조한다. 압박을 당하는 상황에서 터치 횟수나 볼 소유시간이 길어지면 어쩔 수 없이 후방으로 백패스가 향하면서 결국 부정확한 롱패스에 의존하게 된다.

슈틸리케의 한국팀은 그가 부임한 2년9개월 동안 평균 62%라는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점유율에 너무 집착했으며 약속된 플레이들이 부재하다 보니 선수들도 다소 정적으로 움직이면서 후방에서 머문 볼이 대부분이었다.

경기 종료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이렇다 할 기회를 만들지 못하면 한번의 긴 패스로 골을 만드려는 ‘요행’이 연례행사처럼 등장했다. 최악의 졸전으로 꼽히는 2016년 10월 이란전과 2017년 6월 이라크전에서는 단 1개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하는 등 답답한 경기가 주를 이뤘다.

파울루 벤투 감독 부임 후 6경기에서 3승 3무를 기록하며 2018 UAE 아시안컵의 전망을 밝힌 한국 축구 대표팀./사진=뉴스1

그러나 벤투호의 한국 대표팀은 달랐다. 압박을 당하는 상황에서는 원터치 위주의 간결한 패스로 풀어나갔으며 후방에서 죽은 볼을 만들지 않기 위해 2선 선수들이 끊임없이 내려와 빌드업 과정을 수행했다. 그리고 측면 수비수와 2선 공격진,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 간의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패스 길을 만들면서 간결하고 빠른 역습 기회를 창출했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도 중앙 미드필더인 황인범(22·대전 시티즌)과 주세종(28·아산 무궁화)이 서로 위치를 번갈아 바꾸면서 한명이 한국팀 후방 깊숙한 지역까지 내려와 공격 전개를 도왔다. 이들이 전방 압박 등으로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는 측면 미드필더 이청용(30·VfL보훔)이 내려와 빌드업을 이어갔다.

2선에서 볼을 소유하면 측면 수비수 이용(31·전북 현대)이 재빨리 오른쪽 측면으로 올라가면서 뒷공간을 노렸다. 남태희(27·알두하일 SC)가 멋진 발리슛으로 마무리한 첫골 장면은 거침없는 빌드업의 정수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벤투호 대표팀은 4-0이라는 스코어에서 드러나듯이 최고의 결과로 2018년을 마무리했다. 물론 6경기에서 모든 점이 완벽하진 않았으며 후방 빌드업을 강조한 나머지 치명적인 실책을 범해 실점하는 장면 등은 개선의 여지를 남겼다.

그럼에도 한국 축구 역사상 취임 후 6경기 무패라는 결과를 낸 벤투 감독의 축구철학이 한국팀을 새롭게 탈바꿈시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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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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