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용원숭이는 왜 고압전류 위험 무릅쓰고 사육장을 탈출했나

송경은 기자 2018. 11.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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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자원지원센터 탈출 붉은털원숭이 13일 만에 구조.."건강상태 양호"
전북 정읍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를 탈출했던 원숭이가 19일 안전하게 구조됐다. - 연합뉴스

실험용 영장류 사육시설인 전북 정읍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를 탈출했던 원숭이가 안전하게 구조됐다. 사육장을 벗어난 지 13일 만이다. 현재 원숭이의 건강은 양호한 상태다. 센터는 원숭이에 대한 추가 검역과 함께 사육장 안전시설 보완에 나섰다.

20일 생명연에 따르면 영장류자원지원센터는 센터 준공식이 열린 이달 6일 오후 사육장을 탈출했던 붉은털원숭이를 19일 오전 9시 46분경 센터 인근 숲에 미리 설치해둔 구조용 덫을 이용해 안전하게 포획했다. 이 원숭이는 탈출할 당시보다 0.2㎏가량 몸무게가 줄었지만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동물실험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라 센터는 향후 30일간 원숭이를 검역동에 격리시킨 뒤 정밀 검진을 실시할 계획이다. 김지수 영장류자원지원센터장은 “이전까지는 연구실 바깥의 외부환경에 노출된 적이 전혀 없었던 원숭이”라며 “야생동물과의 접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병원균 감염 여부를 검사 중”이라고 밝혔다. 만약 차후에도 건강에 이상이 없을 경우 다른 개체들이 있는 사육장으로 복귀시킨다는 방침이다.

● 고압전류 흐르는 전선 타고 사육장 탈출…작고 빨라 구조 난항 겪어

이달 6일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준공식 행사가 막 끝난 뒤인 오후 3시 30분경 센터 내 캐슬동에서 붉은털원숭이(히말라야 원숭이) 암컷 한 마리가 높이 7m, 상단에 최대 1만2000V(볼트)의 고압 전류가 1초 단위로 흐르는 울타리를 넘어 사라졌다. 생후 38개월 된 이 원숭이의 키는 60㎝ 남짓, 몸무게는 4.3㎏에 불과하다.
 
울타리 하단의 학습용 전기충격기와 상단의 전기펜스를 잇는 가느다란 전선 한 가닥이 사건의 도화선이 됐다. 생명연 관계자는 “상단 전기펜스에 전기를 끌어다 놓기 위해 연결한 전선으로 펜스와 마찬가지로 고압 전류가 흐른다”고 설명했다. 원숭이는 1초 간격으로 계속된 전기 충격에도 불구하고 이 전선을 타고 울타리를 넘었다.

이달 6일 사육장을 탈출했던 원숭이가 19일 오전 9시 46분경 센터 인근 숲에 미리 설치해둔 구조용 덫에 포획된 채 발견됐다. 안전하게 구조된 이 원숭이의 건강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확인됐다. - 연합뉴스

캐슬동은 원숭이의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 야생의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으로 만든 자연친화적 우리다. 센터는 준공식 당일 행사의 일환으로 10여 마리의 원숭이를 캐슬동에 풀었다. 대부분은 중국에서 수입해 한국에 들어온 지 8개월 된 원숭이들이다. 김 센터장은 “준공식 행사로 당시 주변이 평소보다 매우 시끄러운 상태였던 데다 캐슬동에 처음 들어가면서 낯선 환경에 원숭이들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센터는 그간 소방당국과 경찰, 지방자치단체와 공조 아래 150여 명의 인력을 투입하는 등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여왔다. 그러나 사건 당일부터 4일째 원숭이의 흔적은 발견되지 못했다. 간혹 센터 인근 마을에서 감을 따먹는 등 원숭이를 목격한 주민들의 신고가 있었지만 워낙 몸집이 작은 데다 움직이는 속도도 빨랐기 때문이다.
 
일주일째 접어들어 센터를 둘러싼 야산에서 원숭이가 다시 발견됐다. 이번엔 우거진 대나무 숲이 문제였다. 원숭이가 소동물인 만큼 마취총 대신 블로건(마취제 입으로 쏘는 기구)을 사용해야 했는데, 시야에서 금세 사라져 포획이 쉽지 않았다. 결국 구조당국과 센터는 구조용 덫을 설치해 포획에 성공했다. 김 센터장은 “원숭이가 멀리 떠나지 않도록 주변에 과일과 사료 등 먹이를 뿌려놓고 추적 관찰하면서 원숭이 크기에 맞는 덫 하나를 직접 제작했다”며 “발견 후 다시 일주일가량 구조가 지연됐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 울타리 높일 필요는 없어…“개폐 가능한 돔 형태 개조방안 고려 중”

현재 캐슬동은 안전시설 보완을 위해 잠정 폐쇄된 상태다. 내부에 있던 원숭이들은 다시 일반 우리로 옮겨졌다. 다만 해외 동물원이나 연구소의 사육시설에 비춰볼 때 울타리를 더 높일 필요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자연친화적인 서식지 환경을 해칠 수 있고 원숭이가 타고 올라갔던 전선만 제거해도 원숭이들이 7m 높이의 울타리를 다시 넘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센터 측은 시민들의 우려에 따라 캐슬동을 개폐가 가능한 돔 형태로 개조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돔 형태의 우리는 천장이 높아 원숭이들에게 개방적인 느낌을 줄 수 있고 여름에는 돔 지붕을 열어 줬다가 겨울에는 보온을 위해 닫는 식으로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전북 정읍에 들어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전경. 최대 3000마리의 영장류를 사육할 수 있다. 중앙부 왼쪽에 천장이 개방된 원통형 건물이 탈출한 원숭이를 풀어놨던 자연친화적 우리인 캐슬동이다. 울타리 높이가 7m에 이르지만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선을 타고 암컷 원숭이 한 마리가 탈출했다. 해당 원숭이는 탈출 13일 만인 19일 안전하게 구조됐다. - 연합뉴스

앞서 이달 8일 시민단체 정읍시민행동은 “탈출한 원숭이가 실험 약품에 감염돼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며 “원숭이의 바이러스 감염 여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김 센터장은 “영장류자원지원센터는 실험시설이 아닌 사육시설이며 탈출했던 원숭이 역시 실험에 동원된 적 없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사육 중인 모든 영장류는 국내로 들여오기 전부터 각종 검역을 거친 개체들이다.

생명연 영장류자원지원센터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영장류 사육시설로 내년 6월 공식 개소한다. 국내 연구자들의 안정적인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2014년부터 4년간 총 18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지어졌다. 최대 3000마리의 영장류를 사육할 수 있으며 현재는 붉은털원숭이 160마리를 포함한 590마리의 영장류가 생활하고 있다. 인간과 가장 비슷한 동물인 영장류는 알츠하이머병(치매), 파킨슨병을 비롯한 난치성 질환 연구와 인지기능과 사회성, 발달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필요한 필수 자원으로 꼽힌다. 붉은털원숭이와 인간은 93%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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