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사탕 녹여 얇게 바른 듯 '파삭한' 식감.. 불과 철로 만들어낸 어떤 무공 보는 듯

정동현 음식 칼럼니스트 2018. 11. 1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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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현의 pick|탕수육 편] 경기도 동탄 '상해루'
당의(糖衣)를 입힌 것처럼 바삭하고 달콤한 경기도 동탄 ‘상해루’의 명물 탕수육. /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중국집 장사는 탕수육에 달려 있다. 물론 짜장·짬뽕을 빼먹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객(客)단가를 높이려면 탕수육이 팔려야 한다. 짜장·짬뽕만 팔면 이윤이 박하게 남는다. 중화 냄비 돌리는 요리사 어깨만 망가진다.

사람들이 많이 찾다 보니 한국 탕수육 수준은 전반적으로 높다. 외국에 나갔을 때 중국집에 갈 일이 있다면 탕수육과 형제자매 격인 '스위트 앤드 사워 포크'나 대용품 '오렌지 치킨'을 시켜 먹어 보면 된다. 튀김옷은 쉽게 눅눅해지고 소스는 쉽게 질린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기술력은 탕수육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한국에서는 동네 중국집 어딜 가나 탕수육은 기본 이상이다. 바꿔 말하면 다른 집보다 탕수육을 더, 매우 잘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도 된다.

그래도 누군가는 한 걸음, 아니면 반걸음이라도 더 앞서가려는 노력과 시도를 한다. 1948년 문을 열어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중국집이라는 을지로3가의 '안동장'도 그중 하나다. 튀김옷은 옛 스타일이다. 잔기술 없이 폭신하고 얌전하게 튀겨낸다. 맛은 얼갈이배추를 썰어 넣은 소스에 있다. 늘 양복을 차려입고 홀을 담당하는 노신사의 우아한 손놀림처럼 이 탕수육도 튀거나 모나는 맛 없이 수더분하게, 늘 그랬던 것처럼 탁자 위에 놓인다. 초간장 찍어 훌훌 먹다 보면 한나절도, 한 세월도 금방이다.

개성이 강한 쪽을 택한다면 서울 여의도 '서궁'이 손꼽힌다. 증기기관차처럼 하얀 김을 내뿜으며 나오는 서궁의 탕수육은 모양새도 맛도 근육질이다. 하얀 러닝셔츠 하나 입고 땀을 뻘뻘 흘리는 요리사가 사자후를 토해내듯 튀기고 볶아 탕수육 한 접시를 뽑아낸 듯싶다. 이곳 탕수육은 '튀김+소스'가 아닌 '튀김×소스' 정도 된다. 튀김은 바삭함을 잃었지만 터질 듯한 부피감을 얻었다.

새롭게 명성을 얻은 곳을 따져보면 서울 상수동 '맛이차이나', 신사동 '송쉐프' 정도가 눈에 띈다. 모두 소스와 튀김을 따로 낸다. 소스보다는 튀김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 실용적인 젊은 층 감각이 그대로 담겼다. 취향만 놓고 보면 다른 것이 없다. 기호에 따라 '부먹'이든 '찍먹'이든 골라 먹으면 된다. 그럼에도 탕수육의 신이 와서 오직 한 탕수육만 고르라 한다면 경기도 동탄 '상해루'에 가겠다.

곡금초 주방장이 이끄는 상해루를 탕수육 하나로 정의하기는 아쉽다. 대게살볶음, 토사전복, 해삼주스 등 이름도 생소한 요리가 넘쳐난다. 히트곡 릴레이 같은 긴 코스를 먹어야 그 내공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탕수육은 탕수육이다. 이 집의 가장 비싼 코스에도 꼭 탕수육이 나온다. 그리고 그 탕수육은 모순과 한계를 극복한 결정체다. 소스와 튀김을 한 번 더 뜨겁게 볶아내 완전한 하나로 만들었음에도 튀김옷은 전혀 상하지 않는다. 사탕을 녹여 얇게 바른 듯 바삭이 아니라 파삭하게 부서지는 식감을 느낄 때, 요리가 표준화된 조리법과 체계화된 기법으로 이루어진 기술을 넘어 극도의 예술 또는 불과 철로 이룩한 어떤 무공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그 상념도 잠깐이다. 달고 신 소스에 침이 샘솟고 모터처럼 위장이 돌아간다. 위장의 용적도, 칼로리 계산도 모두 무용해진다. 마침내 배가 불러 숨도 못 쉬고 있으면 '노(老)사부'가 만면한 웃음을 머금고 허리 숙여 인사한다. 어진 사람이 빚은 놀라운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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