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 6.9cm지?" vs "숏컷머리라 맞았다".. 이수역 폭행사건 커져가는 남혐-여혐 정서

남정훈 2018. 11. 1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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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 6.9cm지?”, “내가 6.9cm로 태어났으면 자살했다”...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서 ‘이수역 폭행사건 페미니스트 욕설 영상’이란 제목의 동영상에서 나오는 말이다. 듣기만 해도 민망한 이 말들을 동영상 속 여성들은 상대 남성들에게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야, 내 클리(클리토리스, 여성 성기의 한 부분)가 니 소추(한국 남성의 성기가 작음을 비하하는 말)보다 더커”, “근데 저 XX들은 여자 만나본 적도 없어서 클리가 뭔지도 모를걸. 소추, 소추” 등의 더욱 원색적이고 비하의 뜻이 많이 담긴 단어를 남발하며 상대 남성들을 도발하고 있다.

지난 13일 오전 4시쯤 서울 동작구 지하철 7호선 이수역 인근의 한 주점에서 A(21)씨 등 남성 일행 3명과 B(23)씨 등 여성 일행 2명이 서로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구속된, 이른바 ‘이수역 주점 폭행사건’이 온라인 공간에서 남혐(남성혐오)과 여혐(여성혐오)의 대결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 시작은 ‘남성들의 여혐’, 뒤이어 ‘여성들의 남혐이 시비원인’

경찰이 이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일어나기도 전에 온라인 공간에선 남성을 일방적 가해자로 비난하고, 이를 ‘여혐 범죄’로 규정하는 ‘인터넷 여론’이 형성됐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뼈가 보일 만큼 폭행당해 입원중이나 피의자 신분이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퍼진 것. 이 청원은 15일 오후 5시 기준 청원인이 35만명을 넘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해당 글쓴이는 다른 남녀 커플 손님이 지속해서 쳐다보면서 말싸움이 이어졌는데 관련 없는 남성들이 합세해 자신들을 비난하고 공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말로만 듣던 메갈(남성 혐오 인터넷 사이트) 실제로 본다’, ‘얼굴 왜 그러냐’ 등 인신공격도 했다”,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가 짧단 이유만으로 피해자 두 명은 남자 5명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청원글 내용중 ‘쇼트커트라는 이유로 여자가 맞았다’, ‘이것이 여혐민국의 현실’이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며 남혐 정서가 극에 달한 모양새다. 이수역 폭행 사건을 SNS상에서 언급한 여자연예인이 네티즌의 집중 포화를 받자 ‘남혐 의도가 없었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동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고, ‘여성의 남혐 표혐으로 시작된 사건’, ‘남성에 대한 성희롱’이라는 내용의 글들이 청와대 청원과 온라인 커뮤니티, 포털사이트 댓글로 퍼지면서 사건의 양상은 뒤집히고 있다. A씨 등은 자신들이 폭행을 당했고, B씨 등이 먼저 휴대전화로 촬영을 하며 시비를 걸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 등은 당시 경찰의 약식 조사에서 B씨 등이 주점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조용히 해 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무시하고 시비를 걸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B씨 일행과 애초에 말싸움을 했다는 커플의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네티즌이 B씨 등이 시비원인을 제공하는 말들을 했다는 진술로 B씨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글쓴이는 “남자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는데 B씨 등이 ‘한남’(한국남자를 비하하는인터넷 용어) 커플‘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계속 비아냥댔다”고 주장했다. 이어 “A씨 일행이 '소란 피우지 말아라. 가만히 있는 분들한테 왜 그러느냐’라고 B씨에게 말했다”며 “그러자 이후 여성이 남성들을 촬영하기 시작하면서 싸움이 커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건을 여혐 사건이라고 하는데 여혐은 여성들이 저에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글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익명으로 올라왔다가 삭제돼 실제 당사자가 글을 올린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해 강력팀을 투입해 신속한 수사에 돌입했다. 경찰은 주점 업주 조사와 CCTV 검토를 병행하고 있으며 15일부터 관련자들을 소환해 사건 경위와 피해상황을 엄정히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관련자들 모두 한점 억울한 점이 없도록 정당방위 여부 등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건의 본질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적 대결로 비화되는 데 우려를 표했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경찰학)는 “피해자라고 할지라도 특정 발언을 통해 폭행을 유발했다면 사건의 본질이 달라질 수 있다”며 “국민들은 경찰 조사가 끝날 때까지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도 “시비의 발단 요인이 남녀에 대한 편견 때문이라면 증오범죄가 될 수 있다”면서도 “만약 실체가 그렇지 않다면 사회 분위기 탓에 한쪽의 말에만 경도된 꼴이 된다”고 말했다.

◆ 왜 하필 6.9cm? 남혐사이트의 주요 조롱대상

이쯤에서 유튜브 동영상을 본 이들의 궁금증 하나. 왜 동영상 속 여성들은 6.9cm를 특정했을까.

여초 사이트에서는 한국 남성의 성기를 조롱하는 신조어나 단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성 회원이 약 170만명이 가입한 패션 정보 카페에는 ‘소추민국 한남충들, 다 재기해라’라는 말도 있다. 남성 혐오를 표방하는 사이트가 아님에도 이런 말이 버젓이 올라온다. 여기서 소추민국은 ‘성기 크기가 작은 남자가 모여 있는 한국’이란 뜻이다.

6.9cm는 인터넷 카페 ‘불편한 용기’가 지난 6월9일 불법 촬영에 대한 수사 당국의 편파수사와 사법부의 편파판결을 규탄하는 ‘혜화역 여성집회’에서 비롯됐다. 이날 시위에서는 ‘유X무죄, 무X유죄’라는, 남성의 성기를 속되게 이르는 단어를 활용한 구호가 널리 사용됐다. 집회에 참가한 일부 여성들은 이날 행사를 ‘6·9 소추절’이라 불렀다. 한국 남성의 평균 성기 길이가 6.9㎝라고 주장하며 남성들을 조롱한 것. ‘이수역 폭행사건’ 유튜브 동영상 속 여성들이 6.9cm를 계속 언급하는 것도 지난 6월9일 집회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메갈리아나 워마드 등 대표적인 여초사이트들이 이러한 거친 혐오 표현을 남성들을 쓸 때 내세우는 논리는 ‘미러링’(mirroring)'이다. 남초 사이트에서 먼저 여성들에 대한 비하 표현을 거침없이 쓰니 우리도 똑같이 갚아준다는 의미다. 이들은 ‘김치녀(한국여성을 비하하는 말)’ ‘삼일한(여자는 사흘에 한 번 때려야 한다)’ 등의 여성 비하 용어를 뒤집어 ‘꽁치남’(돈 안 쓰는 치졸한 남자) ‘숨쉴한’(한국 남자는 숨 쉴 때마다 한 번씩 패야 한다)'라고 뒤집는다. 가장 극단적인 남성 혐오 사이트인 ‘워마드’는 토막시신으로 발견된 남성의 시체를 보고 남성이라는 이유로 “훈훈하고 기분 좋은 소식”이라고 조롱하고, 배우 故 김주혁씨나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종현이 각각 교통사고와 자살로 사망했을 때도 그들의 죽음을 조롱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이수역 폭행사건이 제대로 사건의 본질이 규명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남성-여성 간의 혐오대결로 비화되는 데 우려를 표했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경찰학)는 “피해자라고 할지라도 특정 발언을 통해 폭행을 유발했다면 사건의 본질이 달라질 수 있다”며 “국민들은 경찰 조사가 끝날 때까지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도 “시비의 발단 요인이 남녀에 대한 편견 때문이라면 증오범죄가 될 수 있다”면서도 “만약 실체가 그렇지 않다면 사회 분위기 탓에 한쪽의 말에만 경도된 꼴이 된다”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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