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자발적 징병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안악희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2018. 11. 13.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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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먼 징병 이웃 징병 - 다른 나라의 징병제는 어떨까?

[안악희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대체복무제의 도입이 결정되고 나서, 대체복무제를 반대하는 의견은 주로 현역병들과의 형평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 이 논리는 넘기 어려운 산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의문이 존재한다. 한국의 징병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나? 징병제는 절대적으로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수정이 불가능한 것인가?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징병제를 제대로 논하려면 그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고, 일단 한국을 벗어난 보편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이 글은 각국의 징병제는 어떻게 운용되고 있으며, 한국이 정확히 어떤 위치에 와 있는지, 왜 한국은 전근대적인 징병제에 머물러 있는지를 조망하고자 한다. 그 이전에 징병제와 모병제의 차이, 징병제에 대한 배경지식도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타국에는 한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의 징병제가 너무도 많다. 우리 모두는 70년 가까이 한국식 징병제 하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징병제들도 "으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약간 길어지긴 하겠지만 징병제 전반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징병제란 무엇인가

흔히들 징병제는 태고적부터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왕의 군대"의 이야기고, 근대 이후의 군대는 국민개병제를 통한 국민의 군대다. 전제 왕정을 전복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군대가 민주공화국 군대의 시발점이다. 근대 시민혁명의 원조인 미국과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이후 총력전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량의 병력이 필요해 졌기 때문에 점점 징병제가 도입 확대됐다. 요컨대, 왕정에서 신민을 징발하는 것과 공화정에서 당당한 주권자로서의 개인을 군대에 참여시키기 위한 징병제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근대 이후의 군대는 왕의 명령에 따라 병졸이 되는것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의 정신으로 자신의 나라를 직접 지킨다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법에 의해 국민을 군대에 동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국가는 모두 징병제 국가라고 보면 된다. 반면 국민을 군대에 동원할 근거가 없는 국가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몇몇 국가들은 국민의 의무에 국방의 의무가 포함되어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다만 국방을 일종의 권리로 설정해 놓은 경우들이 있다). 이러한 국가들이 바로 모병제 국가다.

세계 각국의 징병제의 실제

법적으로 징병제가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징병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국가들을 "자발적 징병제(Voluntary Conscription)" 국가라고 부른다. 또는 현실적인 이유로 징병을 중단한 사례도 있다. 일례로 미국은 베트남전 이후 징병을 하고 있지 않지만, 징병에 관한 시스템은 갖추어져 있다. 18세 이상의 모든 미국인 남성들은 선발징병시스템(Selective Service System, SSS)에 등록해야 하고 유사시에는 징병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심지어 지역에 따라 SSS에 반드시 등록을 해야 하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모병제 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틀렸다. 독일 또한 2011년 이후 징집 중단 상태로 전환했을 뿐, 모병제 국가로 전환하지는 않았다.


경우에 따라 징병제를 실시하기는 하나, 개인의 의사에 따라 얼마든지 징병에 응하지 않을 수 있고 대체복무제 자체도 사라져서 입영 거부를 처벌하지 않는 곳도 있다. 노르웨이가 대표적이다. 이 경우는 현역 복무 대상자에게 입영 통지서를 발송하기는 하나 이를 거부한다 해도 아무런 법적 처벌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국가들을 모병제 국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또한 국가적 상황이나 군대의 TO 사정에 따라 징병 대상 인구 중 일부만을 징집하거나, 개인의 선택에 따라 대체복무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징병제(Selective Conscription) 국가들도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후에 설명할 국가들 중 자발적 징병제 국가들은 모병제가 아닌, 강제성 없이 자원에 의해 병력이 충원되는 징병제 국가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 글은 국제전략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 IISS)의 'The Military Balance'(2017,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가 매년 펴내는 군사력 평가 자료로 일종의 '팩트북')를 참고 하였음을 밝혀둔다.


각국의 징병제


징병제 국가들

(* 참고로 아래의 국가들 중 대부분의 국가들은 대부분 30대 이상은 징집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개발도상국 중에는 군 병력에 편입은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대민업무를 담당하는 경우도 있고 국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비교해 본다면 그나마 한국과 상황이 비슷한 국가들은 유럽 국가들일 것이다. 비슷한 경제규모인 국가들 중에는 GDP 대비 인구 규모가 너무 커서 단순 비교가 불가능한 나라들이 있고(브라질, 인도 등), 정치적 환경이나 인권 상황이 좋지 않아서 한국의 상황을 대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청년 인구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병역 기피가 큰 흠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비슷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고려 해 볼 때 이제 한국은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야 하는데, 유럽 국가들 중 다수의 국가들이 징병제를 폐지하거나 자발적 징병제로 전환한 상태다.


결국 한국은 어떤 나라들이 한국과 비슷한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지를 봐야 할 수 밖에 없다. 한국처럼 2년에 가까운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들이 어떤 국가들인지를 살펴본다면 대부분 국가 기반이 아직 허약한 국가들임을 알 수 있다. 또는 실제로 외국과 교전 중인 국가들이다. 한국은 간혹 소규모 무력충돌이 발생하기는 하나 전면전이 발발한 국가도 아니고, 지역 일부에서 무장 반군이 활동 중인 국가도 아니다. 


또 복무 기간이 비슷한 국가들이라 할지라도 복무 여건에서 큰 차이가 난다. 이 표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징병제 국가들이 그렇게 생활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징집되어 군 복무를 한다 해도 병영 생활과 사회 생활간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일부 개발도상국은 지역 산업과 이권을 사실상 군벌이 쥐고 있기 때문에 군대에 입대하는 것이 곧 취직인 경우도 있다.

게다가 많은 국가들이 징집된 병사들에게 상당한 보상을 지급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 징병인원에게 한달에 600셰켈(약 18만 원)에 달하는 생필품을 제공하고 있고, 버스와 기차 표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업장에서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주말에는 여가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군 복무가 끝날 때 전역자들은 교육, 주택, 결혼에 관한 보조금을 받을 수 있고, 외국인 지원자의 경우 민영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

결론 : "박탈감"은 어디서 오는가

아직 정부에서 논의 중이긴 하나, 대체복무제가 곧 도입될 것이다. 현역 병사들과 형평성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에 대체복무제의 기간을 길게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의 상황에 비추어 보건대 일견 타당한 말로 들릴 수 있다. 한국의 징병제는 생각보다 훨씬 가혹하기 때문이다.


이제야 조금씩 기간병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고 있기는 하다. 주중 외출이 가능해지고 개인 전화 사용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일대 혁신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이제서야 시행된다는 게 우습고 슬프다. 이미 다른 징병제 국가들은 개인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게 과연 일선 부대에서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 뿐만 아니라 군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한국 예비역들은 사소한 문제로 유치한 통제를 하는 고참이나 지휘관들을 수시로 만난 적이 있고, 휴일이나 개인 시간에도 잡다한 사역을 위해 호출당한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식 징병제 하의 한국군은 갈 길이 멀다. 


한국과 비슷한 경제 수준의 국가들은 대체로 양심의 자유와 평화에 대한 권리를 존중하여, 개인의 신념에 따라 얼마든지 병역을 다른 방식으로 갈음하는 방식을 마련해 두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군사주의적 해결책 말고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는 신념을 인정한 것이다. 사실 이것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모토로 한 국가의 기본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서는 한국 군대의 많은 문제들이 지나치게 비대한 병력 숫자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만 하다. 한국전쟁 이후 10만에서 60만으로 뻥튀기된 병력이 아직도 수정되지 않고 있다. 이번 정부에서 장기적으로는 병력을 감축한다는 계획이 있으나, 과연 실행될 지는 의문이다. 청년 인구는 줄어드는데, 여러가지 군 구성원들의 이해관계 문제로 인하여 군 병력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고, 이를 맞추기 위해 병력이 더 필요하다 보니 징병 신체검사 기준을 수정하고 방위산업체를 줄이고 전문 연구요원까지 징병하는 등 합리성을 떠난 조치가 줄을 잇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 국가 체제도 변해야 한다. 남북한의 긴장을 완화시킨 것은 결국 경제력과 대화였다. 지금이 1차 세계대전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병력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제도라는 것은 언제든 있다가도 없을 수 있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다. 국가에서 유일하게 무력을 사용하도록 승인받은 강력한 집단이 어떠한 논의의 여지도 없이 유지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전쟁은 어디까지나 국제정치의 극단적인 형태의 하나일 뿐이고 이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장치가 필요한데, 군대가 오히려 제어를 할 수 없는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글이 한국에서 대체복무제를 시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와, 한국의 징병제와 군 제도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는 이야기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안악희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akheeah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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