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또다시 예산철이 왔다. 우리 정부는 해마다 20조원의 예산을 연구에 투자한다. 국민총생산(GNP) 대비 비율은 세계 최고라고 자랑한다. 하지만 비율이 무슨 소용인가? 1만원의 10%가 1000원이면 1억원의 10%는 1000만원인데. 하버드대의 기부금 총액이 40조원을 웃돈다. 미국 대학 하나가 갖고 있는 돈의 절반을 들고 감불생심 미국을 상대로 경쟁하겠단다.

게다가 연구비를 받으려면 선진국에서 이미 잘하고 있으니 실패할 확률이 적음을 우선적으로 앞세워야 한다. 쥐꼬리만 한 돈을 쥐고 남의 뒤나 쫓는 연구는 애당초 지기로 작정한 게임이다. 이제는 우리도 빤한 장미와 백합만 키우지 말고 잡초도 챙겨야 한다. 그래야 평생 개똥쑥만 연구하다 말라리아 치유 물질을 찾아내 노벨 화학상을 받은 중국의 투유유 박사 같은 잡초를 길러낼 수 있다.

꾸준히 오래 한 연구의 막강함을 가장 극적으로 입증한 예는 영국 옥스퍼드대의 박새 연구일 것이다. 1947년부터 해온 연구 덕에 옥스퍼드 근방 박새들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가 축적돼 있다. 세계 각국의 생태학자들이 생태계에 미치는 기후변화의 영향 연구를 기획하던 무렵, 덜컥 옥스퍼드 연구진의 논문이 나왔다. 반세기 이상 모아온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박새들이 둥지를 트는 시기가 해마다 빨라지는 경향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장기적 연구로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나도 모든 연구를 하릴없이 길게 한다. 서울대 교수 시절 시작한 까치 연구는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하고 있는 긴팔원숭이 연구도 어언 10년이 넘었고,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내며 시작한 남방큰돌고래 연구도 벌써 5년이 됐다. 20년 넘도록 정부에 손 벌리다 지쳐 이제 그냥 우리끼리 뭉치려 한다. 생명다양성재단이 ‘잡초들의 향연’을 기획하고 기꺼이 잡초를 자처하는 분들의 십시일반 ‘후원동행’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