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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人주의] 강아지의 일기 '유치원 입학날'

머니투데이
  •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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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행하는 반려견 유치원 방문기(記)…등원부터 하원까지

[편집자주] 100여년 전 영국의 사상가 헨리 솔트는 "모든 동물은 혈연관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땅에서 함께 공존해야 할 공동체의 관점에서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고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해야 우리도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닐까요. 매주 목요일, 무심코 지나쳤던 동물에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겠습니다.

지난 7일 반려견 유치원을 찾은 반려견 '둥이'. /사진= 김창현 기자
지난 7일 반려견 유치원을 찾은 반려견 '둥이'. /사진= 김창현 기자
제 이름은 둥이(0살)입니다. 태어난 지는 6개월, 입양된 지는 4개월밖에 안됐답니다. 제가 불쌍하다고요? 그렇지 않아요. 엄마와 누나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사람으로 치자면 주민등록증(동물등록)도 발급받고 예방접종까지 마쳤답니다.

제게 오늘은 중요한 날입니다. 유치원에서 하루를 보낼 예정이거든요. 개가 무슨 유치원이냐고요? 뭘 모르시는 말씀! 요즘은 반려견들이 가족 품에만 머물기보다 유치원에서 친구도 사귀고 예의범절도 배우는 게 대세라고 합니다. 반려견 천만 시대인 만큼, 개들도 펫티켓(펫+에티켓)이 필요하거든요. 천방지축인 제가 번듯한 반려견이 될 수 있을지 무척 설레요. 반려견 유치원이 궁금한 여러분에게 제 하루를 소개할까 합니다.

[개人주의] 강아지의 일기 '유치원 입학날' - 머니투데이
(오전 7시30분) 이른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 누나가 분주하게 무언가를 챙겨요. 자세히 보니 제가 먹는 사료와 간식이에요. 오늘 유치원에 가져간대요. 유아견과 성견 사료가 다르고, 당뇨병 전용 사료 등 개들마다 먹어야 할 사료가 차이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유치원도 사료와 수제간식을 마련해 놓고 있지만 각자 먹는 사료를 가져오길 권장하고 있어요. 저는 아직 '개린이'(개+어린이)기 때문에 유견용 사료를 가져갑니다.


(오전 8시30분) 누나 차를 타고 유치원에 도착했어요. 직장에 다니느라 바쁜 누나지만 첫 유치원 등원인 만큼 특별히 시간을 내서 운전기사를 도맡았어요. 어떤 친구들은 유치원 픽업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대요. 거리가 멀기도 하고 가족들이 출근·외출 준비로 바쁘기 때문이에요. 요즘 유행하는 '펫택시'(펫+택시)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어요. (관련기사☞ [개人주의]"잘 데려다주시개!"…'펫택시' 타보니)

도착하자마자 누나는 유치원 등록 서류를 작성했어요. 이름과 나이를 비롯, 제 '견적사항'을 꼼꼼히 적었어요. 선생님께도 유치원에 온 이유와 특징 등을 설명했어요. 그래야 맞춤 돌봄·교육이 가능하대요. 누나는 제가 천방지축이고 사고뭉치라 예절도 배우고 사회성도 기르길 바란대요.

지난 7일 반려견 유치원에 등원한 반려견들이 선생님과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김창현 기자
지난 7일 반려견 유치원에 등원한 반려견들이 선생님과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김창현 기자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반려견의 사회성과 예절 교육이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지난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가 발표한 "반려동물 연관산업 발전방안 연구' 추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반려인구가 1400만명이 넘고 반려견도 632만 마리나 된대요. 어딜가나 개를 쉽게 볼 수 있죠. 그러다 보니 짖어서 생기는 소음 문제나 개물림 사고 등 문제도 많아지고 있어요. 사회성과 적절한 교육이 없으면 생길 수 있는 문제래요.


(오전 9시) 선생님과 면담을 마치고 누나가 떠날 시간이 됐어요. 제가 아직 어린 만큼 걱정이 많은가 봐요. 그래도 책상 옆에 놓인 선생님들의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을 보더니 한결 표정이 밝아져서 떠났어요. 선생님은 해당 자격이 필수는 아니지만 반려견을 잘 돌보기 위해서 갖추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어요. 반려동물 산업이 성장하고 있는데 관련 국가 자격이 아직 없는 것은 의아한 점이에요.

이제 정말 혼자가 됐어요. 집에서는 온 가족을 호령했지만, 막상 홀로 낯선 곳에 오니 무서워요. 위축돼 있는 저를 선생님은 따로 울타리에 넣었어요. 다른 친구 냄새가 진한 낯선 곳인 만큼 공간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래요. 30분쯤 지나니 적응이 되더군요. 그런 저를 본 선생님은 울타리의 문을 열었어요. 먼저 온 다른 친구들이 제게 달려왔어요. 반갑게 인사를 나눴어요.

지난 7일 반려견 유치원에 등원한 반려견들이 선생님과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김창현 기자
지난 7일 반려견 유치원에 등원한 반려견들이 선생님과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김창현 기자
(오전 10시) 유치원마다 다르지만 하루 올 수 있는 친구들이 정해져 있대요. 너무 많으면 필요한 만큼 정성을 쏟기가 어렵기 때문이에요. 오늘 유치원에 등원한 친구들은 저를 포함해 6마리에요.

비숑프리제인 도도(2살)와 모모(1살), 코튼(0살)은 이 곳 터줏대감이에요. 스피츠인 깨비(1살)는 시크하고 우아해서 친해지기가 어려웠어요. 혼혈의 멋이 돋보이는 메이(1살)는 자주 오는데 이곳이 좋아서 하원할 때 안가려고 버틴대요. 다들 저보다 형·누나지만 1~2살에 불과한 젊은 강아지들이에요.

다들 이 곳을 오랫동안 다녀서 그런지 사회성이 좋고 친절해서 금방 친해졌어요. 오늘처럼 온 가족이 외출하는 날이면 집에 혼자 있어서 외로웠는데 이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뛰어 노니까 무척 신나요.

(오전 11시) 한창 놀다가 선생님과 교육 시간을 가졌어요. 예절과 기초 훈련 시간이에요. '발 주기', '엎드려' 등을 하지 못했지만 오늘 배울 수 있었어요. 선생님이 집에 갈 때 알림장을 써줄테니 가족들과 복습하래요.

평소 같았으면 모두 함께 산책 할 시간이지만 오늘은 취소됐어요. 미세먼지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에요. 대신 실내에서 공을 가지고 친구들과 놀았어요. 여름에는 풀장이 있어서 구명조끼를 입고 수영을 하기도 한대요. 제가 물이 무섭다고 하니까 도도 형이 금방 익숙해질 수 있다고 격려했어요.
반려견 유치원의 모습. /사진= 김창현 기자
반려견 유치원의 모습. /사진= 김창현 기자
(오후 1시) 한창 놀다 보니까 배꼽시계가 울려서 고개를 드니 선생님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점심시간이라 각자 가져온 도시락을 먹었어요. 사료를 해치우고 간식도 먹었어요. 선생님이 직접 만든 수제간식이래요.

배가 부르니 하품이 나와요. 직장인도 학생도 점심을 먹고 나면 졸리다고 하던데 반려견도 똑같나봐요. 특히 저같은 성장기 개린이는 하루에 15시간은 자야해서 낮잠이 필수에요.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강아지 유치원 낮잠 시간' 사진이 엄청 유명하다죠? 저희는 해당 사진처럼 오와 열을 맞춘 이불에 들어가 자지는 않지만, 각자 편한 자세로 2시간 정도 꿈나라로 향했어요.

(오후 3시) 곤히 자다가 눈을 떴어요. 반쯤 뜬 눈으로 바라보니 선생님과 친구들이 놀고 있어요. 이제 일어나서 다이어트·근육강화 운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시간이래요. 낮잠으로 오전의 피로를 풀었으니 다시 신나게 놀아 볼 시간이에요.

선생님이 오전에 보지 못했던 다양한 운동기구를 꺼냈어요. 공, 뜀틀, 터널은 물론 스케이트 보드도 있어요.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활동량을 채울 수 있는 운동이에요. 견주와의 면담을 바탕으로 각자 개별 맞춤 운동을 해요. 저는 선생님과 집중력을 높이고 분리불안을 해결하는데 효과적인 '노즈워크'(후각운동·Nose Work) 놀이를 했어요.

(오후 4시) 놀이를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 할 때가 됐어요. 선생님에게 마사지를 받았어요. 하루 종일 뛰어 놀며 지친 몸을 풀어줘야 한대요. 지저분해진 털을 정리 받고 아로마오일로 마사지를 받으니 몸이 개운해져요. 특히 저희들은 소형견으로 개량되면서 뼈와 관절이 변형돼 슬개골 탈구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인지 선생님은 슬개골 관절을 집중적으로 돌봐주셨어요.

지난 7일 찾은 반려견 유치원에서 반려견 둥이가 터널 통과, 노즈워크 등 스트레스해소 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 유승목 기자
지난 7일 찾은 반려견 유치원에서 반려견 둥이가 터널 통과, 노즈워크 등 스트레스해소 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 유승목 기자
(오후 5시) 유치원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났어요. 이제 견주들이 반려견을 하원시키기 위해 데리러 올 시간이에요. 퇴근이 늦거나 사정이 생겨 견주가 늦게 도착하는 경우도 있어서 오후 8시까지 유치원 문이 열려 있대요. 누나는 제가 걱정스러웠는지 5시 정각에 저를 만나러 왔어요. 8시간 만에 가족을 보니 기뻐요. 친구들,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유치원을 나섰어요. 집까지는 산책 삼아 걸어가기로 했어요.

오늘 저의 하루가 어땠나요? 반려견 유치원은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곳이에요. 주변을 둘러보면 가족에게 버려져서 거리를 떠도는 친구가 수 없이 많을 정도니까요. 사람도 힘든데 개가 무슨 유치원이냐고 호통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반려문화 확산과 함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서비스인 것은 확실해요.

사실 모두가 반려견 유치원을 가야 할 필요는 없어요. 가족의 사랑과 펫티켓, 그리고 주변의 배려만 있다면 반려견은 행복해요. 그리고 저를 포함해 모든 동물이 사람처럼 기쁨과 행복, 슬픔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점만 알아준다면 좋겠어요. 그럼 안녕! (관련기사☞ [개人주의]너와 나의 연결고리…'인권'은 '동물권'과 피를 나눴다)

*지난 7일 반려견유치원에서 '둥이'(푸들)가 보낸 하루를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도움말: 반려동물관리사 조슬아 메르시 몬 시앙 반려견 유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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