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490만원 적자.." 국회 앞에서 불 지른 자영업자의 절규

김은경 기자 2018. 11. 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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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남편 퇴직금으로 장사 시작
빵집·편의점 등 도전했지만 본사 예상매출 안나오자 폐업 조치

지난 5일 오후 6시 20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제7문 옆 인도. 충남 천안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던 최승연(여·60)씨가 팔다 남은 과자와 문구류 등 재고가 담긴 상자 7개를 쌓아놓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최씨의 자진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6분 만에 불을 껐다. 방화 현행범으로 경찰에 체포된 최씨는 "자영업자의 고통과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을 호소할 곳이 없어 국회까지 다다르게 됐다"고 했다.

최씨는 1남 1녀를 둔 평범한 자영업자였다. 결혼 후 20년 넘게 전업주부로 살아오다가 2008년 건설사 현장소장이던 남편이 명예퇴직하면서 장사에 뛰어들었다. 최씨는 "노후 자금, 아이들 학비를 벌어야 했다"고 말했다.

2008년 최씨 부부는 퇴직금과 은행 대출금을 합쳐 국내 제과업계 점유율 1위인 프랜차이즈 빵집을 차렸다. 임차 보증금과 시설 투자 등 초기 비용만 4억5000만원에 달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아르바이트 직원은 1~2명만 채용하고, 부부가 종일 청춘처럼 일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자영업 붐'을 타고 경쟁 업체들이 인근에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매달 월세와 인건비 300여만원을 감당하지 못하고 적자를 내는 상황이 계속됐다. 최씨 가게 부근에 점포를 늘리려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갈등까지 심화되며 이들 부부는 2015년 8월 빵집 문을 닫았다.

최씨는 그해 말, 만두가게를 열었다. 이번엔 대형 프랜차이즈 도움 없이 '내 장사'를 해보겠다고 결심했다. 다른 동네에서 장사가 잘된다는 만두집 노하우를 벤치마킹해 개업했지만 지출이 컸다. 만두 빚는 기술자(2명) 숙식비와 급여만 월 1000만원에 달했다.

최씨는 만두가게 수익으로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지난해 10월 프랜차이즈 편의점을 추가로 차렸다. 친정 식구들에게 3000만~4000만원씩 빌려 자금을 마련했다. 당초 본사는 하루 평균 예상 매출을 151만원으로 책정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실제 일(日) 매출은 63만원 수준이었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수익은 더 줄었다. 개업한 지 반 년도 안 돼 최씨 편의점은 매달 490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본사는 폐업을 권유하며 계약 기간(5년)을 못 채운 최씨에게 위약금 2500여만원을 요구했다. 최씨는 "본사에도 책임이 있다"며 지난 6월부터 청와대 민원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 공정거래위원회, 민주평화당 등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조정원과 정당은 분쟁 조정에 실패했고, 공정위 조사는 몇 달째 진척이 없었다. 결국 최씨는 지난 8월 편의점 영업을 중단했다. 지금도 임차료와 전기 요금이 밀리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1시쯤 천안에서 용달차를 빌려 상경하던 최씨는 오는 도중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용달차 기사를 3시간 동안 붙잡고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는 "죄를 짓는 게 두려워 '돌아가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돌아가도 살 길이 없더라"고 했다. 그는 이날 국회 주변을 빙빙 돌며 불이 번질 만한 나무가 적은 곳을 골라 상자 더미를 태우고는 곧바로 자진 신고했다. 최씨는 "답답한 마음에 이런 일을 저지르게 됐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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