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피아노로 그린 즉흥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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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일시정지 버튼이 없다.
음악도 삶을 닮았다.
일시정지 버튼이 있긴 하지만 그걸 누르는 순간 수줍은 음악은 침묵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특히나 라이브 음악과 삶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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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Chick Corea 'Children's Songs'(1984년)
얼마 전 서울 송파구에서 열린 미국 재즈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77)의 솔로 콘서트 후반부. 코리아가 피아노에서 일어서더니 보조의자를 가져다 그랜드피아노의 오른편에 정성스레 배치했다. “어린 시절 즐겨 하던 놀이가 있어요. 친척들이 할아버지 집에 모이면 피아노에 둘러앉아 서로 음악적 초상화 그리기 게임을 했죠. 오늘 바로 그 놀이를 해볼까 하는데, 어때요? 혹시 자원자 있나요?”
코리아의 곡 ‘What Game Shall We Play Today’의 장난스러운 선율이 머릿속에 잠시 떠올랐다.
빨간색 모자를 눌러쓴 여성 관객이 용감하게 무대 위로 걸어 나온다. 그를 반갑게 맞은 뒤 보조의자에 앉히고는 3초 정도 응시. 코리아가 이내 즉흥연주를 시작했다. 거리의 화가가 초상화를 그리듯. 그 관객을 보고 떠오른 이미지를 건반 위 음표로 그 자리에서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휘황한 콘서트홀은 잠시 괴짜 화가의 작은 아틀리에가 됐다. 전원 풍경에 어울릴 법한 투명한 선율이 커피향처럼 홀 안 가득 퍼져 나갔다.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다음은 남성 관객. 이번엔 조금 빠른 템포의 우스꽝스러운 선율이 앞선다. 객석에서 작은 웃음이 터진다.
코리아는 피아노 연주가 가능한 자원자를 불러올려 함께 연탄(連彈) 연주도 했다. 거장의 독주를 오롯이 즐기고픈 관객에게는 좀 짜증나는 상황일 수도 있었지만 노장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자, 지금 구기고 있는 그 미간 좀 펴봐. 즐겨보자고. 70년 넘게 살아보니 인생에서 중요한 게 뭔지 좀 알겠더군.’
코리아는 앙코르로 ‘Children‘s Songs’ 연작 몇 곡을 들려줬다. 1970년대에 그가 아이들이 노는 정경을 보며 지은 즉흥곡들. 삶에 일시정지 버튼 따위는 없다. 노장의 마른 손이 아이처럼 건반 위를 통통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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