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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재미 자체로 할리우드 흔들다

입력 : 
2018-11-07 16:49:32
수정 : 
2018-11-07 16: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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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양자경과 한국계 배우 켄 정을 제외하면 아는 배우가 없고, 아시안을 희화화한 B급 코미디 영화인 줄 알고 일찌감치 멀리 치워 놓은 이 영화, 하지만 물건이다. 북미 개봉 후 ‘미션 임파서블’을 누르고 전미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에 오르며 지난 10년간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중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우더니, 국내 관객의 요청에 거꾸로 강제 ‘개봉’했다. 단언컨대, 아시안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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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관객들의 폭발적 요청으로 외화가 국내 개봉한 것은 ‘겟 아웃’에 이어 두 번째다. 아시안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자는 ‘골드오픈’(#goldopen) 태그 운동을 일으키기도한 영화. 영화는 1803년 중국을 향해 ‘잠자는 사자를 깨우지 마라. 사자가 깨어나면 세계가 흔들린다’고 말한 나폴레옹의 유명한 문구로 시작한다. 뉴욕대학교 최연소 교수인 이민자 2세 레이첼 추(콘스탄스 우)는 연인 닉 영(헨리 골딩)의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의 집이 있는 싱가포르로 간다. 그러나 싱가포르 최고 재벌의 아들이자 외모와 성격 모두 갖춘 닉을 차지한 그녀에게 사교계 명사들의 질투와, 닉의 엄마 엘레노어(양자경)의 ‘지능적이고 세련된’ 공격이 펼쳐진다. 남친의 재력을 알게 된 순간, 활짝 열린 시월드는 그녀의 사랑과 정체성 모두를 위협한다. 이 영화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살아 숨쉬는 아시안 캐릭터로 100%를 채웠다. 지금까지 할리우드 상업 영화 속 아시안은 ‘찐따’ 공학 천재나 무술 유단자, 루저 같은 조연이었다. 그러나 1993년 ‘조이 럭 클럽’ 이후 25년 만에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동양인들만 캐스팅해 만든 이 영화에서 주연은 100% 아시안이다. 백인들은 슈퍼 리치도 아닌,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받쳐 주는 호텔 직원, 주차 요원, 파티 피플로만 등장한다. 주연인 아시안들은 바다 한가운데 대형 화물선을 띄우고 섬 하나를 통째 빌려 초호화 파티를 연다. 극중 2000억 원대인 닉 할머니의 저택과 400억 원대 결혼식 모두 시선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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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 영화는 속도감이 넘친다. 주인공들은 빛보다 빠른 모바일 네트워크와 SNS로 소통하는 현 세대 트렌드를 보여 준다. 존 추 감독 자체가 탭 댄스, 힙합, 브레이크 등 다양한 장르의 댄스는 물론 피아노, 색소폰 등 악기까지 두루 섭렵한 전문가. 그만큼 음악과 영상을 속도감 있게 잘 버무렸고, 시시각각 변하는 장소가 스타일리시한 폰트 플레이와 만나 지루함을 없앤다. 셋째, 재력과 만난 싱가포르의 경관, 음식 등이 끊임없이 시각을 사로잡는다. 밤에만 핀다는 꽃 월하미인, 세계 최대 인공 정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마리나 베이 등 화려하다는 말로 부족할 싱가포르의 랜드마크, 유일하게 스트리트 푸드로 미슐랭 가이드에 오른 싱가포르의 음식은 당장 여행가고 싶게 만든다. 출간 즉시 150만 부가 팔려 나간 원작을 쓴 작가 케빈 콴 역시 싱가포르 출신 이민자. 다수의 은행가와 의사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주인공 닉 영과 같은 명문 사립 학교를 다녔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제된 원작의 서사가 ‘스텝업’ 2, 3, 4편과 ‘지.아이.조 2’, ‘나우 유 씨 미’ 시리즈까지 다양한 상업 영화를 선보인 존 추 감독의 스타일과 만나 잠재력을 폭발시킨 것. 재벌과 신데렐라의 러브 스토리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 영화가 유쾌한 이유는 감독의 말처럼 아시안 아메리칸 여성으로서 자아를 인정하고 화합해 가는 과정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깨달았어요. 내가 결코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레이첼 추) 아시안이 들러리를 서는 무력한 느낌을 주지 않는 대신, 허무맹랑하지만도 않아서 묘한 몰입감을 주는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제작비의 8배가 넘는 돈을 벌어들여 이미 속편 제작도 예약됐다.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영화다.

[글 최재민 사진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3호 (18.11.1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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