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물 절약' 기여한 유니레버, '아프리카 농가' 살린 사브밀러

오상헌 기자,송상현 기자,박동해 기자 입력 2018. 11. 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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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기업, 세상을 바꾼다②] '사회적 가치' 좇는 글로벌 기업들
물절약 세제·카사바 맥주, 비즈니스·사회기여 두마리 토끼

[편집자주] 10년 전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인류 경제사의 대전환점이었다. 월가는 '아큐파이(Occupy)'를 외친 시위대에 점령됐고, '신(新)자유주의'는 파산을 고했다. 기업도 큰 위기를 맞았다. 돈벌이에 매몰돼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환경 문제를 방관한 원흉으로 지목됐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4.0' 시대가 열린 배경이다. 기업이 경제적 가치(이윤)만 좇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사회적 가치'가 화두다. 본업을 통해 기후변화·빈곤·환경오염·양극화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내외 기업들의 노력들을 짚어본다.

(서울=뉴스1) 오상헌 기자,송상현 기자,박동해 기자 = 영국과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다국적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Unilever)는 2006년 물 절약형 헹굼 세제인 '콤포트 원 린스(Comfort One Rinse)'를 개발해 이듬해 베트남에 출시했다. 기존 섬유유연제는 세탁물을 헹구는 데 '세 양동이'의 물이 필요했지만 '한 양동이'만으로도 족한 혁신 제품이었다.

폴 폴먼 유니레버 CEO가 지난 9월7일 오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의 CEO 조찬 포럼에서 '사회적 가치'와 관련한 강연을 하고 있다. © News1

◇'물 절약 세제' 동남아 석권, 베트남 물 부족 해결 기여

베트남은 남북으로 메콩강이 길게 가로지르고 국토 대부분이 바다와 맞닿아 있다. 그런데도 사용 가능한 물이 많지 않아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된다. 지하수에 중금속이 적지 않고 하수처리 시설이 부족해서다. 오염된 물이 강으로 흘러드는 등 수질 오염이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다.

유니레버는 당시 동남아시아 생활용품 시장에서 전통적인 라이벌인 P&G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경쟁사를 압도할 신제품이 절실하던 차에 물 부족 국가인 베트남의 사회적 문제에서 단초를 찾았다. '콤포트 원 린스' 출시에 맞춰 베트남 소비자의 물 낭비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공익 마케팅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유니레버는 2016년 기준 베트남 헹굼 세제 시장의 40%를 점유하는 1위 기업이다. 인도와 태국,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인근 국가로 신제품 판매를 확대해 이 지역에서도 시장점유율 1위로 우뚝 섰다. 경제적 측면의 동기(P&G와 경쟁 우위)에 사회적 가치(물 부족 해결)가 포개져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된 것이다.

◇'카사바 맥주'로 아프리카 시장 40% 점유, 사라진 '불량 밀주'

영국의 사브밀러(SABMiller)가 2011년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출시한 맥주 '임팔라'(Impala)도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비즈니스 혁신 사례다. 2016년 10월 세계 최대 맥주회사인 안호이저-부시인베브(AB인베브)와 합병하기 전까지 사브밀러는 글로벌 맥주업계 2위 기업이었다. 하지만 선진국의 맥주 소비 감소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대체 시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거대 주류시장으로 떠오른 아프리카 진출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장애가 많았다. 당시 모잠비크 정부는 맥주 생산을 금지하고 수입 맥주에 40%의 높은 세금을 물렸다. 불량 밀주 제조로 사망 사건도 빈발했다. 사브밀러가 찾은 해법은 주원료인 보리가 아닌 카사바로 맥주를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였다. 고구마와 유사한 열대 구황작물인 카사바는 모잠비크 제1 농산물이다.

사브밀러는 모잠비크 정부를 설득해 맥주 세금을 40%에서 10%로 낮추고 저렴한 가격의 '임팔라'를 출시했다. 그러자 모잠비크의 카사바 생산량은 헥타르(Ha)당 0.5t에서 20t으로 늘어났다. 7만개가 넘는 일자리도 만들어졌다. 세수가 늘고 농가 소득도 연 1000달러 가량 늘어났다. 맥주가 대중화하면서 '불량 밀주'에 따른 사회 문제도 줄었다. 사브밀러의 아프리카 시장 점유율은 40%로 뛰었다. 전체 매출 중 3분의 1이 아프리카에서 발생했다. '경제적 가치'(수익성)와 '사회적 가치'(공익성)가 함께 창출된 것이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CSR→CSV' 시대로…주목받는 사회가치추구형 혁신기업

유니레버와 사브밀러의 성공 경험은 21세기형 기업의 경영 모델로 꼽히는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CSV)과 사회가치추구형 혁신기업의 실사례로 꼽힌다. 전통적 영리기업은 기업 본연의 활동으로 수익을 많이 내고 일자리를 만드는 게 사회에 가장 기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수익성이 최고의 가치인 셈이다.

사회가치추구형 기업은 수익성과 공유가치를 '등가(等價)'로 둔다. 영리기업이 직접 일군 부의 일부를 사회에 떼어 주는 일방형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힘을 쏟는 반면, 사회가치추구형 기업은 CSV를 추구한다.

이런 변화는 기업을 둘러싼 경영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점과 관련이 깊다. 기업의 직접 이해당사자는 투자자(Investor), 임직원(Employee) 협력사(Partner), 고객(Customer) 등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초연결사회와 4차 산업혁명으로 시장의 투명성이 확대되면서 일반 대중(Mass)과 사회(Society)가 기업의 중요한 이해관계자이자 비시장적 위험요인으로 부상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19일 제주 디아넥스호텔에서 'New SK를 위한 딥 체인지 실행력 강화'를 주제로 열린 '2018 CEO세미나'에서 사회적 가치 추구를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는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News1

◇"'환경·보건·인권·불평등…전인류적 문제에 기업이 나서라"

국내에서도 빈발하는 '갑질 사건' 등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기업 소유주가 사회문제 해결은커녕 문제를 일으키거나 지탄을 받는 기업은 지속 성장은 물론 생존 자체를 담보받기 어렵다. 글로벌 기업들이 정부가 해결하지 못 하는 사회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비즈니스 혁신을 고민하는 배경이다.

지난 달 방한했던 폴 폴먼(Paul Polman) 유니레버 최고경영자(CEO)는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CEO 조찬포럼에서 "기업은 주주만이 아니라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전세계 자본 80%의 흐름을 주도하고 총생산의 60%를 담당하는 기업이 환경, 교육, 보건, 여성 인권, 부의 극심한 불평등 등의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공유가치 창출을 기업 경영의 전면에 내세운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충돌할 때 기업의 이익보다 사회적 기여를 더 우선시하라고 말한다. '이타적 경영'으로 기업 수익성에 단기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더라도 끊임없는 혁신으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면 종국에는 경제적 가치를 함께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bborir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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