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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모독’ 기독교 여성에 파키스탄 대법 무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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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모독’ 기독교 여성에 파키스탄 대법 무죄 선고

입력
2018.10.31 21:38
수정
2018.11.01 00:4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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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법관에 죽음을” 시위

파키스탄 대법원의 판결에 항의하는 보수 무슬림 시위대가 10월 31일 라호르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이슬라마바드=EPA 연합뉴스
파키스탄 대법원의 판결에 항의하는 보수 무슬림 시위대가 10월 31일 라호르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이슬라마바드=EPA 연합뉴스

파키스탄 대법원이 이슬람교 신성모독죄로 한때 사형이 선고된 바 있는 기독교도 여성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에 보수파 무슬림들이 법관의 죽음까지 거론하며 주요 도심을 점거하고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파키스탄 대법원은 10월 31일(현지시간) 말싸움 도중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욕했다는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바 있는 기독교도 아시아 비비에게 최종 무죄 판결을 내리고 그를 석방토록 했다. 비비 사건은 국제 사회가 가혹한 파키스탄 신성모독법을 조명하는 계기가 된 사건으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도 파키스탄 정부에 그의 석방을 요구한 바 있다.

비비는 2009년 마을 무슬림 여성들과 다투다가 무함마드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했다. 고발의 근거는 비비의 자백이었만 이는 그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는 군중 앞에서 내놓은 자백이라, 대법원은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봤다. 판결문은 역설적이게도 “비무슬림을 친절히 대하라”는 무함마드의 발언록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AFP통신에 따르면 비비는 판결 당시 재판정에 없었으며, 뒤늦게 무죄 판결 소식을 접하고 “믿을 수 없다. 내가 이제 나갈 수 있다고? 정말 그들이 나를 보내주느냐?”고 되물었다.

대법원 판결에 국제 인권 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표시했지만 파키스탄 내 극보수 성향 이슬람교도들은 분노를 표명했다. 이슬람 강경파 소수정당인 테리크-이-라바이크(TLP)는 급기야 판결을 내린 대법관의 죽음과 임란 칸 총리 정부의 퇴진을 요구했다. TLP는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대법원 청사 인근을 비롯해 카라치, 라호르 등 주요 도시에서 거리를 막고 판결을 비판하는 시위를 주도했다.

◇신성모독죄 악용에 자경단 활동까지

파키스탄의 신성모독죄는 식민지 시대에 제정됐고, 1980년대 군부 독재자 무함마드 지아울하크가 제정한 조항 때문에 한층 더 가혹해졌다.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욕하면 사형, 꾸란을 모독하면 종신형 등의 조항은 이 때 추가됐다. 비판자들은 비비 사례처럼 사적인 보복을 위해 미약한 근거를 내세워 신성 모독을 고발하는 사건이 잦다고 지적한다. 2018년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대략 40명이 신성모독 혐의로 사형을 기다리고 있거나 종신형으로 복역 중이다.

신성모독죄를 개선하려는 시도는 TLP를 비롯한 보수 무슬림 ‘자경단’의 공격을 받아 왔다. 비비를 옹호하며 2011년 신성모독법 개혁을 추진한 살만 타시르 펀자브주지사를 살해한 뭄타즈 카드리는 2016년 처형됐지만, TLP는 그를 영웅으로 취급하는 시위를 정기적으로 벌였다. 무죄 방면된 비비 또한 신변의 위협 때문에 조만간 파키스탄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무슬림 세력의 영향력은 기성 정당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과거 집권당인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는 극단적 무슬림의 준동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신성모독죄 존속을 지지해 총선에서 보수 무슬림계의 지지를 얻은 바 있는 임란 칸 현 총리에게도 이번 사건은 정치적 시험대로 작용할 전망이다.

칸 총리는 이날 방송 담화에서 극단주의 세력을 겨냥해 “그들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폭력을 선동하고 있으며 이슬람교를 위해 봉사하지도 않는다”고 비판하며, 시민들의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2010년 사형 판결을 받은 파키스탄인 기독교 여성 아시아 비비가 감옥 관리들의 설명을 들으며 앉아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0년 사형 판결을 받은 파키스탄인 기독교 여성 아시아 비비가 감옥 관리들의 설명을 들으며 앉아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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