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독립운동가' 의병장 조경환 선생

2018. 10. 31. 08:4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구한말 의병장으로 활약한 조경환(1876.2~1909.1) 선생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1876년 광주에서 출생한 선생은 일제의 침략이 자행되던 시기에 전국을 순회하면서 현실을 두루 살피고 고향으로 돌아와 서당을 차려 후학을 육성했다.

1907년 호남지방에서 기삼연과 김준 등이 고창읍성을 점령하는 등 맹활약을 떨치자 선생은 그해 12월 중순 김준 의진(義陣)에 합류해 좌익장으로 활동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1월의 독립운동가' 의병장 조경환 선생 [국가보훈처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구한말 의병장으로 활약한 조경환(1876.2~1909.1) 선생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1876년 광주에서 출생한 선생은 일제의 침략이 자행되던 시기에 전국을 순회하면서 현실을 두루 살피고 고향으로 돌아와 서당을 차려 후학을 육성했다.

1906년 태인에서 을사늑약에 반발해 최익현과 임병찬 등 '순창 12의사'가 의병을 일으켰으나 서울로 압송되고 최익현은 대마도에서 순국했다. 1907년 호남지방에서 기삼연과 김준 등이 고창읍성을 점령하는 등 맹활약을 떨치자 선생은 그해 12월 중순 김준 의진(義陣)에 합류해 좌익장으로 활동했다.

함평읍, 창평 무동촌, 장성 낭월산, 영광 월암산, 광주 어등산(魚登山) 등 수많은 전투에서 선봉장으로 나섰다.

1908년 어등산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의병장 김준이 순국한 상황에서 일본군이 추격해오자 함평 당산촌 나평집(羅平集)으로 후퇴했다. 일본군의 진압작전이 종료되고 감시망이 느슨해지자 흩어진 의병들을 다시 모아 전열을 정비했다.

전북 이석용 의진에서 활동하던 전수용과 연합해 200여 명 규모로 의진을 재편하고 의병장이 됐다. 일본제 30년식 보병총과 기병총 4정, 한병총(韓兵銃) 12정, 천보포(千步砲) 8문, 개조 화승총 약 60정 등의 열악한 무기로 일본 군경과 맞서 싸웠다.

1909년 1월 조경환 의진은 야마다 소위가 이끄는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20명이 전사하고 10명이 붙잡혔다. 선생은 총탄을 맞고서도 부하들의 명단을 불사르고 순국했다.

정부는 1963년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threek@yna.co.kr

☞ 성폭행 가해자 무죄 받자 피해부부 목숨 끊어 증명
☞ "통행료 안 내면 못 다녀" 쇠말뚝 박아 방해한 남매들
☞ 셀카에 목숨 건 커플이었나…유명 절벽서 2명 추락사
☞ 전설적 갱두목의 비참한 최후…"종신형 감옥서 피살"
☞ 양회장, 전 직원 대놓고 폭행…"영상 찍고 소장"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