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여행자는 느는데 여행사는 왜 망할까
해고 사태와 인수합병 진행중
근본적인 패인은 상상력 부족
단골을 부르는 상상력 절실해
주변 사람들에게 여행을 권할 때 던지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조언이다. 그런데 사실이다. 여행은 인간이 만들어 낸 행위 중에서 가장 큰 만족을 주는 이벤트다. 낯선 것에 대한 설렘과 잠깐의 일탈이 주는 해방감은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든 기쁨이다. 여기에 맛난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 멋진 풍경이 더해진다. 행복의 모든 요소를 갖춘 셈이니 계절마다 해외여행을 즐기는 여행 중독자가 생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런 즐거움 덕분에 국내외를 여행하는 사람의 수는 해마다 늘어만 간다.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여행업은 승승장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국내 여행업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30년 넘게 항공권 판매 분야에서 독보적 지위를 누려왔던 탑항공이 이달 초 경영악화를 이유로 문을 닫았고, 몇몇 중소여행사도 폐업절차를 밟았다. 최근 신문지면을 장식한 여행사들은 내국인을 외국으로 보내는 ‘아웃바운드’ 회사였지만, 외국인을 유치하는 ‘인바운드’ 여행업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적인 이유로 발길을 끊었던 중국인들은 이제야 겨우 슬슬 한국행 비행기를 탈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다.
한때 한류 덕분에 물밀 듯 밀려들어 명동과 청담동 일대를 누비던 일본 아줌마들도 이제 거리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 수요 예측을 잘못한 면세점과 신축 호텔, 대형 식당들은 예상외의 적자로 울상을 짓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목 놓아 외치는데 여행사에서는 권고사직과 해고, 인수합병이 진행 중이다. 상장여행사의 주가는 이미 반 토막이 났다. 이상한 일이다. 여행자는 늘어만 가는데, 여행사는 망하고 업계는 초비상이다.
필리핀 보라카이나 태국 피피 섬처럼 관광지 전체를 전면 폐쇄 후 옛날 모습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을 꿈꾸어 본 지자체는 한국에 과연 있을까. 왜 여행사는 1990년에 39만원에 팔던 방콕 빳따야 여행을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가격에 팔고 있을까. 홈쇼핑을 통한 가격경쟁 외에 무엇을 더 고민한 적이 있나. 왜 해외여행 상품을 고르는 소비자는 짧은 시간 동안 되도록 많은 나라를 보고 싶어 하는 걸까, 또 여행 일정표나 자유 시간의 유무보다는 땡처리 초특가와 같은 저가 덤핑여행을 더 선호하는 걸까.
상상력은 여유로움에서 나온다. 우리는 너무 급하다. 빨리 돈을 벌지 않으면 망할 것만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번 여름 한 철 벌어놓지 않으면 굶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바가지를 씌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동네가 조금 알려져 관광객이 찾아온다 싶으면 이내 가격을 올리고 서비스의 질은 손님의 수와 반비례해 곤두박질친다. 다시 또 오고 싶은 곳으로 기억을 남겨주는 것이 아니라 “제발 다시는 오지 마세요”라 소리치는 격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이렇게 태어나자마자 죽어간다.
해마다 휴가철과 명절 때면 언론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인천공항 출국자 사상 최대, 관광수지 십수 년째 적자’라는 보도에 달린 “제주도 갈 돈이면 동남아 가서 맘 편하게 놀고 온다”는 댓글은 그냥 읽고 넘어가기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몇 해 전 일본 규슈 여행을 갔다가 들른 산속 어느 사찰, 마루 위에서 누구나 마실 수 있도록 마련해놓은 따끈한 녹차를 만났다. 목이 마르던 차에 고맙게 마시고 마침 지나가던 스님에게 물었다.
“왜 돈을 안 받으시는 겁니까.”
“이 먼 곳까지 와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상상력은 아주 작은 마음 씀씀이에서도 나온다. 우리 지역과 우리 여행사를 찾아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과 진정성, 그것을 바탕으로 갖추지 않으면 어떤 대책도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다. 관광 대국으로서 대한민국도,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는 여행사들도 ‘단골’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행업계에서는 이를 리피터(Repeater)라 부른다. 단골을 부르는 상상력, 과외라도 받아야 할 판이다.
이상호 참좋은여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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