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MD의 식탁] 소고기 씹는 맛이 나는 제주 '고사리 육개장'

김진영 입력 2018. 10. 2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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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소고기·닭고기·고사리 '육개장'

[오마이뉴스 김진영 기자]

한림항 새벽 경매와 감귤을 보기 위해 제주를 찾았다. 오후 1시 2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지만 성수기가 끝나지 않은 제주행 비행기는 연착이 다반사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출발한 시각이 오후 3시. 원래 일정은 차를 빌린 뒤 서귀포로 이동해 석양 지는 감귤밭을 찍을 생각이었지만, 비행기 연착으로 모든 게 꼬였다.

한림항 근처에 숙소를 잡고 소고기 육개장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제주도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표 축산물은 흑돼지다. 한라산을 우회하거나 살짝 관통하는 도로를 이용하면 가끔 조용히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볼 수 있다. 제주에도 분명히 한우를 키우고 있지만, 여행객들은 제주까지 가서 소고기 먹을 생각은 잘 안 한다.

4월과 5월에 내리는 '고사리 장마'
 
 봄철에 채취한 고사리를 잘 말렸다가 돼지 뼈를 우린 육수에 메밀가루를 넣고 길게 찢은 고사리를 넣어 걸쭉하게 끓여 낸 것이 고사리 육개장이다.
ⓒ 김진영
 
지난해 6월 현재(통계청 기준), 제주에서는 3만1417두의 한우를 키우고 있다. 전국에서 한우를 가장 많이 사육하는 경상북도(57만125두)에 비하면 적은 숫자이지만, 대신 넓은 초지에서 건강한 소를 기른다. 서귀포시에 고기와 뭇국이 맛있는 식당이 생각났지만, 혼자 먹는 저녁이라 소고기를 굽기는 뭐해서 대신 육개장을 선택했다.

새빨간 국물을 보자, 꼬인 일정으로 답답했던 마음이 이내 풀리며 입맛이 돌았다. 결 따라 찢지 않고 씹기 좋게 썬 고기, 푹 익은 대파, 고사리가 섭섭하지 않게 담겨 있다. 밥을 말고 국물이 스며들기를 기다린 다음 먹기 시작했다. 얼큰한 국물에 야들야들한 대파, 고사리와 먹는 맛이 괜찮다. 먹을 거 많은 제주이지만 제대로 끓인 육개장도 있어 한층 맛난 출장이 된다.

소고기 육개장을 먹다 보니 일전에 먹었던 고사리 육개장이 생각났다. 제주는 4월과 5월 사이에 비가 자주 온다. 덕분에 우중(雨中) 출장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4월과 5월 사이의 잦은 비를 '고사리 장마'라고 부른다. 겨우내 건조한 날씨에 숨죽이고 있던 고사리가 잦은 비에 싹을 틔우고 하늘을 향해 줄기를 늘이기 때문에 생긴 별칭이다.

봄철에 채취한 고사리를 잘 말렸다가 돼지 뼈를 우린 육수에 메밀가루를 넣고 길게 찢은 고사리를 넣어 걸쭉하게 끓여 낸 것이 고사리 육개장이다. 고춧가루, 얇게 썬 청양고추로 취향껏 매운 맛을 가미하면 된다. 고사리 육개장을 먹다보면 잘 삶아 잘게 찢은 양지를 씹고 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은 오히려 양지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 5시, 한림항 경매장의 풍경
 
 새벽 5시, 한림항으로 나갔다. 경매장에는 가격 매겨지기를 기다리는 상자들이 빼곡하다.
ⓒ 김진영
 
다음 날 새벽 5시, 한림항으로 나갔다. 경매장에는 가격 매겨지기를 기다리는 상자들이 빼곡하다. 경매장 옆 부둣가는 경매하러 온 배들이 한두 척 들어오고, 한편에서는 그물에서 서둘러 고기를 떼고 있었다. 나무 상자에 담긴 생선을 본다. 옥돔, 붉은 메기(흔히 은대구로 부르는 생선), 참조기, 전갱이, 갈치 등 익숙한 생선과 성인 남자 종아리 굵기의 붕장어, 예전에는 많이 잡혔지만 지금은 보기 힘든 부채새우가 눈길을 끈다. 

한쪽에서는 경매하고, 경매가 끝난 상자는 주인 찾아 떠나는 시끌벅적한 경매장을 나와 아침을 해결하러 갔다. 한림시장의 순댓국, 시장 끄트머리의 선술집 해장국 등 몇 군데를 생각하다가 일전에 맛있게 먹었던 웅포 사거리의 닭개장 집으로 향했다. 

몇 년 전, 제주 재래닭을 유통하는 지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왜 제주에는 혼자 먹을 수 있는 닭 요리가 없느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조천면 교래리 토종닭 특구나 중산간 도로 옆의 코스 요리만 있을 뿐, 뭍에 있는 닭개장 같이 혼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다고 불평했다.

시간이 흐른 뒤, 한림 웅포에 조천·한림면의 농장에서 키운 닭으로 끓인 닭개장 식당을 열었다. 뭍에서 파는 닭개장의 닭은 대부분 알을 더는 못 낳는 폐계로 끓이는 탓에 고기를 씹으면 잡내가 나지만, 이 곳의 닭고기는 깔끔한 맛이다. 

반찬으로 나오는 계란 프라이는 동물복지 유정란이라 노른자가 고소하다.  혼자 다니는 출장에서는 대부분 국밥 같은 뚝배기에 담긴 음식을 주로 먹는다. 겨울에는 각재기국(전갱이국), 봄철에는 멜국, 한여름에는 옥돔국이나 물회. 가끔 해장국이나 고기국수를 먹었는데, 여기에 닭개장이라는 선택지 하나가 늘었다. 

한림 웅포에 새로 생긴 '닭개장' 집
 
 제주 한림 웅포에 조천·한림면의 농장에서 키운 닭으로 끓인 닭개장 식당을 열었다. 뭍에서 파는 닭개장의 닭은 대부분 알을 더는 못 낳는 폐계로 끓이는 탓에 고기를 씹으면 잡내가 나지만, 이 곳의 닭고기는 깔끔한 맛이다.
ⓒ 김진영
서귀포에서 감귤 농장을 둘러보고 올레시장으로 갔다. 가을이 깊어지면 제주 바다에 흰꼴뚜기(일명 무늬오징어)가 난다. 다른 어떤 오징어보다 맛과 식감이 뛰어난 어종이다. 큰 녀석은 2kg까지 나가는 대형 종으로 가을부터 봄까지 제주 바다를 비롯해 동해와 남해에서 잡힌다. 올레시장 회 떠주는 골목에서 파는데 발걸음이 늦었는지 이미 아침에 나온 건 다 팔리고 없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끝물 한치를 조금 샀다. 손질하지 않고 머리와 몸통 사이에 신경만 끓어 달라고 했다. 다 손질한 한치보다는 신경만 끊은 한치라야 다음날까지 생생해 횟감으로 좋다. 제주에 출장 가면 손에 들고 오는 것이 귀찮아 잘 사지 않지만, 싱싱한 한치나 흰꼴두기는 쉽게 만나기 어려워 장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귀찮음을 참고 사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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