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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겸손은 여섯번째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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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겸손은 여섯번째 성격이다

2018.10.21 10:00

1980년대 심리학자 폴 코스타와 로버트 매크래는 기존에 있던 다양한 성격 검사의 항목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비슷한 것끼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따뜻함이나 친절함, 원만함 등은 약간씩 맥락이 다른 단어입니다. 하지만 사실상 비슷한 개념이죠. 친절하지만 원만하지 않거나, 따뜻하면서 불친절한 사람은 있기 어렵습니다. 이런 식으로 모은 결과를 정리해서 인간의 성격은 단 다섯 가지의 요인의 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빅파이브 성격 모델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성격의 요인

 

인간의 성격은 아주 다양합니다. 1936년 올포트와 오드버트의 연구에 의하면, 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분해주는 행동 특징을 지칭하는 단어가 약 18,000개 있다고 합니다. 1925년판 웹스터 사전에서 찾아낸 것이죠. 이중에서 좋고 나쁨을 뜻하는 단어를 모두 제거해도 4,500개가 남습니다. 즉 일반적인 성격 경향을 뜻하는 말이 무려 4,500개입니다.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이렇게 해서야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것 밖에는 안됩니다. 그래서 수많은 성격에 어떤 경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의문은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정서, 행동의 특정한 경향을 찾아 범주를 지어보려는 시도는 그 역사가 아주 깊습니다. 


기원전 400년경에 살았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이른바 4원소설을 주장했습니다. 우주는 흙, 공기, 물, 불이라는 네 가지 원소로 구성되었다는 것이죠. 히포크라테스는 그의 주장을 이어받아, 인간의 몸도 4체액에 의해 좌우된다고 하였습니다. 혈액, 답즙, 점액, 흑담즙의 네 가지 체액이 건강과 질병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원후 2세기경 로마의 의사였던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는 이 이론을 정리해서, 이후 르네상스 시절 이전까지 가장 지배적인 의학 이론으로 군림했습니다. 


그런데 네 가지 체액은 우리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결정한다고 믿었습니다. 혈액이 많으면 다혈질적인 성격, 흑담즙이 많으면 우울한 성격, 점액이 많으면 느긋한 성격, 담즙이 많으면 불안정한 성격과 같은 식입니다. 우울증을 뜻하는 멜랑콜리아(melancholia)라는 단어 자체가, 검은색을 뜻하는 그리스어 멜라이나(melaena)와 담즙을 뜻하는 콜레(chole)를 합친 말입니다. 만약 4체액설이 옳다면, 모든 사람의 성격은 네 가지 체액의 부족 혹은 과잉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 카스파 라바터는 18세기 무렵 독일의 관상가였다. 그는 자신의 책, <Physiognomische Fragmente zur Beförderung der Menschenkenntnis und Menschenliebe>에서 인간의 성격과 외양의 관련성을 주장했다. 4체액설에 입각하여, 네 가지 기본 성격 및 관련된 얼굴 형태를 제시했다. - 위키미디어 제공
요한 카스파 라바터는 18세기 무렵 독일의 관상가였다. 그는 자신의 책, 에서 인간의 성격과 외양의 관련성을 주장했다. 4체액설에 입각하여, 네 가지 기본 성격 및 관련된 얼굴 형태를 제시했다. - 위키미디어 제공

다섯 가지 성격

 

의학이 발전하면서 과학적 근거가 없는 4체액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성격은 몇 가지 부류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빅파이브 모델이 등장했죠. 다른 모델도 등장했습니다. 캐서린 브릭스와 이사벨 마이어스는 이른바 마이어스-브릭스 성격 검사를 제시했는데, 흔히 'MBTI'로 알려져 있죠. 16개의 범주로 나누는 모델입니다. 


독특한 성격, 즉 인격 장애에 관해서는 보다 복잡한 모델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무려 18개나 22개의 요인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반대로 단 하나 혹은 두 개의 요인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아직은 지배적인 가설이 없는 형편이죠. 


지금까지 제안된 주장 중 가장 유력한 주장이 바로 빅파이브 모델입니다. 즉 개인의 성격은 외향성, 순응성, 성실성, 신경성, 개방성이라는 다섯 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다섯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각각의 요인의 상대적인 값의 조합으로, 각자의 개성적인 성격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여섯 번째 성격, 겸손

 

하지만 과연 단 다섯 개의 요인이 전부인지 궁금했습니다. 특히 이는 서구 문화권의 자료를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다른 문화에서는 다를 수도 있다는 의문이 들었죠. 그래서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의 마이클 애쉬톤과 성균관 대학교의 한덕웅, 이기범 선생님은 한국 학생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고, 이에 대한 요인 분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기존의 빅파이브 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여섯 번째 요인이 드러난 것입니다. 바로 정직 혹은 겸손입니다. 


정직과 겸손은 조금 다른 개념이 아니냐고 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다른 단어입니다만, 성격에 대해서 논할 때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정직하면서 젠체하는 사람이나, 위선적이면서 겸손한 사람은 있기 어렵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요즘 정직이라는 단어가, 법적인 의미에서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고 있어서, 겸손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교만과 탐욕이 넘치면서도, ‘난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정직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아무튼 겸손성이란 가식을 싫어하고 공정을 추구하며 사치와 향락을 꺼리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을 말합니다. 만약 겸손성이 낮다면, 부귀와 명성을 바라고 특권을 요구하며 이익을 위해 거짓을 일삼고 타인을 착취하는 성격이겠죠. 물론 너무 극단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전적으로 겸손하거나, 전적으로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양극단의 중간 어딘가에 서 있습니다. 

 

겸손은 인간의 성격을 나타내는 여섯 번째 본질이다. 신 앞에서의 겸손, 자연 앞에서의 겸손, 타인 앞에서의 겸손 등 겸손의 덕목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본성을 구성한다. - 픽사베이 제공
겸손은 인간의 성격을 나타내는 여섯 번째 본질이다. 신 앞에서의 겸손, 자연 앞에서의 겸손, 타인 앞에서의 겸손 등 겸손의 덕목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본성을 구성한다. - 픽사베이 제공

 

너무 겸손해진 겸손의 미덕

 

오랫동안 겸손의 미덕은 동아시아 문화에서 아주 높게 대우받았습니다. 물론 겸손의 가치에 동서양이 달리 있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인 중요성은 제법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동아시아 사회에는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겸양과 존대의 어법도 생겨났고, 다양하고 복잡한 예의범절도 생겨났습니다. 남들 앞에서는 일단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 가치로 간주됩니다. 아니 전에는 그렇게 간주되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신속하고 명확한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거래처 파트너 앞에서 ‘저같이 천학비재한 소인이 귀공의 큰 일을 감히 받을 수 없사오니……’라는 식이라면 곤란합니다. 확실한 의사 소통이 필요한 경우라면, 전통 사회의 과도한 예의와 지나친 겸양은 부적절합니다. 동아시아 사회는 지난 수십년 간 빠른 산업화를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전통 사회가 가지고 있던 과도한 겸손의 덕목은 많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겸손의 미덕이 너무 ‘겸손’해져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부와 명예에 초연하며, 겸손하고 정진하게, 청렴결백하게 사는 사람을 존경했습니다. 최소한 겉으로는 말이죠.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모두들 타인에게만 겸손을 요구하고, 스스로는 특권을 내세웁니다. 겸손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은 왠지 바보같은 삶 같습니다. 서로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기 원하고, 남을 업신여기길 좋아합니다. 위도 아래도 없는 세상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그런데 겸손의 덕목은 자체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어서, 장려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겸손 자체가 칭찬과 존경을 피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SNS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라며는 포스팅을 매일 SNS에 올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들은 우리는 겸손하고 정직한 사람을 칭찬하고, 존경합니다. 그래서 신문에도 싣고, 큰 상도 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막상 겸손하고 정직한 사람은 나서지 않습니다. 사양합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겸손한 척 하지만 실제로는 ‘안 겸손’한 사람이 이러한 사회적 보상을 날름 받아갑니다. 


이들은 원래 처음부터 그런 성격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겸손한 사람이요!’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겸손할 리 없죠. 그래서 겸손의 반대인 교만에 비해서, 도무지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만약 주변에서 정말 겸손하고 정직한 사람을 만나서 반가운 마음이 든다면, 뒤에서 은밀하고 꾸준하게 도와주십시오. 본인도 전혀 모르게 말이죠. 허세와 교만으로 기울어진 세상의 균형을 다시 잡으려면, 구석에 숨어있는 겸손의 씨앗이 싹 트게 해주어야 합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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