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졸라의 ‘누에보 탱고’, ‘재즈 탱고’로 진화시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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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피아니스트 거장 파블로 지글러

파블로 지글러 제공
파블로 지글러 제공

“마에스트로, 당신이 허락한다면 즉흥연주를 해도 될까요?”

아버지뻘 거장 작곡가의 방에 놓인 피아노에 앉은 청년. 그가 긴장을 무릅쓰고 던진 첫 질문이다.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2)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지. 당신이 하고픈 대로. (내 음악을) 마음껏 변형해도 좋아.”

고전 탱고 음악을 쇄신한 ‘누에보 탱고’(새로운 탱고)가 ‘재즈 탱고’로 또 한 번 진화한 역사적 순간이다. 최근 강원 춘천시에서 만난 음악가 파블로 지글러(74·사진)는 40년 전 일을 어제처럼 기억했다. 그는 피아졸라 사후 누에보 탱고의 적통을 이은 또 다른 거장이다. 피아졸라는 누에보 탱고로 20세기 클래식과 월드뮤직에 깊은 족적을 남긴 아르헨티나 거장이다. 지글러는 14일 경기 가평군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에서 자신의 트리오와 열정적인 탱고 재즈를 선보였다.

“탱고의 영혼은 곧 포르테뇨(항구 사람)들의 영혼이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람들 말이에요. 아직도 연주할 때면 어린 시절 느낀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의 분주함과 음식 냄새, 그리고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지글러의 아버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유명한 탱고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어린 지글러를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훈련시켰다. 15세 때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 ‘웨더 리포트’ ‘리턴 투 포에버’ 같은 미국의 재즈록에 빠져들면서 지글러는 재즈로 전향했고 이내 주목받는 연주자가 됐다.

“그 무렵 피아졸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죠. ‘우리 집에 와서 얘기 좀 할 수 있겠나.’ 피아졸라의 집은 우리 집에서 불과 두 블록 떨어진 곳이더군요.”

탱고에 기반했지만 클래식 작법을 고수하던 피아졸라는 지글러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었다. 지글러의 자유로운 즉흥연주에 고무돼 자신도 반도네온으로 자유 즉흥연주를 시작한 것이다. 피아졸라의 퀸텟에 지글러가 가입한 1978년부터 건강 문제로 은퇴한 1989년까지 11년간은 피아졸라 음악세계에서도 가장 뜨거운 실험의 용광로가 타오른 시간이었다.

1990년대 초, 피아졸라 사후 지글러는 자신의 그룹으로 새로운 작품을 실험했다. 피아졸라의 명곡들을 재해석하는 작업도 꾸준히 해왔다. 지난해 낸 ‘Jazz Tango’ 앨범은 올해 그래미 어워즈 ‘최우수 라틴 재즈 앨범’상을 수상했다. 올해 첫 피아노 솔로 앨범도 냈다.

피아졸라는 지금도 지글러의 음악 속에 생존해 진화하고 있다.

“마에스트로가 제게 남긴 교훈은 이것입니다. ‘친구, 마음을 오직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쏟게나. 언제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친구들과 삶을 생각하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파블로 지글러#재즈피아니스트#재즈 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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