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디젤차의 고향’ 독일, 노후 디젤차와 이별 진행 중

베를린(독일) | 김기범 기자

“현재 독일 대기오염의 주요 원인이 경유차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미세먼지의 전구물질(어떤 물질이 합성될 때 재료가 되는 물질)인 이산화질소 농도가 독일 전역이 아닌 차량 통행량이 많은 도심에서만 기준치를 넘는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지요.”

루돌프 디젤(1858~1913)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디젤엔진의 고향인 독일에서는 지금 아이로니컬하게도 디젤차가 골칫거리가 됐다. 아우디폭스바겐그룹의 디젤게이트와 BMW의 화재 사건에서 보듯 최근 디젤엔진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데다 미세먼지의 주원인이기 때문이다.

한국, 미세먼지 원인 설왕설래
독일은 주원인 경유차로 꼽아
확실한 진단에 시민도 공감
대책 비용 놓고는 ‘정치적 논쟁’

지난 8월 초 만난 독일 연방정부의 전문가, 지자체, 시민들은 모두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경유차를 꼽았다. 아직까지 고농도 미세먼지의 발생 비중을 놓고 중국이다, 경유차다, 석탄발전소다 등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한국과 달랐다. 이미 원인에 따른 실효성 있는 정책을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었다.

지난 8월9일 베를린의 독일 연방 환경부 청사에서 만난 이곳 소속 틸 스프랑어 박사는 “산업과 발전 부문에는 이미 오염물질을 상당 부분 저감하는 대책이 적용됐지만 자동차와 관련해서는 2005~2006년 매연 저감 필터를 부착하게 하는 대책만이 실시됐다”고 설명했다. 2010년 이후 독일의 초미세먼지(PM2.5) 연간 평균 농도는 보통 10~15㎍/㎥ 정도로 25㎍/㎥가 넘는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미세먼지(PM10) 농도 역시 자체적인 기준치인 연간 40㎍/㎥를 넘는 곳이 거의 없는 상태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초미세먼지는 현재 농도의 2배가량, 미세먼지는 1.5배가량의 농도와 배출량을 보였다. 스프랑어 박사는 “통일 이후 1990년대 주로 동독 지역에 많았던 노후한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한 것이 본격적인 미세먼지 저감의 첫 단계였고, 이후에는 차량과 공장 등에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는 필터를 설치하는 작업이 이뤄졌다”고 소개했다.

독일이 최근부터 경유차에 집중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오염물질 농도가 높은 도심에서도 교통량이 많은 지역과 교통량이 비교적 적은 배경지역의 미세먼지, 이산화질소 등 농도가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독일 자르브뤼켄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럽연구소에 따르면 2000~2015년 사이 도심교통지역의 측정소 가운데 미세먼지 농도가 24시간 기준치를 초과한 비율은 평균 30%가량이지만, 배경지역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비율은 5% 정도에 불과했다. 2012년 이후에는 배경지역 측정소 가운데는 기준치를 넘어선 곳이 없는 상태다. 이는 독일 내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거의 유일하게 유럽연합 기준치를 넘기고 있는 도시인 슈투트가르트 역시 마찬가지다. 슈투트가르트시 도시기후과 라이너 캅 과장은 “자동차 중에서도 트럭을 포함한 경유차의 오염물질 배출량이 많다는 분석에 따라 경유차 운행 제한 정책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독일 사회에서도 경유차에 저감장치를 누구의 부담으로 달 것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경유차 1대당 저감장치 설치비용이 1500유로(약 195만원)~3000유로(390만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스프랑어 박사는 “올해부터 새로 출시된 경유차는 기준을 강화해 처음부터 오염물질을 덜 배출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미 출시된 차들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술적으로는 촉매변환기 방식의 저감장치를 달면 되지만 자동차 제조업체, 소비자, 국가 중 누가 비용을 댈 것인지를 놓고 정치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독일 연방정부 내에서도 환경부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경유차량에 새 저감장치를 장착하는 문제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교통부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지난 3월 환경부 장관에 새로 임명된 사민당 출신 스벤야 슐체 장관이 앞장서서 자동차 제조업체들을 압박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이를 강제할 근거는 없는 상태다.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최근 관련 회의에서 경유차 소유주들이 비용을 부담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원칙만을 밝힌 상태다. 자동차업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폭스바겐과 다임러의 경우 업계가 저감장치 장착비용을 부담하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그밖의 업체들은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BMW는 저감장치 장착을 통한 오염물질 저감 자체에 반대하면서 구형 차량의 신형 차량 교체를 가속화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대기오염물질 측정장치는 사람들 가까운 도로가에만 설치돼 있다. 슈투트가르트시 환경보전부 도시기후과 제공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대기오염물질 측정장치는 사람들 가까운 도로가에만 설치돼 있다. 슈투트가르트시 환경보전부 도시기후과 제공

연방정부가 경유차 저감장치 장착 문제에서 쉽사리 해답을 찾지 못하는 사이 독일 지자체들은 도심 내 속도 제한, 경유차의 도심 진입 제한 등 실질적으로 교통부문의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정책들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지자체들 역시 대기오염의 주원인을 차량으로 보고 교통부문의 배출량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베를린시의 경우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의 발생원별 비율을 차량 배기가스 7%와 차량으로 인한 마찰 또는 재부유 21% 등 차량으로 인한 오염물질 비율이 전체의 28%를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베를린주정부는 도심 내 주요도로의 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하고, 경유차에 미세먼지 필터를 장착하고, 환경존에 미세먼지를 많이 뿜어내는 차량의 진입을 제한하는 등의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공업이 발달해 트럭 통행량이 많은 뒤셀도르프시의 경우 중형 이상 트럭 등 차량의 도심 진입을 제한하고, 도심 외곽에 주차한 후 짐을 싣고 내리도록 조치하고 있다. 베를린주정부 마틴 루츠 환경교통기후예방과장은 “라이프치거슈트라세 등 주요 도로의 속도를 시속 50㎞에서 30㎞로 제한하면 미세먼지, 이산화질소 농도가 1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소개했다. 그는 “제한속도를 낮추면 경유차가 가속할 때 특히 많이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속도 제한·트럭 운행 제한 등
지자체들 저감 대책 적극 실천
유해 가스 차량 막는 ‘환경존’
메르켈 정부, 더 강한 규제 추진

[파란 하늘을 찾아-미세먼지 해외견문록](4)‘디젤차의 고향’ 독일, 노후 디젤차와 이별 진행 중

현재 노후 경유차의 도심 진입 금지 정책은 독일 대부분 대도시에서 실시되고 있다. 차량의 배출가스 수준에 따라 빨강, 노랑, 녹색의 환경스티커를 발급하고, 도심 내 일부 구간에서는 빨간색과 노란색 스티커가 붙은 차량의 운행을 제한하는 ‘환경존’ 제도다. 여기에 독일 연방정부는 2016년부터 파랑 스티커를 새로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데 정부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강해 진통을 겪고 있는 상태다. 가장 규제가 강력한 유로5 기준에 해당되는 차량 중 상당수가 도심 진입이 금지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연방 교통부가 특히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연방 교통부는 새 스티커 도입 시 도심 진입이 금지되는 차량의 수가 약 1300만대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많은 차량 소유주들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지자체들 중에는 연방정부의 새 스티커 도입 전부터 유로5 차량의 도심 진입을 제한하기로 한 곳도 있다. 함부르크주정부는 지난 5월 말 도심 일부 구간의 유로5 이하 경유차의 주행을 금지한 바 있다. 최근에는 독일 환경단체 도이체움벨트힐페(독일환경지원)가 2015년 독일 연방정부 및 지방정부들을 상대로 경유차 도심 진입 제한을 확대하라는 취지의 소송에 대해 뒤셀도르프, 슈투트가르트, 베를린 등의 지방법원들이 잇따라 이 단체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 제도가 확산되는 추세다.

■ 국경 넘는 오염 물질, 주변국과 함께 해결하는 EU

EU, 오염물질 배출한도 정해
회원국들 준수하도록 ‘강제’
어길 땐 국제재판 제소·벌금
“한국도 협력 체계 구축해야”


한국과 독일 대기오염 정책의 차이점은 월경성 오염물질에 대한 자세에서도 드러난다. 오염물질의 절반가량이 외부에서 유입되는 독일에서도 다른 나라만 탓하지 않는다.

독일 연방 환경부에 따르면 독일 내 주요 대기오염물질 농도의 절반가량은 독일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다. 초미세먼지는 약 50%, 미세먼지의 전구물질인 이산화질소는 57%, 이산화황은 48% 등으로 추정된다. 유럽 중심부에 위치한 독일은 9개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독일 정부는 이들 중 프랑스, 영국 등 산업이 발달한 서쪽 국가들에서 넘어오는 오염물질의 양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 대륙의 공기 흐름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서풍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또 독일 수도인 베를린은 겨울철에는 폴란드, 체코,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에서 찬 공기와 함께 오염물질이 넘어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독일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 역시 외부로 흘러나가고 있다.

주변국을 원망하는 정서가 생기기 쉬운 상황임에도 독일의 월경성 오염물질 대처법은 ‘지자체들과 협력해 자국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면서 유럽연합(EU)을 통해 주변국들과 협력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지난 8월6일 베를린 근교 데사우의 연방 환경청 청사에서 만난 마르셀 랑그너 박사는 “오염물질이 국경을 넘어가고, 넘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EU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대기오염물질 배출한도 지침(NECD)’을 만들어서 회원국에 배출량 상한치를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독일로 넘어오는 국경지역 화력발전소의 오염물질을 줄이기 위해 필터 기술을 전수하는 등 조치도 취하고 있지만 이 같은 개별적 조치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EU는 2001년 NECD를 마련해 회원국별로 질소산화물, 이산화황, 휘발성유기화합물 등 주요 오염물질의 배출한도를 설정했고, 2016년에는 이 지침을 개정해 초미세먼지와 오존 등을 추가했다. 한 국가가 독자적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협업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EU는 각 회원국이 이 지침을 준수함으로써 2020년까지 2001년 기준으로 질소산화물 배출량의 60%를 줄이고, 이산화황은 82%, 휘발성유기화합물은 51%, 초미세먼지는 59%를 줄인다는 목표를 세워놓은 상태다. EU는 회원국들이 이 지침을 준수하는지 점검해 발표하고 있으며, 준수하지 않는 회원국을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다. 지난해 발표한 2015년 이행현황 점검 결과에 따르면 11개 회원국이 하나 이상의 오염물질 배출한도를 준수하지 못했다. 이들 국가는 지침에 따라 강화된 대기질개선계획을 EU 집행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폴란드는 미세먼지 농도 기준 초과로 인해 2016년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를 당했다. 독일은 2010년 이후 주요 도시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기준치를 계속 초과해 지난 3월 EU 집행위에 대기질개선계획을 제출한 바 있다.

독일의 전문가들은 한국도 EU처럼 주변국들과 강제성 있는 협력 체계를 만드는 것만이 월경성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랑그너 박사는 “한국 역시 EU와 마찬가지로 자체 배출량에 대한 대책을 세움과 동시에 주변국과 협력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